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증언 – Annaleigh Curtis

우리는 종종 서로를 신뢰하며 세상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날씨가 어때요?” “여기 국수가 맛있나요?” “차 없이 시내에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하고 친구, 지인, 심지어 낯선 사람의 대답에 의존한다.

이 에세이에서는 도덕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친구나 낯선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은 도덕적으로 허용된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믿어야 할까? 이런 종류의 질문을 놓고 고민한 많은 철학자들은, 날씨나 국수에 대한 평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도덕적 문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불편하게 여겨왔다. 반면, 이런 불편함이 정당화되지 않는다고(unwarranted)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이 질문을 다음과 같이 던져 보자. 도덕적 증언이 도덕적 지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즉, 누군가가 나에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이 도덕적으로 허용된다’고 말한 것이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어떤 철학자는 “그렇다”라고 말하고, 어떤 철학자는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각각의 기본 입장을 소개하겠다.


1. 선택지 1: 아니다, 도덕적 증언은 도덕적 지식으로 이어질 수 없다.

이것은 이 질문에 대한 철학자들의 가장 흔한 대답이다. 이 답변의 매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McGrath(2009)의 예를 고려해보자. 육식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지 알고 싶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직접 생각해보고, 이 문제에 대해 읽어보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아니면 친구에게 물어보고 친구가 믿으라고 하는 대로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후자를 택한다면 나에게는 이제 육식은 괜찮지 않다고 믿을 자격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앞의 질문과 관련하여, 내 믿음이 옳은 것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도덕적 지식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옳더라도 도덕적 지식을 갖지는 못한다는 것이 참이라면,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철학자들이 내놓은 주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도덕적 명제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 도덕적 명제 뒤에 있는 도덕적 이유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Hopkins (2007) 및 Nickel (2001) 참조). 누군가에게 왜 어떤 명제를 믿는지 물어본다고 상상해 보자. 만약 그가 비가 온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그의 동료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왜 믿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고기를 먹는 것은 괜찮지 않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그의 동료가 그렇게 말했다는 설명을 최종적인 대답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대신에 우리는 그가 대안적인 입장[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렇게 믿는 이유를 설명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 중 하나는 근거와 논증을 주고받는 것이 도덕적 참여(moral engagement)의 매우 중요한 부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적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고 구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판단을 무조건 수용해서는 안 된다(Wolff(1970) 참조).

이 글의 처음에는 증언을 받아들임으로써 도덕적 지식(moral knowledge)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지만, 중간에 지식이 아닌 이해(understanding)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하라. 힐스(Hills)는 도덕적 증언이 때때로 도덕적 지식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위에서 살펴본 이유 때문에 도덕적 이해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1] 따라서 이 논쟁의 용어들에 대한 정교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내가 이 절에서 함께 분류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도덕적 증언의 역할에 대해 비슷하게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2. 선택지 2: 그렇다, 도덕적 증언은 도덕적 지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입장은 도덕적 증언이 늘 도덕적 지식으로 이어진다거나 심지어 자주 그런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입장은 도덕적 증언이 어떤 조건 아래서는 도덕적 지식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캐런 존스(Karen Jones, 1999)는 이 질문을 다루면서, 도덕적 질문과 관련해 다른 사람을 신뢰할지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어떤 경우에는 다른 경우에서만큼 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다음은 존스의 예를 변형한 것이다. 테드(Ted)는 샐리(Sally)와 함께 파티에 참석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샐리는 파티 참석자 중 한 명이 자신을 불편하게 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받자, 샐리는 그 사람이 자신이나 파티에 참석한 다른 여성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았고 성차별적으로 해석되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것을 설명하려 하지만 설명에 어려움을 느낀다. 테드는 밤새 샐리와 함께 있었지만 이런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테드는 그 파티 참석자가 도덕적으로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했다고 믿어야 할까? 만약 샐리가 단 한 번의 만남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주 교류하는 직장 동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어떨까? 존스는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테드가 이 문제에 대해 샐리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샐리는 성차별을 식별하는 데 있어 일종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Sliwa(2012)는 증언을 근거로 도덕적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두 가지 종류의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우리는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능력에 대해 우려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특정 종류의 도덕적 판단을 더 잘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2] 이 두 가지 이유는 위의 사례를 잘 설명한다. 테드는 자신이 암묵적 편견과 특권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 영역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제대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우려해야 한다. 또한 테드는 성차별을 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경험한 샐리가 자신보다 문제가 되는 행동을 더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설명은 위의 육식의 예시처럼 증언이 지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 대해서도 잘 다루는데, 그 주제에 대해서는 나도 친구만큼이나 답을 찾을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결론

이 주제는 철학에서 비교적 새로운 주제이며 아직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 아래의 참고 문헌을 검토해 보고 자신의 도덕적 사고에서 증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기를 권한다.



주석

[1] 일부 철학자들은 지식(=앎)과 이해를 구분한다. 예를 들어, 물리학 공식을 알지만 왜 이 공식에 저 상수가 아닌 이 상수가 있는지, 왜 여기서 빼는 대신 더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해는 지식에 비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식과 대조되는 이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Kvanvig(2003)과 Hills(2009) 참조.

[2] 이 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Driver(2006) 참조.


참고문헌

Driver, J. 2006. “Autonomy and the Asymmetry Problem for Moral Expertise”. Philosophical Studies 128 (3):619 – 644.

Hills, Alison. 2009. “Moral Testimony and Moral Epistemology”. Ethics 120 (1):94-127.

Hopkins, Robert. 2007. “What is Wrong with Moral Testimony?” Philosoph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 74 (3):611-634.

Jones, Karen. 1999. “Second-Hand Moral Knowledge.” Journal of Philosophy 96 (2):55-78.

Kukla, Rebecca. 2006. “Objectivity and Perspective in Empirical Knowledge.” Episteme Vol 3, Issue 1-2 (2006) 80-95.

Kvanvig, Jonathan. 2003. The Value of Knowledge and the Pursuit of Understand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McGrath, Sarah. 2009. “The Puzzle of Pure Moral Deference.” Philosophical Perspectives. Wiley Periodicals, Inc.

Nickel, Philip. 2001. “Moral Testimony and Its Authority.” Ethical Theory and Moral Practice 4 (3):253-266.

Sliwa, Paulina. 2012. “In Defense of Moral Testimony.” Philosophical Studies 158 (2):175-195.

Thomas, L. 1998. “Moral Deference.” Theorizing Multiculturalism: A Guide to the Current Debate. Ed Cynthia Willet. Wiley-Blackwell.

Wolff, Robert Paul. 1970. In Defense of Anarchism. Accessed online: http://www.ditext.com/wolff/anarchy.html


관련 에세이

Take My Word for It: On Testimony by Spencer Case (번역본: 제 말을 믿으세요: 증언에 대하여)

Epistemic Justification: What is Rational Belief? by Todd R. Long

Indoctrination: What is it to Indoctrinate Someone? by Chris Ranalli

The Epistemology of Disagreement by Jonathan Matheson (번역본: 의견 불일치의 인식론)


저자 소개

Annaleigh는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JD)를,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에서 철학 박사 학위(Ph.D.)를, CU 볼더 캠퍼스에서 여성 및 젠더 대학원 수료증(Graduate Certificate)을, 워시번 대학교에서 철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보스턴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지적 재산권 소송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학문적 관심 분야는 사회 인식론, 도덕 인식론 및 방법론, 페미니즘 철학, 법철학 등입니다.
papers.ssrn.com/sol3/cf_dev/AbsByAuth.cfm?per_id=2361641


이 글은 Annaleigh Curtis의 Moral Testimony를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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