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플라톤의 ‘기게스의 반지’ 사고실험 – Spencer Case

만약 당신이 도둑질을 하고, 사기를 치고, 그 밖에 어떤 도덕규범을 어기더라도 처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 어떨까? 그래도 여전히 옳은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347년)은 이상 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한 대화편 『국가』에서 바로 이 물음을 다루었다.

플라톤은 그런 경우에도 당신은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 글은 그의 견해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 중 하나를 설명한다.


1. 정의에 관한 대화

『국가』 제2권의 시작 부분에서,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형제인 글라우콘은 정의에 관해 논의한다. 다만 이어지는 대화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정의에만 국한되지 않고 윤리 전반을 다루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가 그 자체로 좋은 것일 뿐 아니라, 개인의 안전이나 번영 같은 다른 좋은 것들을 위한 수단으로서도 좋다고 말한다.[1]

글라우콘은 이 말에 동의하는 편이지만, 소크라테스가 그것을 증명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글라우콘은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자처한다. 토론 기회라면 절대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기로 한다.

글라우콘은 오늘날 철학자들이 ‘계약론(contractarianism)’이라 부르는 정의관을 개략적으로 제시한다.[2] 소크라테스의 견해와 상충하는 이 견해에 따르면,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발각되거나 처벌받을 염려 없이 부정의를 저지를 수 있고, 타인이 자신에게 똑같이 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는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부정의를 막을 강제 규칙이 없다면 누구도 타인의 악행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정한 규칙을 두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의가 그 자체로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정의가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보호하는 데 유용하다는 뜻일 뿐이다.


2. 글라우콘의 도전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기게스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리디아 왕을 섬기는 평범한 양치기였다. 어느 날, 그가 양 떼를 돌보고 있던 곳에서 지진이 일어나 땅에 구멍이 생겼다. 그는 그 안으로 내려가 여러 기이한 물건들 가운데서 반지 하나를 발견했다. 기게스는 그 반지를 집어 손가락에 끼웠다. 그 후 양치기들의 모임에서, 기게스는 반지를 손바닥 쪽으로 돌리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를 깨달은 기게스는 온갖 나쁜 짓들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궁정에 전갈을 전한다는 구실로 왕궁에 들어가서 왕비를 유혹했다. 두 사람은 함께 음모를 꾸며 기게스가 충성을 맹세했던 왕을 살해했고, 기게스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여 새 통치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해 왔다.[3] 그러나 그 판타지 대서사에 나오는 반지와 달리, 기게스의 반지는 착용자를 지배하는 어떤 특별한 힘도 없다. 그 반지는 기게스를 타락시키지 않는다. 반지는 다만 그가 처음부터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드러낼 뿐이다. 그는 오직 처벌의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억제해 왔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글라우콘은 이 사고실험이 인간 본성 일반을 폭로한다고 본다. 우리 모두는 처벌만 피할 수 있다면 기게스처럼—마음 내키는 대로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강간하면서—행동하리라는 것이다.


3. 논증

이러한 심리적 추측이 정의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글라우콘의 논증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정의든 그 무엇이든, 그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유일한 근거는, 다른 좋은 것들이 함께 따라오지 않을 때에도 그것이 좋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과 같은 부수적 이득들을 걷어내고 나면, 정의는 더 이상 우리에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정의가 (대체로) 가져다주는 좋은 것들이 ‘정의는 좋다.’는 우리의 믿음을 완전히 설명한다. 따라서 정의에 도구적 가치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

글라우콘은 여기에 한 가지 변주를 더한다.

완전히 부정의한 사람과 완전히 정의로운 사람이 있는데, 각자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운명이 뒤바뀐 경우를 상상해 보라. 가령 기게스가 자신의 악행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운다고 해 보자. 그러면 그 무고한 사람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로 고문당하고 처형당하는 반면, 기게스는 좋은 평판이 가져다주는 온갖 이점을 만끽한다.

분명, 기게스가 될 수 있는데도 이 불운한 처지에 빠진 정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선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달이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듯이, 정의도 우리 각자가 좋은 것들을 얻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빛나 보이는 것일 뿐이다. 정의가 그러한 것들을 가져다주지 않을 때에도 정의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구매력이 없는 돈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과 같다.


4. 비판

이 논증은 정의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하는가?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글라우콘이 정말로 인간성에 대해 그토록 냉소적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그는 과장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반지를 갖게 된다면 어느 정도 도덕의 선을 넘으려 할 것이다. 당신도 한 대 치고 싶은 정치인 한 명쯤은 분명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모두가 사이코패스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슈퍼히어로들처럼 그 반지를 좋은 일을 하는 데 쓰기도 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신경을 쓴다.

불의하게 살면서 보상받는 것보다 정의롭게 살면서 처벌받기를 원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여러 가지를 보여 줄 수 있다. 글라우콘이 시사하듯, 그것은 우리가 정의롭게 행동해야 할 가장 강한 이유를 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설령 글라우콘의 말이 옳다 하더라도, 이는 정의가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견해와 양립 가능하다. 다만 정의롭게 행동해야 할 이유가 때때로 이와 상충하는 다른 이유들에 의해 압도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


5. 결론: 글라우콘에 대한 플라톤의 답변

『국가』의 나머지 부분 전체는 글라우콘에 대한 플라톤의 길고 상세한 답변을 이룬다.

요약하자면, 플라톤은 우리가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정의로운 일, 곧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언제나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부정한 행위는 우리의 영혼, 곧 인간으로서의 인격을 해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보다 앞서 쓰인 대화편 『고르기아스』에서도 이 견해를 옹호한다.[4]

어떤 이들은 자기이익과 도덕적 의무가 충돌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궁극적인 답이 없다고 보아 왔다.[5] 합리적이면서도 도덕에 무관심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직관적 가능성 때문에,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남아 있다.


주석

[1] Plato, Republic. Trans. by Benjamin Jowett. The Project Gutenberg eBook.

[2] 계약론과 유사한 견해들에 관한 입문적 설명은 데이비드 안토니니(David Antonini)의 Social Contract Theory와 대니얼 웰트먼(Daniel Weltman)의 “Nasty, Brutish, and Short”: Thomas Hobbes on Life in the State of Nature를 보라.

[3] Tolkien, J.R.R. Lord of the Rings, with a new forward by the author. New York: Ballantine Books, 1965.

[4] Plato, Gorgias. Trans. by Benjamin Jowett.  The Project Gutenberg eBook.

[5] 19세기 영국 공리주의 철학자 헨리 시지윅(Henry Sidgwick)은, 자기이익(‘이기주의’)의 관점과 불편부당한(impartial) 도덕의 관점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기이익에 따른 의무와 도덕적 의무가 충돌할 때에는,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유명한 주장이다(Sidgwick, Henry. The Methods of Ethics, 7th ed. London: MacMillan and Co. LTD, 1963, 508). 데이비드 코프(David Copp)는 바로 이것이 우리가 기게스 이야기에서 끌어내야 할 교훈이라고 주장한다(Copp, David “The ring of Gyges: Overridingness and the unity of reason,” Social Philosophy and Policy 14 (1) (1997): 86-106 참조).


참고 문헌

Copp, David “The ring of Gyges: Overridingness and the unity of reason,” Social Philosophy and Policy 14 (1) (1997): 86-106.

Plato, Gorgias. Trans. by Benjamin Jowett.  The Project Gutenberg eBook.
번역본1: 플라톤 저, 김인곤 역, 『고르기아스』, 아카넷, 2021.
번역본2: 플라톤 저, 박종현 역, 『플라톤의 고르기아스/메넥세노스/이온』, 서광사, 2018.
번역본3: 플라톤 저, 천병희 역, 『플라톤전집 3 – 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이온/크라튈로스/소피스트/정치가』, 도서출판 숲, 2019.

Plato, Republic. Trans. by Benjamin Jowett. The Project Gutenberg eBook.
번역본1: 플라톤 저, 강성훈, 김주일, 김혜경, 정준영 역, 『국가』, 아카넷, 2026.
번역본2: 플라톤 저, 박종현 역, 『플라톤의 국가·정체(政體)』, 서광사, 2005.
번역본3: 플라톤 저, 천병희 역, 『플라톤전집 4 – 국가』, 도서출판 숲, 2013.

Sidgwick, Henry. The Methods of Ethics, 7th ed. London: MacMillan and Co., LTD, 1963
번역본: 헨리 시지윅 저, 강준호 역, 『윤리학의 방법』, 아카넷, 2018.

Tolkien, J.R.R. Lord of the Rings, with a new forward by the author. New York: Ballantine Books, 1965.
번역본: J.R.R. 톨킨 저, 김보원, 김번, 이미애 역, 『반지의 제왕 1~3』, arte(아르테), 2021.


관련 에세이

Ethical Egoism by Nathan Nobis

Virtue Ethics by David Merry

Social Contract Theory by David Antonini

“Nasty, Brutish, and Short”: Thomas Hobbes on Life in the State of Nature by Daniel Weltman

Plato’s Crito: When should we break the law? by Spencer Case

Ancient Cynicism: Rejecting Civilization and Returning to Nature by G. M. Trujillo, Jr.

(Im)partiality by Shane Gronholz

Practical Reasons by Shane Gronholz

Plato’s Form of the Good by Ryan Jenkins


저자 소개

스펜서 케이스(Spencer Case)는 콜로라도대학교 볼더 캠퍼스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같은 대학에서 강사로 재직 중이다. 그는 철학 팟캐스트 〈Micro-Digressions: A Philosophy Podcast〉를 진행하고 있으며, 학술적인 글과 그 외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 활동을 활발히 이어 가고 있다. SpencerCasePhilosophy.com


이 글은 Spencer Case의 Why be Moral? Plato’s ‘Ring of Gyges’ Thought Experiment를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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