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나는 자살해야 하는가?”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말한다면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이 질문은 카뮈가 본질적인 인간의 문제라고 여겼던 것, 즉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부조리하다(absurd)는 감각에 기초한다.
이 글은 카뮈의 1942년 저작 『시지프 신화』(The Myth of Sisyphus)에 나타난 부조리 개념의 기원과 그 귀결을 개괄한다.[1]
1. 부조리의 기원
부조리(absurd)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것들이 많이 있다. 무례한 농담, 터무니없는 말, 유명 디자이너 상표 청바지의 가격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는 카뮈가 “부조리”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다.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는 다음 두 가지의 결합에서 기원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계의 모습과 실제 세계의 모습.
우리가 원하는 세계의 모습에 대해 말하자면,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감각을 가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우리는 세상이 정의롭고 공정하기를 원한다. 즉, 우리는 악이 처벌받고 미덕이 보상받기를 원한다. 또한 우리는 왜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 왜 나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악은 처벌받지 않고, 선행은 종종 보상받지 못한다. 나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고,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며, 우리는 이 중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카뮈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을 그저 지금 이해하지 못할 뿐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카뮈의 부조리 이론은 형이상학적 측면과 인식론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형이상학적 논제로서, 부조리는 인간의 정신과 무심한 우주 사이의 대립이다. 존재하는 것은 “욕망하는 정신과 실망시키는 세계”이다.(50) 인식론적 논제로서, 부조리는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와 우리 지식의 근본적인 한계를 부각시킨다.
2. 부조리의 불가피성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진단한 후, 카뮈는 부조리에 직면하여 우리가 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예후(豫後, prognosis)의 문제로 관심을 옮긴다.
『시지프 신화』는 무엇보다도 실존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특히 키르케고르(Kierkegaard), 야스퍼스(Jaspers), 하이데거(Heidegger)와 같은 사상가들이 신이나 초월적인 것에 호소함으로써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카뮈는 이 사상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삶이 부조리하다고 전제하고는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함으로써 (결국에는 삶이 정말로 부조리하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자기모순에 빠진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키르케고르는 삶이 중심적인 의미의 결핍으로 인해 깊이 부조리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신앙의 도약”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본질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이 궁극적으로 삶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카뮈는 이러한 형태의 현실 도피(escapism)에 반대하며, 실존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짓누르는 것을 신격화하고 자신들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에서 희망의 이유를 찾는다”고 주장한다.(24)
카뮈는 초월적인 것에 대한 호소를 거부한다. 그에게 부조리—우리와 세계 사이의 “이혼”—는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을 나타낸다. 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 카뮈는 종교성의 거짓된 희망 대신 부조리에 대한 생생한 인식과 일종의 반항을 권한다.
3. 부조리와 행복: 시지프 신화
그리스 신화에서, 시지프는 신들에 의해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무의미한 일을 하도록 처벌받았다. 그가 큰 바위를 산 정상까지 굴려 올리고 나면, 그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그는 이것을 영원히 반복해야 했다.
평범하고 하찮은 일들로 가득 채워진 삶을 사는 시지프의 존재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는 무의미함(그리고 부조리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카뮈는 한 사람의 삶이 본질적으로 단조로운 루틴의 반복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기상, 전차, 사무실이나 공장에서의 네 시간, 식사, 전차, 다시 네 시간의 일, 식사, 잠, 그리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의 규칙적인 반복…” (12-13).
그러나 카뮈에게 시지프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시지프는 “부조리의 영웅”을 대표한다. 그는 부조리에 직면하여 살아가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 “살아가기로 선택함”은 의식의 문제이다. 시지프는 자신의 상황을 바꿀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태도와 관점을 통해 처벌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시지프는 자신에게 내려진 처벌의 전체 범위를 인식하고 있다. 그는 신들이 그에게 부과한 운명과 자신의 존재의 완전한 무의미함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열정, 자유, 그리고 반항은 그를 짓누르려는 처벌보다 그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카뮈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바위를 “자신의 것”(123)으로 만듦으로써, 시지프스는 존재에서 기쁨을 찾는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오르막길이 더 편해졌을 수도 있다. 한때 바위의 무게를 힘겨워했던 근육이 이제는 쉽게 바위를 다룰 수 있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바위가 너무나 우아하게 위로 움직여서 그것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다.
자신이 가진 자유를 통해 시지프는 신들에게 반항하고 열정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살아감으로써 그들의 처벌의 무의미함을 거부한다. 바위, 산, 하늘, 그리고 흙은 그의 것이며 그의 세계이다. 시지프에게 자신의 상황을 바꿀 희망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에게 주어진, 그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활용한다.
4. 결론
자살의 질문에 대한 카뮈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카뮈는 우리가 부조리에 직면하여 견뎌내야 하며 거짓된 희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삶의 의미가 없을 때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열정, 자유, 그리고 반항—부조리의 세 귀결—으로 삶을 살아갈지는 우리에게 달린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거짓된 희망에 몰두하거나 아예 살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의 열정과 부조리한 자유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주어진 모든 것을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세상에 뛰어들 수 있다. 비록 우리는 부조리를 야기하는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긴장을 결코 해소할 수 없지만, 결국 “요점”은 “살아가는 것”(65)임을 기억할 수 있다.
주석
[1] 이후의 인용은 『시지프 신화』에서 발췌하여 본문에 제시한다. 첫 번째 인용문은 3페이지에서 인용한 것이다.
참고 문헌
Camus, Albert (1942), The Myth of Sisyphus, J.O’Brien (trans.). Harmondsworth: Penguin, 2018.
더 읽을 것들
Aronson, Ronald, “Albert Camus”,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ummer 2017 Edition), Edward N. Zalta (ed.), URL = <https://plato.stanford.edu/archives/sum2017/entries/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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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편집자들은 이 에세이에 대해 피드백을 해 준 매튜 하워리(Matthew Howery)와 멜리사 슈(Melissa Shew)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자 소개
에릭(Erik)은 에든버러 대학(the 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켄트 대학(the University of Kent)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켄트 대학에서 조교 및 강사로 철학을 가르쳤다. 주 관심사는 형이상학과 행위자성의 철학(philosophy of agency)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https://kent.academia.edu/Erikvanaken
이 글은 Erik Van Aken의 Camus on the Absurd: The Myth of Sisyphus를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