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자들(skeptics)은 회의주의(skepticism)를 받아들인다. 회의주의란 우리가 지식이나 정당화된 믿음을 결여하고 있다는 견해이다.[1]
회의주의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극단적 회의주의자들은 어떤 것에 대해서든 우리가 지식이나 정당화된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부정한다. 반면 다른 회의주의자들은 우리가 특정 주제(예컨대 종교, 윤리, 또는 다른 특정 영역)에 대한 지식이나 정당화된 믿음을 가졌다는 것만을 부정한다.
피론학파의 회의주의(Pyrrhonian skepticism)는 엘리스의 피론(Pyrrho of Elis, 기원전 약 360–270년)의 가르침에 기초한 고대 학파에서 유래한 이름이다.[2] 피론학파 회의주의자들은 정교한 논증들을 통해 우리가 정당화된 믿음을 결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식도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그들은 따라서 우리가 고려하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판단을 유보(suspend)[역주1]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그에 관한 주장을 믿지도 부정하지도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3]
이 글은 피론학파의 회의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그에 대한 여러 대응들을 소개한다.
1. 피론학파의 회의주의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때로는 정당화된다는 것에 누구나 동의한다. 예를 들어,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과 뒷면 중 어느 쪽이 나올지 질문을 받았다면, 앞면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을 것이다. 뒷면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 것도 마찬가지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합리적인 반응은 중립을 유지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인데, 어느 쪽 결론에 대해서도 정당화할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피론학파 회의주의자들은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합리적 반응이라고 주장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피론은 세계에 대한 태도가 너무 회의적이어서 마차가 다가올 때마다 친구들이 그를 길에서 끌어내야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마차에 치일 것이라고도, 치이지 않을 것이라고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4] 피론학파 회의주의자들은 심지어 회의주의적 논증들 자체에 대해서도 판단 유보를 촉구한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회의주의가 정당화된다는 것조차 부정한다.
2. 피론학파 회의주의를 위한 논증들
피론학파 회의주의자들은 이러한 급진적 견해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들은 현상(appearances)이 때로는 우리를 속인다는 것(우리의 감각이 때때로 우리를 잘못 이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정신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사물이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을, 그리고 우리의 기억이나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 이러한 결함들을 고려할 때, 어떤 주장이든 우리가 판단을 유보해야 할 정도로 논란거리가 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5]
이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해결 불가능한 의견 불일치의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당신이 내일 비가 올지에 대해 현재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피론학파 회의주의자라고 가정하자. 나는 당신이 내일 비가 올 것이라고 믿도록 설득하고 싶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정당화하는 이유들을 제시함으로써 의견 불일치를 해결하려 한다.
나는 일기예보를 보았다고 말하며 내일 비가 올 것이라는 나의 믿음을 옹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물을 수 있다. “왜 일기예보를 신뢰하는가?” 나는 기상학자들이 대개 [날씨에 관해서] 옳다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계속 물을 수 있다. “왜 기상학자들이 이전에 옳았다고 받아들이는가?” 내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들의 예측이 정확했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반박할 수 있다. “왜 당신의 기억을 신뢰하는가? 사람들은 종종 잘못 기억한다 ….”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피론학파 회의주의자들은 끈질긴 회의주의자를 상대로 믿음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결국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1. 계속해서 답변하려 시도하다가 결국 더 이상 할 수 있는 대답이 없는 지점에 이른다.
2. 결국 자신이 했던 주장을 반복하기 시작하여 순환에 빠진다.
3. 어떤 가정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론학파 회의주의자들은 이 세 가지 결과가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고 본다. 각각이 회의주의적 도전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남겨두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6] 도전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순환논증을 하는 것도, 어떤 가정들은 정당화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회의주의적 의심을 논란 없이 물리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피론학파 회의주의자들은 이러한 해결되지 않은 논란을 고려할 때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정당화된 반응이라고 결론 내린다.
피론학파 회의주의자들은 이러한 집요한 의견 불일치의 패턴이 어떤 질문에 대해서든 반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번 직접 시도해 보라! 그들은 어떤 믿음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우리가 모든 사안에 대해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3. 응답들
피론학파 회의주의자에게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한 방법은 앞서의 [회의주의적] 추론을 거부하고, 어떤 가정들은 우리가 추가적인 이유들을 제시하지 않아도 정당화된다는 생각을 옹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토대론(Foundationalism)”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토대론은 기초적 믿음들이 제공하는 확고한 토대 위에 지식을 쌓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기초적 믿음들이란 우리가 [회의주의적] 도전들에 맞서 옹호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가정들을 말한다.
또 다른 전략은 특정 종류의 순환적 추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합론(Coherentism)”에 따르면 믿음들은 다른 믿음들에 의해 지지받기 때문에 정당화되며, 이때 믿음들은 서로를 강화하는 일종의 그물망 같은 구조를 만들어 낸다. 정합론자들은 우리가 논란에 대응하여 새로운 이유들을 제공하기를 결국 멈추게 되더라도, 우리의 믿음들 전체를 함께 고려할 때 그것들은 서로를 설명하고 지지함으로써 정당화 체계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7]
[피론학파 회의주의에 대한] 즉각적인 반론은 모든 것에 대한 판단 유보가 가져올 극단적인 결과와 관련된다. 어떤 것도 믿지 않고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피론학파의 견해를 채택하여, 예를 들어 나의 집의 위치(또는 심지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와 같은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은 세계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에는 믿음이 아닌 어떤 다른 인지적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보인다(seem)는 것을 받아들이되, 그것들이 실제로 그렇다고 믿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8] 고대 피론학파의 티몬(Timon)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꿀이 달다고 주장하지 않지만, 단 것 같다(it seems)는 데에는 동의한다.”[9] 한 가지 우려는 이 응답이 실제로는 믿음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사물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보인다(seem)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여기에 믿음은 없고 단지 사물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seem toseem) 것일 수 있을 것이다.
4. 결론
우리가 어떻게 무엇에 대해서든 알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 한다면 피론학파의 논증들에 대응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특히 과학, 종교, 철학, 그리고 인간 사고의 거의 모든 다른 영역에서 논란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렇다.
피론학파는 또한 회의주의가 논란에 대한 올바른 지적 반응일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평온을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우리를 독단론(dogmatism)(또는 지나치게 확신하는 비합리적 믿음)로부터 해방시키고 우리에게 아타락시아(ataraxia), 즉 정신적·감정적 평온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고 여겼다. 따라서 피론학파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회의주의는 이론적 입장인 동시에 좋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10]
주석
[1] 피론학파 회의주의는 일반적으로 회의주의의 두 개의 주요 계열 중 하나로 여겨진다. 다른 하나는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회의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데카르트적 회의주의(Cartesian Skepticism)이다. Marc Bobro의 Descartes’ Meditations 1-3과 Descartes’ Meditations 4-6, Charles Miceli의 Descartes’ “I think, therefore I am”(번역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지식의 토대에 대한 르네 데카르트의 견해)을 보라. 두 계열의 회의주의에 대한 개관은 Comesana and Klein (2024)에서 찾을 수 있다. Fogelin (1994)은 피론학파의 도전을 진지하게 다루는 현대 인식론의 사례이다. 다른 유형의 회의주의들에 대한 소개를 위해서는 Andrew Chapman의 External World Skepticism과 John Ramsey의 Al-Ghazālī’s Dream Argument for Skepticism을 보라.
“정당화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Todd R. Long의 Epistemic Justification: What is Rational Belief?(번역본: 인식적 정당성: 합리적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보라. 정당화에 대해 매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정당화된 믿음은 참일 가능성이 높은 믿음이다. 정당화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어떤 주장을 알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되는 것(그리고 그것이 참인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Andrew Chapman의 The Gettier Problem & the Definition of Knowledge(번역본: 게티어 문제와 지식의 정의)를 보라.
[2] 피론과 고대 피론주의의 발전에 대한 정보는 피론의 견해에 대한 후대의 주석가들로부터 얻을 수 있다. 특히 영향력 있는 출처는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이며, 특히 그의 Outlines of Pyrrhonism이다. 흥미롭게도, 피론 자신이 피론학파 회의주의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그가 실재에 대한 몇 가지 긍정적 견해들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Thorsrud (2009: Chapter 2)는 상세한 역사적 논의를 제공한다.
[3] 판단 유보에 대한 현대 인식론으로는 McGrath (2021)과 Friedman (2013)을 보라. 판단을 유보하는 것의 잘 알려진 예는 불가지론(agnosticism)인데, 이는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포함한다. 즉,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고려해 본 다음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지도 않는 것이다. Sylwia Wilczewska의 Agnosticism about God’s Existence(번역본: 신의 존재에 대한 불가지론)을 보라.
[4] 피론의 저작들은 전해지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철학적 관점에 대한 간접적인 증언을 가지고 있다. 마차에 대한 이야기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The Lives of the Eminent Philosophers) 제9권 62절에서 찾을 수 있다. 피론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Bett (2022)를 보라.
[5] 고대 회의주의자들은 명제들을 논란의 대상으로 만드는 표준화된 방법들을 개발했는데, 이를 “논변형식”(modes)(원어는 τρόποι (trópoi))이라고 불렀다. 이 논변형식은 의견 불일치를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방법들을 분류했다. 예를 들어 사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 다른 상황들에서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간들과 장소들에서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 등등이다. 의견 불일치의 인식적 의의에 대한 소개로 Jonathan Matheson의 The Epistemology of Disagreement(번역본: 의견 불일치의 인식론 )을 보라. 또한 Christensen (2009)도 참조하라.
[6] 이것은 때로 “아그리파의 트릴레마”(Agrippan Trilemma)라고 불린다. 회의주의자에게 응답하려는 시도가 세 가지의 불만족스러운 결과로 귀결되기 때문에 트릴레마라고 한다. 이 트릴레마와 그것이 회의주의적 논변형식들을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최근 연구로 Sienkiewicz (2019)를 보라.
[7] 토대론과 정합론에 대한 소개로는 Thomas Metcalf의 Epistemology, or Theory of Knowledge(번역본: 인식론, 또는 지식 이론)를 보라. 또한 Sosa (1980)도 참조하라.
[8] 보임(seemings)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Kaj André Zeller의 Seemings: Justifying Beliefs Based on How Things Seem을 참조하라.
[9] 피론의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티몬의 저작들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 인용은 Laertius (2018)와 Thorsrud (2009)에서 모두 다루고 있다.
[10] Vogt (2022)는 고대 회의주의에 대한 훌륭한 개론을 제공한다. 이러한 형태의 회의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 적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Christine Darr의 Philosophy as a Way of Life(번역본: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을 보라. 또한 이는 나중에 발전된 “믿음의 윤리학”의 적용으로 볼 수도 있다. Spencer Case의 Is it Wrong to Believe Without Sufficient Evidence? W.K. Clifford’s “The Ethics of Belief”(번역본: 충분한 증거 없이 믿는 것은 잘못인가? W.K. 클리포드의 “믿음의 윤리학”)를 보라.
[역주1] ‘판단 유보’(suspension of judgment)는 그리스어 ‘epoché’의 번역어이다.
참고문헌
Bett, Richard, “Pyrrho”,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all 2022 Edition), Edward N. Zalta & Uri Nodelman (eds.).
Christensen, David (2009). Disagreement as Evidence: The Epistemology of Controversy. Philosophy Compass 4 (5):754-767.
Comesaña, Juan and Peter Klein, “Skepticism”,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ring 2024 Edition), Edward N. Zalta & Uri Nodelman (eds.).
Fogelin, Robert J. (1994). Pyrrhonian Reflections on Knowledge and Justification: Studies in the Foundation of a Theological Trad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Friedman, Jane (2011). Suspended judgment. Philosophical Studies 162 (2):165-181.
Laertius, Diogenes (2018). (James Miller, Editor; Pamela Mensch, Translator). Lives of the Eminent Philosophers. Oxford University Press.
번역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저, 김주일 외 역,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 2』, 나남출판, 2021.
McGrath, Matthew (2021). Being neutral: Agnosticism, inquiry and the suspension of judgment. Noûs 55 (2):463-484.
Stefan Sienkiewicz, (2019). Five Modes of Scepticism: Sextus Empiricus and the Agrippan Modes, Oxford University Press.
Sosa, Ernest (1980). The Raft and the Pyramid: Coherence versus Foundations in the Theory of Knowledge. Midwest Studies in Philosophy 5 (1):3-26.
Thorsrud, Harald (2009). Ancient Scepticism. Routledge.
Vogt, Katja, “Ancient Skepticism”,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Winter 2022 Edition), Edward N. Zalta & Uri Nodelman (eds.).
번역본: 카차 포그트 저, 신우승 외 역, 『고대 회의주의』, 전기가오리, 2018.(구판)
관련 에세이
Epistemology, or Theory of Knowledge by Thomas Metcalf (번역본: 인식론, 또는 지식 이론)
External World Skepticism by Andrew Chapman
Al-Ghazālī’s Dream Argument for Skepticism by John Ramsey
Descartes’ Meditations 1-3 and Descartes’ Meditations 4-6 by Marc Bobro
Descartes’ “I think, therefore I am” by Charles Miceli (번역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지식의 토대에 대한 르네 데카르트의 견해)
The Gettier Problem & the Definition of Knowledge by Andrew Chapman (번역본: 게티어 문제와 지식의 정의)
Agnosticism about God’s Existence by Sylwia Wilczewska (번역본: 신의 존재에 대한 불가지론)
The Epistemology of Disagreement by Jonathan Matheson (번역본: 의견 불일치의 인식론)
Seemings: Justifying Beliefs Based on How Things Seem by Kaj André Zeller
Philosophy as a Way of Life by Christine Darr (번역본: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
Is it Wrong to Believe Without Sufficient Evidence? W.K. Clifford’s “The Ethics of Belief” by Spencer Case (번역본: 충분한 증거 없이 믿는 것은 잘못인가? W.K. 클리포드의 “믿음의 윤리학”)
Moore’s Proof of an External World: Responding to External World Skepticism by Chris Ranalli
저자 소개
루이스 로스(Lewis Ross)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 철학·논리학 및 과학방법론 학과 교수이다. 그는 또한 LSE의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철학센터(CPNSS) 소장이기도 하다. 그는 인식론, 정치철학, 법철학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저술했다. LewisDylanRoss.com
이 글은 Lewis Ross의 Pyrrhonian Skepticism: Suspending Judgment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