충분한 증거 없이 믿는 것은 잘못인가? W.K. 클리포드의 “믿음의 윤리학” – Spencer Case

우리는 때로 누군가와의 논쟁을 멈추기 위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믿어도 될까요?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W.K. 클리포드(W.K. Clifford, 1845-1879)는 그의 에세이 “믿음의 윤리학”(The Ethics of Belief)에서 그 대답은 “아니오”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불충분한 증거를 근거로 무엇이든 믿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1]

클리포드가 말하는 “증거”는 믿음이 진리임을 뒷받침하는 경험과 추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증거는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과 관련된 정보입니다.[2]

클리포드의 주장이 옳다면, 우리에게는 믿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믿을 권리는 없으며, 좋은 증거가 없는 경우에 특정 믿음을 갖는 것은 실제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이러한 클리포드의 견해를 설명합니다.


1. 배 사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클리포드는 먼저 독자들에게 자기 배를 비싼 비용을 들여 수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선주에 대해 상상해 보라고 합니다. 그는 그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통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도록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클리포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신의 배가 완전히 안전하고 항해에 적합하다는 진정하고 편안한 확신을 얻었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배의 출항을 지켜보았고, 이민자들이 앞으로 도착할 낯선 새 땅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배가 대양 한가운데서 침몰하여 아무 이야기도 들려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는 보험금을 챙겼다.[3]

만약 배가 항해에 적합하다는 선주의 믿음이 충분한 증거에 근거한 것이었다면, 침몰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를 비난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증거에 반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결과를 두고 그를 비난합니다. 그는 더 잘 알았어야 했거나, 적어도 더 잘 믿었어야 했습니다. 그가 증거에 반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은 잘못입니다.[4]


2. 모든 믿음이 중요하다

선주의 잘못은 결과가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특히 나빠 보입니다. 그러나 클리포드는 불충분한 증거에 근거한 믿음에 반대하는 윤리적 원칙은 모든 믿음에, 심지어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믿음에까지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아무리 사소하고 단편적으로 보일지라도 결코 진정으로 하찮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와 유사한 것을 더 많이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고, 그와 유사한 기존의 믿음들을 강화하며, 다른 것을 약화시킨다. 그리하여 서서히 우리의 가장 깊은 사고 속에 은밀한 생각의 고리를 만들어 언젠가 명백한 행동으로 폭발하고 우리의 성격에 영원히 그 흔적을 남기게 된다.[5]

클리포드는 어떤 믿음도 고립된 것이 아니며,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의 지적 성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부주의하거나 동기 부여된 추론은, 심지어 좋아하는 팀이 경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은지와 같은 것조차도, 더 중요한 일들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손상시키는 나쁜 정신적 습관을 개발할 위험에 처하게 합니다. 따라서 증거가 없이 또는 증거에 반하여 믿는 것은 항상 자신과 타인에게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3. 공공 자원으로서의 참인 믿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클리포드는 공기와 물이 공공 자원인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것”[6]이라고 주장합니다.

“인식적 커먼즈”(epistemic commons)(“인식적”은 지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라는 용어는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의존하는 공유된 지식과 신뢰할 수 있는 믿음 형성 관행을 가리킵니다.[7] 인식적 커먼즈에 있는 거짓이거나 정당화되지 않은 믿음은 일종의 공해입니다. 식수로 사용되는 강에 독성 폐기물을 버리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 대해 적절한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인식적 커먼즈를 훼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자선의 의무가 있는 것처럼 더 많이 배우고 더 나은 추론 습관을 개발함으로써 인식적 커먼즈를 개선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공기나 물을 만들 수 있는 것과 달리, 인식적 커먼즈는 개선될 수 있는 정도에 한계가 없습니다.


4. 믿음의 윤리학 적용하기

믿음의 윤리학을 고려할 때, 우리의 믿음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윤리적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정치, 종교, 철학, 과학에 대해 자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마도 이러한 믿음 중 상당수는 클리포드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 증거가 그다지 강력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편 클리포드는 무엇이 “충분한 증거”로 간주되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가 에세이에서 말하는 것은 가용한 증거가 때때로 합리적 의견 불일치의 여지를 남긴다는 생각과 조화될 수 있습니다.[8]

그렇다면 우리가 항상 광적으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클리포드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할 자유가 언제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바쁜 사람입니다. 특정 질문들에 대해 어느 정도 능숙한 판단자가 되거나 논증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오랜 공부 과정을 거칠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믿을 시간도 없어야 합니다.[9]

어떤 주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는 그 주제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갖지 않는 것이 책임감 있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된다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할 수도 있습니다. 충실한 정보에 근거한 의견을 형성하기에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제력(discipline)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믿음을 형성하기에 앞서 좋은 증거를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행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신에 찬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클리포드는 확신에 찬 믿음을 형성하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은 경우에도 “확률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므로 “…양심적인 탐구 습관이 일상 생활에서의 행동을 마비시킬까봐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10]고 말합니다.


5. 결론

믿음은 윤리적으로 중요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심각한 잘못은 종종 적절한 증거 없이 믿는 데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클리포드의 말이 옳다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때때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선주와 더 닮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모두 자신의 믿음이 증거에 비례하도록 하기로 결심함으로써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석

[1] Clifford, 1886, p. 175.

[2] “인식적 정당화”(epistemic justification)에 대한 이론들은 우리가 무엇을 믿거나 믿지 말아야 할지, 무엇을 믿는 것이 정당화되는지를 진리, 합리적인 믿음, 지식을 추구하는 인식론적 관점(epistemological point of view)에서 가려내려고 합니다.
인식적 정당화에 대한 영향력 있는 이론 중 하나인 증거주의(evidentialism)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증거가 뒷받침해주는 것을, 그리고 그런 것만을 믿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클리포드의 “믿음의 윤리학”은 우리에게는 증거주의의 기준에 따라 정당화되는 것, 곧 강력하고 충분한 증거에 근거하고 있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증거주의에 대한 소개는 토마스 멧칼프(Thomas Metcalf)의 Epistemology, or Theory of Knowledge를 참조하세요. 인식론적 정당화 개념에 초점을 맞춘 소개는 토드 R. 롱(Todd R. Long)의 Epistemic Justification: What is Rational Belief?를 참조하세요.

[3] Clifford, 1886, p. 164.

[4] 클리포드는 불충분한 증거에 근거해 믿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특정 윤리 이론에 명시적으로 호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우리에게 전반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낳는 일을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윤리 이론인 “결과주의”(consequentialism)와 잘 맞습니다: 결국, 클리포드는 불충분한 증거에 근거해서 믿는 것이 나쁜 결과를 낳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과주의에 대한 소개로는 셰인 그론홀츠(Shane Gronholz)의 Consequentialism and Utilitarianism을 참조하세요. 그러나 클리포드의 입장은 다양한 윤리 이론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으며, 특히 덕과 악덕에 초점을 맞춘 이론도 적용 가능합니다. 데이비드 메리(David Merry)의 Virtue Ethics를 참조하세요.

[5] Clifford, 1886, p. 169.

[6] Clifford, 1886, p. 170.

[7] 흐리쉬케쉬 조시(Hrishikesh Joshi)는 그의 책 Why It’s Ok to Speak Your Mind (2021) 에서 “인식적 커먼즈”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8] 어떤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관한 의견 불일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특히 의견이 충돌하는 사람들이 거의 동등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견해에 대해 동등하게 강력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조너선 매더슨(Jonathan Matheson)의 The Epistemology of Disagreement를 참조하세요. 기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한 의견 불일치가 있을 때 우리는 자신감을 유지하고 우리가 믿는 것을 계속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감을 잃고 반대하는 사람의 믿음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감을 잃고 그 문제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더 연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대응해야 할까요?

[9] Clifford, 1886, p. 176.

[10] Clifford, 1886, pp. 177-178.


참고 문헌

Clifford, W. K. 1886. “The Ethics of Belief.” Originally published in Contemporary Review, 1877; reprinted in William K. Clifford, Lectures and Essays, ed. Leslie Stephen and Frederick Pollock. Macmillan. 1886, pp. 163-205. (“Ethics of Belief”와 그로부터 발췌한 내용은 널리 재인쇄되었고, 여기에 게시되어 있으며, 여기에 PDF 파일도 올라와 있습니다.)

Joshi, Hrishikesh. 2021. Why It’s Ok to Speak Your Mind. Routledge.


더 읽을 것들

Chignell, Andrew, 2018. “The Ethics of Belief”,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ring 2018 Edition), Edward N. Zalta (ed.).

De Cruz, Helen. July 20, 2021. “Clifford’s Ethics of Belief is the evidentialism we need in these denialist times.” Wondering freely: Reflections by Helen De Cruz. (번역본: 클리포드의 믿음의 윤리학은 이 부정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증거주의입니다.)

Nobis, Nathan. March 22, 2021. “The Ethics of Belief: It’s not just Trump supporters who believe wrongly—it’s all of us.” Open for Debate. (번역본: 믿음의 윤리학: 잘못 믿는 것은 트럼프 지지자들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Paytas, Tyler and Case, Spencer. April, 1 2020. “Do you have a right to your opinion? Clifford, James and the ethics of belief.” Micro-Digressions: A Philosophy Podcast.

Stairs, Allen. March 13, 1996. “Some People Are More Entitled to their Opinions than others.” Washington Post.

Stokes, Patrick. October 4, 2012. “No, you’re not entitled to your opinion.” The Conversation.


관련 에세이

Critical Thinking: What is it to be a Critical Thinker? by Carolina Flores (번역본: 비판적 사고: 비판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Epistemology, or Theory of Knowledge by Thomas Metcalf

Epistemic Justification: What is Rational Belief? by Todd R. Long

Arguments: Why Do You Believe What You Believe? by Thomas Metcalf (번역본: 논증: 왜 그것을 믿는가?)

Philosophy as a Way of Life by Christine Darr (번역본: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

Consequentialism and Utilitarianism by Shane Gronholz

Virtue Ethics by David Merry

Expertise: What is it to be an Expert? by Jamie Carlin Watson (번역본: 전문성: 전문가란 무엇인가?)

The Epistemology of Disagreement by Jonathan Matheson (번역본: 의견 불일치의 인식론)

Praise and Blame by Daniel Miller

Indoctrination: What is it to Indoctrinate Someone? by Chris Ranalli

Conspiracy Theories by Jared Millson (번역본: 음모론)

Pascal’s Wager: A Pragmatic Argument for Belief in God by Liz Jackson

Moral Luck by Jonathan Spelman


저자 소개

스펜서 케이스(Spencer Case)는 콜로라도 대학 볼더 캠퍼스(the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철학 팟캐스트인 Micro-Digressions: A Philosophy Podcast를 진행하고 있으며, 학술 및 기타 분야에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SpencerCasePhilosophy.com


이 글은 Spencer Case의 Is it Wrong to Believe Without Sufficient Evidence? W.K. Clifford’s “The Ethics of Belief”를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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