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와의 작별: 이제는 평판의 시대다 – Gloria Origgi

오늘날의 고도로 발전된 초연결(hyper-connected)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간과되고 있는 지식의 역설이 있다. 바로 유통되는 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이를 평가하기 위해 소위 평판이라는 수단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설적인 이유는 오늘날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음에도, 그것이 우리에게 더 큰 힘을 주거나 인지적으로 더 자율적인 존재가 되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접하는 정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평가에 더 의존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식과 맺는 관계에 있어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정보화 시대'(information age)에서 ‘평판의 시대’(reputation age)로 나아가고 있다. 평판의 시대에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미 걸러지고, 평가되고, 논평된 정보만이 가치를 가진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평판은 오늘날 집단지성의 핵심축이 되었다. 평판은 지식으로 통하는 문의 문지기이며, 그 문의 열쇠는 다른 사람들이 쥐고 있다. 오늘날 지식의 권위가 구성되는 방식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 그것도 대부분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의 편향적일 수밖에 없는 판단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 역설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당신에게 지구의 기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미래의 삶에 극심한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를 묻는다면, 아마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답변은, 지구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당신이 일반적으로 의존하는 정보 출처의 평판을 신뢰한다는 것일 것이다. 최선의 경우, 당신은 과학 연구의 평판을 신뢰하고 동료 심사(peer-review)가 자연에 대한 거짓 가설과 완전한 ‘헛소리’들로부터 ‘진리’를 가려내는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믿을 것이다. 평균적인 경우라면, 당신은 과학 연구를 지지하는 정치적 견해를 보이는 신문, 잡지 또는 TV 채널에서 그 연구 결과를 요약해 주는 것을 신뢰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 당신은 출처로부터 한 단계 더 떨어져 있다. 당신은 과학의 평판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신뢰하는 것이다.

또는 내가 다른 곳에서 자세히 논의한 적이 있는 훨씬 논란의 여지가 적은 진실을 예로 들어 보겠다. 가장 악명 높은 음모론 중 하나는, 1969년에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1969년부터 1972년 사이 6번의 달 착륙을 포함한 전체 아폴로 프로그램은 연출된 가짜라는 것이다. 이 음모론의 창시자는 아폴로의 새턴 V 로켓 엔진을 제작한 로켓다인 회사(the Rocketdyne company)에서 출판 업무를 담당했던 빌 케이싱(Bill Kaysing)이다. 케이싱은 『우리는 결코 달에 가지 않았다: 미국의 300억 달러 사기극』(We Never Went to the Moon: America’s $30 Billion Swindle, 1976)이라는 책을 자비로 출판했다. 이 책의 출판 후에 달 착륙 회의론자들의 운동이 커지면서 달 착륙이 사기라는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실을 부인하는 단체 중 하나인 평평한 지구 학회(the Flat Earth Society)에서는 달 착륙이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지원과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정교한 감독 아래 할리우드에서 연출되었고 주장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증명’은 대부분 여러 착륙 사진들에 대한 일견 정확해 보이는 분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림자의 각도와 빛의 방향이 맞지 않고, 달에는 바람이 없는데도 미국 국기가 펄럭이며, 달의 토양에 습기가 없는데도 발자국이 너무 정확하고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6년 동안 40만 명 이상이 관여한 프로그램이 갑자기 중단된 것이 의심스럽지 않은가? 등등.

우리가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다고 여길 대다수의 사람들(나 자신 포함)은 그 가설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비웃으며 이러한 주장을 일축할 것이다(물론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NASA가 진지하게 대응해온 문서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증거를 근거로 달 착륙이 있었다고 믿는지를 자문해 보면, 나는 내가 가진 증거가 상당히 빈약하며, 이러한 음모론자들이 축적한 반대 증거들을 반박하기 위해 단 1초도 투자한 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들에 관해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는 어린 시절의 혼란스러운 기억, 흑백 텔레비전 뉴스, 그리고 이후 몇 년 동안 달 착륙에 대해 부모님이 말씀하셨던 것에 대한 존중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증거가 전적으로 간접적이고 개인적으로 확증되지 않았음에도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나의 믿음이 진실이라고 판단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내가 달 착륙이 있었다고 믿는 이유는 그 사건 자체에 관해 내가 수집하고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는 증거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그 당시 우리는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진실성에 대한 정당화된 평판을 가지고 있다고 신뢰했다. 특정 정보 출처의 신뢰성에 대한 평가적 판단 없이는, 그 정보는 어떤 실질적인 목적에도 쓸모가 없다.

현대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가짜 뉴스’와 그 외 부주의로 인한 잘못된 정보 및 의도적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기법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하려 한다면, 정보화 시대에서 평판의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성숙한 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은 뉴스의 진실 여부를 가려내고 확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해당 정보의 평판 경로를 재구성하고, 그것을 유포한 사람들의 의도를 평가하며, 그것에 신뢰성을 부여한 권위자들의 의제를 파악하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정보는 어디에서 왔는가? 출처는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믿는 권위자들은 누구인가? 이러한 권위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해당 정보의 신뢰성을 직접 확인하려고 하는 것보다 현실을 더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 생산 체계에서, 를 들자면 백신과 자폐증 사이의 상관관계의 가능성을 스스로 조사하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시간 낭비일 뿐만 아니라 아마도 우리의 결론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평판의 시대에, 우리의 비판적 평가의 대상은 정보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을 형성하고 우리의 지식 체계 내에서 합당하거나 합당하지 않은 ‘등급’을 부여한 사회적 관계망이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역량은 일종의 2차 인식론을 구성한다. 이것은 우리가 정보 출처의 평판에 의문을 제기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것으로서, 철학자들과 교사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ederich Hayek)의 저서 Law, Legislation and Liberty (1973)(번역본: 『법, 입법 그리고 자유』, 자유기업원, 2018)에 따르면, “문명은 우리 모두가 우리가 소유하지 않은 지식으로부터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문명화된 사이버 세계는 사람들이 정보 출처의 평판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알고, 자신의 인지 영역에 들어오는 각각의 정보의 사회적 ‘등급’을 적절하게 판단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강화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글로리아 오리지(Gloria Origgi)는 이탈리아 철학자이며,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 과학 연구 센터(CNRS)의 종신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그녀의 최근 저서로는 Stephen Holmes와 Noga Arikha가 [영어로] 번역한 Reputation: What It Is and Why It Matters (2017)가 있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Say goodbye to the information age: it’s all about reputation now을 번역한 것입니다.
Aeon의 번역 및 배포 기준을 준수하여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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