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철학: 통제할 수 있는 것에서 행복 찾기 – Matthew Pianalto

세상일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짜증나게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병에 걸리거나 직장에서 해고당하기도 한다. 결혼식 날에 비가 올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은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는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두려워질 수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일들은 대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런 일들이 마음을 괴롭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신 우리는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은 차분히 받아들이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우리의 믿음, 판단, 선택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이것이 행복하고 좋은 삶의 핵심이다.

이 글은 스토아 철학의 기본 생각들을 소개한다.


1. 역사

스토아 철학은 약 2천 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고, 영향력 있는 윤리 체계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토아 철학을 따른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스토아 철학을 실천했고, 정치가 세네카(Seneca)도 그랬다. 스토아 철학이 특권층에게만 매력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생의 일부를 노예로 살았던 에픽테토스(Epictetus) 역시 스토아 철학자였다.[1]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가 이성적 질서를 따른다고 믿는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2] 좋은 삶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성으로 그에 대응하는 것이다. 즉, 논리적으로, 그리고 용기, 인내, 정의, 절제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3]

스토아 철학자들은 평등주의적 인간관을 옹호한다. 모든 인간은 사고 능력을 공유하며, 이에 근거하여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재산, 교육, 사회적 지위가 우리를 다른 사람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하게 만들지 않는다.[4] 우리는 모두 세계의 동등한 시민이며, 하나의 인류 공동체의 일부이다.


2. 근본적 구분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Handbook)은 스토아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으로 시작한다.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 의견, 의도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적인 것, 즉 우리 마음속의 것이다. 외적인 모든 것—우리의 몸, 재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5] 우리 몸은 아무리 건강하려고 노력해도 병들거나 다칠 수 있다. 물질적 소유물도 마찬가지다. 부서지거나 도난당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의견을 형성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의견 외에는 누구의 의견도 통제할 수 없다.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을 통제하려 한다면, 우리는 불행해질 것이다.[6] 반대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 집중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잘 대응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소중한 물건이 부서졌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화를 낼 수도 있고, 아니면 차분히 조각들을 주울 수도 있다.[7] 물건은 부서지기 마련이다. 짜증을 내더라도 그것은 바뀌지 않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Meditations)을 시작하면서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매일 무지하고, 무능하고, 성가시고, 비윤리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8] 그들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게다가 그들이 일부러 우리의 신경을 건드는 것이라면,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그들에게 우리의 통제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동료가 모욕적인 말을 했다면, 우리는 그것 때문에 괴로워할 수 있다.[9] 아니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은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고, 우리가 그를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일들을 침착하게 다루는 것은 더 어려운 상황에서 덕스럽게 행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에픽테토스는 심지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훈련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악명 높다.[10]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거부감을 느끼며, 그것이 비현실적이고 냉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픽테토스가 의미하는 것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슬픔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 상실을 견딜 것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이 사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달린 것에 집중하는 것의 일부다.[11]

에픽테토스는 모든 것에는 “두 개의 손잡이”가 있다고 말한다.[12] 한 손잡이는 그것을 견딜 수 있게 만들고, 다른 손잡이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상황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손잡이”로 잡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자. 직장에서 낭비하게 될 시간이나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집중한다면 불행해질 것이다. 대신 우리는 회복하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밀린 독서를 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에도 우리는 인내나 친절 같은 덕을 실천할 수 있다.[13]


3. 비판

스토아 철학자들은 차갑고, 무심하고, 패배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14] 어떤 사람들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강한 감정을 거부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때로는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또한 스토아 철학이 불행이나 불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포기”하게 만든다고 우려한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면, 여전히 미국에는 노예제가 존속하고 있었을 것이고 여성들은 투표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다![15]

하지만 스토아 철학자들은 어떤 감정은 좋다는 것을 인정한다. 위험이 다가올 때 경계심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부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해주므로 좋다. 어려운 상황에서 용기, 지혜, 정의 같은 덕을 실천하는 데 성공했을 때 기쁨을 느끼는 것도 좋다.[16] 문제는 분노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우리를 해롭고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17]

스토아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상황을 차분히 받아들이라고 촉구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부당하게 행동하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인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분노나 슬픔에 사로잡힌다면, 똑같이 나쁘게 행동하거나 전혀 행동하지 못할 수 있다. 힘든 시기에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내하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18]


4. 결론

삶은 힘들 수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걱정함으로써 삶을 더 힘들게 만들지 말라고 촉구한다. 대신 우리는 우리 상황을 살피고, 용기, 인내, 그리고 타인과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역경에 의연하게 맞서도록, 그리고 부와 건강과 우정이 있을 때 그것들을 낭비하지 않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19] 스토아 철학자들에게는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20]


주석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년)는 『명상록』을 그리스어로 썼다. 세네카(기원전 약 4년-65년)는 라틴어로 저술했다. 에픽테토스(약 50-약 135년)의 『강의』(Discourses)와 『엥케이리디온』은 그의 제자 아리아노스(Arrian)가 기록하여 편찬한 것이다. 스토아 철학에 대한 추가 입문서로는 Durand et al (2023), Pigliucci가 쓴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stoicism 항목, 그리고 Irvine (2008)을 참고하라. Durand et al에는 일부 스토아 철학 원전의 온라인 영어 번역본 링크가 제시되어 있다.

[2] 예를 들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주의 본성이 우주를 창조하려 했다. 그렇다면 다음 둘 중 하나가 참이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필연적 결과로서 그렇게 되는 것이거나, 아니면 우주를 주재하는 원리가 자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가장 중요한 것들조차 이성의 지배 밖에 있는 것이다. 이를 기억하라. 그러면 당신은 많은 어려움을 더 평온한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명상록』 7권 75절).

[3]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윤리 사상이 소크라테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y)에서 소크라테스는 선한 사람은 악한 사람에 의해 해를 입을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고결함과 평정심을 가지고 자신의 죽음을 맞이했다.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여러 곳(5절, 51절, 53절 등)에서 소크라테스를 언급한 것을 보라. 핵심 사상은 덕이 좋은 삶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이다. 즉, 덕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우리 삶을 좋게 만든다. 우리는 악하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지만, 누구도 우리에게 악한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저항할 힘, (정의를 포함한) 덕에 대한 헌신을 확고히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스토아의 덕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과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 행복에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으며, 행복은 또한 외적인 선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Galuzzo (2017)를 참고하라. 덕 윤리학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는 David Merry의 Virtue Ethics를 보라.

[4] 예를 들어,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다음 주장들은 타당한 추론이 아니다. ‘나는 너보다 부유하다. 따라서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 또는 ‘나는 너보다 말을 잘한다. 따라서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 … 당신은 당신의 재산도, 당신의 말솜씨도 아니다”(『엥케이리디온』 44절).

[5]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1절.

[6] 스토아 철학의 행복 개념은 Kiki Berk의 Happiness: What is it to be Happy?에서 소개한 “덕 이론”(Virtue Theory) 범주에 속한다.

[7]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3절.

[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권 1절.

[9]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 관해서는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20절, 28절, 33절을 보라.

[10]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3절. 죽음에 대처하는 것에 관해서는 5절, 11절, 16절도 보라. 흥미롭게도,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서는 스토아학파와 의견이 다르지만,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스토아학파와 의견을 같이한다. Frederik Kaufman의 Is Death Bad? Epicurus and Lucretius on the Fear of Death를 보라.

[11]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를 준비하고 유산을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일 수 있다. 이러한 의무를 적절히 이행하려면 마음을 추스를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는 슬픔을 느끼고 그들을 그리워할 수 있다. 그러나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은 어리석다고 경고한다(『엥케이리디온』 14절). 이러한 경고의 중요한 함의는 현명한 스토아 철학자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며, 그들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죽음과 상실에 대한 스토아적 태도에 관한 더 자세한 논의는 Earp (2018)를 보라.

[12] “두 개의 손잡이”가 있다는 것은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보거나 판단하는 (적어도) 두 가지 다른 방식이 있다는 뜻이다.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43절.

[13] 에픽테토스, 『강의』 3권 10장 (The Complete Works에 수록).

[14] ‘스토아적’(stoic)의 일상적 의미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라는 것은 이러한 비판을 뒷받침하지만, 이러한 용법이 전부는 아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Nussbaum (1994)의 10장과 11장을 보라. 특히 주목할 점은 누스바움(Nussbaum)이 Nussbaum (2015)에서 세네카와 분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최근 수정했다는 것이다.

[15] 어떤 사람들은 특히 모든 사건은 이성적이고 섭리적인(또는 신적인) 자연의 질서에 따라 일어난다는 고대 스토아의 사상이 우리에게 현상 유지를 받아들이도록, 그리고 심지어 부당해 보이는 일조차 좋은 이유로 일어난다고 여기도록 조장한다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Pigliucci (2017)는 우주가 이성적으로 질서 지어져 있다고 믿지 않더라도 스토아 윤리학은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것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하면 불행해진다는 점은 여전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16] 여기서는 감정에 관한 스토아 이론의 전문적인 세부사항은 다루지 않는다. 기본 생각은 감정(emotions)과 느낌(feelings)이 구별된다는 것이다. 감정(pathê)은 잘못된 판단에 결합된 강한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느낌은 참된 판단(예를 들어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잘 행동했다는 판단)에 결합될 수 있다. 이를 에우파테이아(eupatheiai)(좋은 느낌)라고 부른다. 더 자세한 내용과 예는 Pigliucci가 쓴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Stoicism” 항목 4절과 Irvine (2008)을 보라.

[17] 세네카의 『분노에 관하여』는 사람들이 분노의 “짧은 광기”(즉, 정신 이상)에 사로잡혔을 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의 생생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Seneca (2010).

[18] 자세한 내용과 예시는 스토아적 투지(grit)와 회복력에 대한 Nancy Sherman (2021)의 논의를 보라.

[19] 세네카는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많이 낭비하는 것이다”(2005, p. 1). 그는 우리가 여러 방식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말한다. 너무 많이 일하거나, 너무 많이 놀거나, 오락에 몰두하게(“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가 드는 예는 서커스와 레슬링 경기를 보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내는 것인데, 현대적 예로는 TV 프로그램을 몰아보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세네카는 죽도록 일하는 것에도 어떤 덕도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철학적 사유와 대화를 위한 시간, 그리고 적당한 양의 와인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긴장을 풀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인생의 짧음에 관하여』에 수록된 「평정심에 관하여」(“On Tranquility of Mind”) 참고).

[20] 이 짧은 에세이를 개선하고 심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안을 해 주신 Mark Conard, Nathan Nobis, Tiina Rosenqvist, Daniel Peterson, Matt Sanderson, Kristin Seemuth Whaley에게 감사드립니다.


참고문헌

Aurelius, Marcus (2011). Meditations. Translated by Robin Hard. Oxford University Press. (그리스어 원전, 약 170-180년 저술)

번역본 1: 천병희 역, 『명상록』, 도서출판 숲, 2005.
번역본 2: 박문재 역, 『명상록』, 현대지성, 2018.

Epictetus (2022). The Complete Works. Edited and translated by Robin Waterfiel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그리스어 원전, 아리아노스(Arrian)가 약 108년 편찬)

번역본: 김재홍 역, 『에픽테토스 강의 1·2』, 『에픽테토스 강의 3·4, 엥케이리디온, 단편』, 그린비, 2023.

Epictetus (1983). The Handbook (The Encheiridion). Translated by Nicholas P. White. Hackett. (그리스어 원전, 아리아노스(Arrian)가 약 108년 편찬)

번역본 1: 김재홍 역, 『엥케이리디온』, 그린비, 2025.
번역본 2: 강분석 역, 『에픽테토스의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삶의 기술』, 사람과책, 2008.
번역본 3: 신혜연 역, 『엥케이리디온,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을 때』, 이소노미아, 2022.
번역본 4: 노윤기 역,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 – 지혜에 관한 작은 책, 엥케이리디온』, 페이지2, 2024.

Durand, Marion, Simon Shogry, and Dirk Baltzly (2023). “Stoicis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ring 2023 Edition), Edward N. Zalta & Uri Nodelman (eds.).

Earp, Brian D. (2018, August 21). “Against Mourning.” Aeon.

Galluzzo, Gabriele (2017, June 10). “Poor but Happy? Aristotle and the Stoics on External Goods.” Modern Stoicism.

Irvine, William B. (2008). A Guide to the Good Life: The Ancient Art of Stoic Joy. Oxford University Press.

번역본: 윌리엄 B. 어빈 저, 이재석 역, 『좋은 삶을 위한 안내서』, 마음친구, 2022.

Nussbaum, Martha C. (1994). The Therapy of Desire. Princeton University Press.

Nussbaum, Martha C. (2015). “Transitional Anger.” Journal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Association 1(1): 41-56.

Pigliucci, Massimo (2017). How to Be a Stoic: Using Ancient Philosophy to Live a Modern Life. Basic Books.

번역본: 석기용 역,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든, 2019.

Pigliucci, Massimo. “Stoicism.”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Last Accessed 3/25/2025.

Seneca (2005). On the Shortness of Life. Translated by C. D. N. Costa. Penguin. (라틴어 원전, 약 49년 저술)

Seneca, Lucius Anneus (2010). Anger, Mercy, Revenge. Translated by Robert A. Kaster and Martha C. Nussbaum. University of Chicago Press. (라틴어 원전, 약 45-56년 저술)

– 세네카 저서 한국어 번역본
박문재 역, 『화에 대하여』, 현대지성, 2025.
박문재 역,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현대지성, 2025.
김남우, 이선주, 임성진 역, 『세네카의 대화 : 인생에 관하여』, 까치, 2016.

Sherman, Nancy (2021). Stoic Wisdom: Ancient Lessons for Modern Resilience. Oxford University Press.

번역본: 나경세 역, 『오늘날 스토아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 해피한가, 2023.


관련 에세이

Transformative Experiences: Can Life-Changing Choices Be Both Rational and Authentic? by Felipe Pereira

Aristotle on Friendship: What Does It Take to Be a Good Friend? by G. M. Trujillo, Jr.

The Badness of Death by Duncan Purves

Happiness: What is it to be Happy? by Kiki Berk

“Hell Is Other People”: Jean-Paul Sartre on Personal Relationships by Kiki Berk

Is Death Bad? Epicurus and Lucretius on the Fear of Death by Frederik Kaufman

Meaning in Life: What Makes Our Lives Meaningful? by Matthew Pianalto

Philosophy as a Way of Life by Christine Darr (번역본: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

Virtue Ethics by David Merry


저자 소개

매튜 피아날토(Matthew Pianalto)는 이스턴 켄터키 대학교(Eastern Kentucky University) 철학 교수이다. 『인내에 관하여』(On Patience, 2016)를 비롯해 윤리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eku.academia.edu/MatthewPianalto


이 글은 Matthew Pianalto의 Stoicism: Finding Happiness in What’s Under Your Control을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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