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삶을 생각해 봅시다.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있었지만, 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작가이자 활동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1719년 독일 하노버 근처에서 발견된 야생 소년 피터(Peter the Wild Boy)는 시각과 청각은 있었지만 언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그대로의 순수한 상태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간적 기교, 특히 인간이 공유하는 언어라는 기교 없이, 무의미한 고요함은 피터를 변함 없는 동물적 욕구 속에 가두어 버립니다.”[1]
이 극명한 대조는 우리가 언어와 다른 사람의 말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많은 전형적인 인간적 관심사들에 대해서 그럴 것입니다. 말이 없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없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도 없습니다. 즉, 우리는 증언(testimony)을 제공하거나 받을 수 없습니다. 증언이 없다면, 즉 다른 사람의 글이나 말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합리적인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개인의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여 다른 사람의 생각, 관찰, 경험을 빌려올 수 없습니다. 인간을 동물 세계의 나머지 부분과 구분 짓는 종류의 지식은 사라집니다. 개인의 감각 능력의 결핍은 [다른 것으로] 보완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지식에서 무언가를 끌어올 수 없다는 것은 더 높은 지식의 가능성을 모두 포기하는 것입니다.
증언에 관한 현대의 철학 문헌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위대한 라이벌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토마스 리드(Thomas Reid) 간의 논쟁에 대한 주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흄과 리드의 입장이 모든 입장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대립은 지적 지형에서의 커다란 분열을 대표합니다. 그들 사이의 주요 논쟁점은 증언이 지식의 파생적 원천인지(‘환원적 이론’), 아니면 지식의 환원 불가능한, 기본적인 원천인지(소위 ‘비환원적 이론’) 여부를 가리는 것입니다.
외부인에게는 이 논쟁이 현학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학계의 대부분의 철학자들도 이 논쟁에 비교적 적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걸까요? 여기에서 걸려 있는 것은 인간 지식에 대한 어떤 관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자율성, 속임수의 회피, 외적인 권위에 대한 회의주의를 우선시하는 인간 지식관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신뢰를 우선시하고 권위에 대한 불가피한 의존성과 타인과의 연결성을 인정하는 인간 지식관을 받아들일 것인지가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입니다.
흄에 따르면, 우리가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화자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독립적인 이유가 있을 때만 정당화됩니다.[2] 화자가 정직하다는 사전 지식이 있거나, 화자가 말한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것들과 일관성이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검증을 거치지 않은 증언을 믿는 것은 쉽게 속아 넘어가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리드는 증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충분한 반증이 있으면 그 권리는 무효화될 수 있지만, 증언을 통해 얻은 믿음은 ‘유죄’로 판명되기 전까지는 ‘무죄’입니다. 이러한 “경신성 원리”(Principle of Credulity)는 증언과 감각 사이에 보다 평등한 관계를 가져옵니다.[3] 동료 학생으로부터 스미스 교수가 방금 연구실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는 것과 스미스 교수가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동등한 무게를 가진 이유일 필요는 없지만, 모두 교수가 그곳에 있다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리드가 증언이 청자의 믿음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기본적인 원천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가 증언이 지식의 다른 원천과 결합해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이 기존의 지식을 시간에 걸쳐 확장하는 것처럼, 증언은 기존의 지식을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증언은 다른 지식의 원천과 달리 근본적으로(=환원할 수 없이) 사회적이고 도덕적으로 중요합니다. 증언은 듣는 사람의 신뢰와 말하는 사람의 정직성 없이는 작동할 수 없습니다.
이 두 관점 간의 경쟁에서 환원적 이론(흄의 관점)은 단순성이라는 이점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이론은 지식의 기본적인 원천이 하나 더 적다고 가정합니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지식의 원천을 무분별하게 추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원천은 설명력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결국 초능력과 같은 것을 가정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비환원적 이론의 지지자는 추가적인 기본적 원천이 어떻게 근거를 얻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증언에 관한 연구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C.A.J. 코디(C.A.J. Coady)는 증언에 대한 비환원적 이론이 회의주의를 피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편지 한 통이 전달되는 전체 경로를 목격한 사람은 거의 없지만, 우편 서비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코디는 “마찬가지로 아기가 특정한 방식으로 여성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알려져 있고 관찰된 사실이지만, 우리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한 번의 출산도 직접 관찰하지 않았다.”라고 썼습니다.[4]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신뢰하는 방대하고 면밀히 검증되지 않은 집단적 경험의 풀에 암묵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과대평가합니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신뢰하되 검증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기퍼(Gipper = 레이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방망이”로 검증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신뢰하고 있다는 코디의 요점을 인정할 것입니다. 신뢰에 대한 우리의 광범위한 의존을 고려할 때, 그러한 시도는 우리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우리의 일상적인 믿음에 대한 회의주의로 이끌 것입니다. 증언을 기본적인 지식의 원천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러한 결과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정당화됩니다.
이론적으로는 환원적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울며 겨자 먹기로”(bite the bullet) 회의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철학자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대신에, 그들은 증언이 [기본적인 지식의 원천은 아니지만], 기본적이지 않은 지식의 원천으로서 상품(=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그에 따르면,] 합리적인 증언 수용을 위해서 광범위한 현장 조사가 필요하지는 않으며, 단지 인간이 일반적으로 진실을 말한다는 인식만 있으면 되는데, 이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확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증언을 기본적인 지식의 원천으로 삼지 않고도 특정 증언이 참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응 방식의 다양한 형태가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설득력 있게 발전되어 왔습니다.[5]
이러한 답변은 비환원 이론의 주된 공격을 무디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대가가 따릅니다. 일단 환원 이론의 지지자들이 우리가 들은 것을 받아들인다는 규범을 승인하고 나면, 그들은 경쟁 이론(=비환원 이론)을 쉽게 속도록 만든다는 이유로 비판하기 어려워집니다. 관찰 논증을 무력화한다고 해서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판을 초기화할 뿐입니다. 환원 이론가들이 출발점에서 가지는 우위는 단순성에 대한 호소입니다. 양측 논증의 강점을 고려할 때 이 게임은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주석
[1] Newton 2002, 44. 강조는 인용자의 것.
[2] Hume [1738] 1967, 196.
[3] Reid [1764] 1997, 195-200.
[4] Coady 1992, 81.
[5] 예를 들어, Faulkner 2011, 32-39, Fricker 1994, pp. 125-161, 그리고 Lyons 1997, 171 참조.
참고 문헌
Coady, C.A.J. 1992. Testimony: a Philosophical Stud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Faulkner, Paul. 2011 Knowledge on Trus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Hume, David. Treatise on Human Nature. [1738] 1967. Ed. L.A. Selby-Bigge. USA: Oxford University Press.
– 번역본
데이비드 흄, 이준호 역, 『오성에 관하여 –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1』, 서광사, 1994.
데이비드 흄, 이준호 역, 『정념에 관하여 –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2』, 서광사, 1996.
데이비드 흄, 이준호 역, 『도덕에 관하여 –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3』, 서광사, 2008.
Hume, David.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748] 1958 ed. L.A. Selby-Bigge. USA: Oxford University Press.
– 번역본: 데이비드 흄, 김혜숙 역,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 지만지, 2012.
Newton, Michael. 2003. Savage Girls and Wild Boys. Thomas Dunne Books. 1st U.S. Edition.
Reid, Thomas. [1764] 1997. An Inquiry into the Human Mind on the Principles of Common Sense: a Critical edition. Ed. Derek R. Brookes.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 번역본: 토머스 리드, 양선숙 역, 『인간 마음에 관한 탐구』, 한길사, 2014.
관련 에세이
Moral Testimony by Annaleigh Curtis (번역본: 도덕적 증언)
Is it Wrong to Believe Without Sufficient Evidence? W.K. Clifford’s “The Ethics of Belief” by Spencer Case (번역본: 충분한 증거 없이 믿는 것은 잘못인가? W.K. 클리포드의 “믿음의 윤리학”)
Epistemic Justification: What is Rational Belief? by Todd R. Long
Expertise by Jamie Carlin Watson (번역본: 전문성: 전문가란 무엇인가?)
Indoctrination: What is it to Indoctrinate Someone? by Chris Ranalli
Conspiracy Theories by Jared Millson (번역본: 음모론)
External World Skepticism by Andrew Chapman
The Epistemology of Disagreement by Jonathan Matheson (번역본: 의견 불일치의 인식론)
저자 소개
스펜서 케이스(Spencer Case)는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전에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 공보 전문가로 근무했습니다. 또한 풀브라이트 학생 장학금 수혜자로 이집트에 9개월 동안 머물며 이슬람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윤리학, 메타윤리, 비교철학입니다. SpencerCasePhilosophy.com
이 글은 Spencer Case의 Take My Word for It: On Testimony를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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