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없이 믿는 것은 언제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 Francisco Mejia Uribeis

당신은 아마도 윌리엄 킹던 클리포드(William Kingdon Clifford)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판테온에 들지는 못했지만 — 아마도 33세에 짧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저는 상호 연결된 AI 주도의 디지털 시대에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사상을 가진 사람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유명한 철학 작품이 거의 150년 전의 에세이인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제야] 클리포드를 따라잡았습니다. ‘불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무엇이든 믿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잘못된 것’이라는, 한때 과장된 것처럼 보였던 그의 주장은 이제 더 이상 과장이 아닌 기술적인 현실이 되었습니다.

클리포드는 ‘믿음의 윤리학'(1877)에서 우리에게 책임감 있게 믿어야 할 도덕적 의무, 즉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것, 그리고 부지런히 조사한 것만을 믿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며 세 가지 논증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논증은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단순한 관찰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즉 우리가 믿는 것에 의해 형성된다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밖에 비가 온다고 믿는다면 우산을 가져갈 것입니다. 택시가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고 믿으면 택시에 타기 전에 현금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도둑질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가게를 나서기 전에 물건 값을 지불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물리적 또는 사회적 사실에 대한 거짓인 믿음은 우리를 잘못된 행동 습관으로 이끌고,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가수 R. 켈리(R. Kelly)가 자신의 노래 ‘I Believe I Can Fly'(1996)의 가사를 진정으로 믿었다면, 그는 지금 우리 곁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위태로운 것은 우리 자신의 자기 보존만이 아닙니다.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부적절한 믿음은 우리의 동료 인간들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클리포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우리 모두는 잘못된 믿음을 유지하고 지지하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치명적으로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충분히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요컨대,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가 무언가를 믿을 때 그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부주의한 믿음 형성 관행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이 첫 번째 논증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반론은, 우리의 믿음 중 일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믿는 것의 대부분은 아마도 동료 인간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클리포드처럼, 모든 경우에 불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믿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처럼 보입니다. 비판자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있었다고— 하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의 믿음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세상에서, 모든 믿음은 클리포드가 상상했던 방식으로 진정으로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여전히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만들어진 믿음이 어떻게 뉴욕, 파리, 런던에서 생명을 앗아간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또는 여러분의 소셜 미디어 피드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말들이 여러분의 일상적인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 보세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지구촌에서는 거짓 믿음이 더 넓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에 클리포드의 논증은 처음 만들었을 때는 과장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클리포드가 불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믿는 것은 언제나 잘못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하는 두 번째 논증은, 잘못된 믿음 형성 관행이 우리를 부주의하고 쉽게 믿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클리포드는 이를 훌륭하게 표현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아무리 사소하고 단편적으로 보일지라도 결코 진정으로 하찮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와 유사한 것들을 더 많이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고, 그와 유사한 기존의 믿음들을 강화하며, 다른 것들을 약화시킨다. 그리하여 서서히 우리의 가장 깊은 사고 속에 은밀한 생각의 고리를 만들어 언젠가 명백한 행동으로 폭발하고 우리의 성격에 영원히 그 흔적을 남기게 된다’. 클리포드의 경고를 오늘날의 상호 연결된 시대에 적용하면, 부주의한 믿음은 우리를 가짜 뉴스 행상인, 음모론자, 허풍쟁이들의 쉬운 먹잇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았듯이 이러한 오류는 사회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숙주가 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상충되는 정보를 선별해야 할 필요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스마트폰 몇 번만 터치하면 쉽게 믿음의 수용자가 될 수 있는 오늘날, 인식적 경각심은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소중한 덕목입니다.

증거 없이 믿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인 이유에 대한 클리포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논증은, 믿음의 전달자로서 우리는 집단적 지식의 우물을 오염시키지 않을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클리포드의 시대에 우리의 믿음이 공동의 지식이라는 ‘귀중한 자산’으로 엮이는 방식은 주로 말과 글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의사소통 능력 덕분에 ‘우리의 말, 표현, 행동 양식과 과정, 그리고 사고 방식’은 ‘공동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삶은 궁극적으로 이 중요한 공유 자원에 의존하기 때문에, 거짓 믿음을 추가하여 그가 ‘유산’이라고 부르는 이것을 훼손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입니다.

클리포드의 마지막 논증은 일리가 있지만, 우리가 지닌 모든 작은 거짓 믿음이 공동 지식을 훼손하는 도덕적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과장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시 한 번 클리포드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으며, 그의 말은 예언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우리의 모든 관심과 노력이 공들여 쌓여가고 있는 전 세계적인 믿음의 저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빅 데이터입니다. 트위터에 포스팅하거나 페이스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네티즌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하는 일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기록되고 디지털화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알고리즘은 우리가 어떤 견해를 표현하기도 전에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쉽게 추론해낼 수 있습니다. 결국, 알고리즘은 이렇게 저장된 방대한 믿음의 풀을 사용하여 우리를 위한, 그리고 우리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저장소가 우리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새로운 믿음을 얻으려고 할 때 검색 엔진이 활용하는 저장소입니다. 빅 데이터 레시피에 잘못된 성분을 추가하면 결과적으로 얻게 될 것은 잠재적으로 독이 될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만약 비판적 사고가 도덕적 의무이고 쉽게 믿는 것이 재앙적인 죄악인 시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저자 소개

프란시스코 메히아 우리베(Francisco Mejia Uribeis)는 홍콩의 한 금융 기관에서 경제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콜롬비아 보고타(Bogotá, Colombia)에 있는 로스 안데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Los Andes)에서 철학과 경제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어린이를 위한 철학 책 시리즈 『철학 친구들!』(Philosophy Friends!)을 쓰고 삽화를 그렸으며 현재 홍콩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Believing without evidence is always morally wrong을 번역한 것입니다.
Aeon의 번역 및 배포 기준을 준수하여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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