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도 다른 정치인들과 똑같았어.” 이것은 [2015년 그리스 재정위기 당시] 좌파 성향의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 총리가 자신이 그토록 격렬히 반대했던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한 직후 아테네에서 내가 계속 들었던 불평이었다. 실제로는 그가 다른 정치인들과 같았다기보다는, 다른 그리스 정치인들과 동일한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무너지는 경제, 타협의 여지가 없는 채권자들, 좌절감에 빠진 다른 지도자들…. 이런 외부적 제약들이 그를 선거 때의 약속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아테네 시민들이 이 상황에 놀라고 실망했다는 사실은 현대 서구 민주주의의 더 깊은 문제를 반영한다. 그들의 고대 선조들은 이미 이 문제의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현대 국가들은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라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한 개인의 투표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극히 작기 때문에, 정치적 이슈와 후보자들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것은 비합리적으로 여겨진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고, 결국 검증되지 않은 그럴듯한 정치 수사에 쉽게 현혹된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을 그들의 약속만 믿고 뽑은 다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지켜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2,500년 전 아테네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당시 민주주의, 즉 ‘인민에 의한 통치’는 지속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평생에 걸쳐 주기적으로 폴리스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표현한 것처럼 ‘번갈아가며 통치하고 통치받는 것’이었다. 이러한 참여는 권리인 동시에 책임이었다. 이는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것일뿐 아니라, 더 나은 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의사결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지 배우는 실전 교육이었다.
남성 시민들은 일부 현대 국가들처럼 단지 군대나 배심원단에서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의사결정 기구인 민회에 직접 참석해야 했다. 또한 일부 행정직은 선거로 뽑혔지만, 대부분은 추첨으로 선발되었다. 이는 하루 임기의 평의회 의장직(Prime Minister)까지도 포함했다. 남성 시민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공동체를 대표하거나, 외국 사절을 접견하는 역할을 맡게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현대 국가들은 물론 고대 아테네보다 훨씬 크고, 다행히도 참정권은 더 넓게 주어진다. 인구 규모만 생각해도 모든 시민이 하루씩 총리(Prime Minister)를 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방, 지역, 국가, 국제적 차원 등 모든 수준에서 정부가 근본적으로 참여적으로 될 여지는 있다. 예를 들어, 입법 기관은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추첨으로 선출될 수 있다. 영국 상원과 같은, 양원제 의회의 제2원은 이런 방식을 도입하기에 적합한 후보이다.
새로운 법안이나 정부의 특정 영역을 검토하기 위해 별도의 [시민 참여] 의회를 소집하는 것은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이는 입법 시스템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수를 크게 늘릴 것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바로 이런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술 덕분에 이런 방식을 더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무원 제도는 인턴십과 단기 임용에 더 열려 있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어떤 형태로든) 국가에 봉사하는 것을 마치 군 복무가 그래온 것처럼 의무화할 수도 있다. 특정 사안을 다루는 임시 시민 의회, 시민 발의 프로그램, 입법 과정에서의 더 넓은 협의 과정 등은 모두 더 많은 사람들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모두 똑같다고 밝혀질 정치인들에게 투표하는 것을 의미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평범한 시민들 스스로가 통치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알았듯이, 이는 더 현명한 결정과 현명한 시민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저자 소개
스티븐 케이브(Stephen Cave)는 케임브리지 대학교(the University of Cambridge) 리버흄 미래지능센터(the Leverhulme Centre for the Future of Intelligence )의 상무이사이자 선임연구원이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영국 외교관으로도 활동했으며, 뉴욕 타임스, 애틀랜틱, 가디언 등에 철학적, 과학적 주제에 관한 다양한 글을 기고해왔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Democracies fail when they ask too little of their citizens를 번역한 것입니다.
Aeon의 번역 및 배포 기준을 준수하여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