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에세이는 철학적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글입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동일성 접근법(the Sameness Approach)과 차이 접근법(the Difference Approach)을 다룬 처음 두 글은 애널리 커티스(Annaleigh Curtis)가, 지배 접근법(the Dominance Approach)을 다룬 세 번째 글은 첼시 하라미아(Chelsea Haramia)가 작성했습니다. 첫 번째 글은 여기에서(번역본은 여기에서), 두 번째 글은 여기에서(번역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흔한 고정관념이 있다. “여성은 덜 이성적이고 더 감정적이다.”
두 가지 질문이 즉시 떠오른다. 무엇보다 덜 이성적이라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더 감정적이라는 것인가?
직접적인 대답은 남성이다.[1] 이와 관련된 또 다른 대답은 여성은 마땅히 그래야 할 정도보다 덜 이성적이고 더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답변을 종합해 보면, 원래의 주장에 특정한 가정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남성이 우월하며, 남성이 여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2] 이러한 남성의 우월성과 여성의 열등성이라는 가정은 고정관념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 설령 이러한 고정관념이 남성과 여성 간의 위계를 명시적으로 주장하지 않더라도 말이다.[3]
지배 접근법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부정의가 불공정한 지배와 종속의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부당한 권력 관계는 우리의 담론, 관계, 제도가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근본적인 방식이다. 이는 지배 집단인 남성들이 사회를 구조화하고, 심지어 그 사회를 비판하는데 사용되는 논의 자체도 종속된 집단과 개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게 했다. 요약하자면, 지배 접근법은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젠더 부정의의 근원으로 지목한다.
모든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부당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불평등하지만 정당한 권력 관계가 있다.
그러나 젠더 기반 억압의 사례들은 단순히 불평등한 권력 관계뿐 아니라 권력의 남용을 수반하며, 지배적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평가절하하고 심지어 비인간화하기까지 한다.
이 시리즈의 제2부에서 보았듯이, 차이 접근법은 현존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4]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는] 앞서 언급한 고정관념에 대해, 감정과 감정적 사고는 실제로 매우 가치 있는 것이며, 여성의 이른바 감정적 성숙함은 장점이라고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배 이론가들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할 것이다.[5] 이는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남성들이 누가 가치 있는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고 전제하는 체계를 암묵적으로 강화할 뿐이며, 결과적으로 지배 집단이 가진,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신 지배 접근법은 이러한 구조와 조건 자체를 비판하면서, 이것들이 권력을 가진 자들, 즉 지배적 위치의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고 주장한다. 젠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월성과 열등성에 대한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인 가정들을 거부해야 한다. 고정관념에 따른 여성적 특성들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으로는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현실을 폭로하지 못한다.
따라서 지배 이론가에게는 고정관념에 따른 여성적 특성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권력과 지배가 이미 성별과 젠더 차이에 대한 우리의 가정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방식이다. 메릴린 프라이(Marilyn Frye)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가정이 우리의 일상적 논의의 기반이 된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이 현재 논의되는 내용뿐 아니라, 용인될 수 있는 내용의 범위까지를 결정하게 된다.”[6]
이런 종류의 지배는 담론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구조화하는 체계와 제도에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별과 젠더의 차이가 여성의 열등함이라는 인식을 강요한다면, 이는 “젠더를 차이의 문제가 아닌 지배의 문제로 보는 관점의 전환”[7]을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캐서린 매키넌(Catherine MacKinnon)은 법체계가 지배 집단의 관점에서 구성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예를 들어 여성 강간 피해자들이 강간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데 발언권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는 “강간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여성 침해의 기준에 따라 정의되기”[8] 때문이다. 부부 강간에 대한 과거 법체계의 입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강간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의] 모든 50개 주에서 법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1993년에 이르러서였다. 그전까지는 남편이 아내를 강간해도 법체계는 이를 강간으로도, 범죄로도 보지 않았다.
또한, 자동차 안전 설계와 같이 겉보기에 중립적이고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것을 생각해 보자. 충돌 테스트 인형은 보통 평균적인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제작되며, 이것이 마치 평균적인 미국인을 대표하는 것처럼 잘못 사용되고 있다. 그 결과,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차 사고에서 훨씬 더 많은 여성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게 된다.[9]
충돌 테스트 인형은 오드리 로드(Audre Lorde)가 “신화적 규범”이라고 부른 것의 물질적 구현이다.[10] 그러나 로드는 지배의 문제를 단순한 성별 위계를 넘어 나이, 인종, 계급, 성 정체성, 그리고 다른 정체성 특성들에 기반한 권력 관계로 확장한다. 그녀는 “미국에서 이 [신화적] 규범은 보통 백인, 마른 체형, 남성, 젊은 나이, 이성애자, 기독교인으로 정의된다”[11]고 말한다.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언제 열등함으로 묘사되는 지를 포착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열등함이 어떻게 종속된 이들을 평가절하하고 비인간화하는 데 이용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이 종속된 이들의 비인간화로 이어질 때, 그것은 누가 살고 죽을지를 결정할 정도로 강력해진다. 사회를 구조화하고 설계하는 바로 그 제도들이 누구의 생명을 우선시하고, 누구의 생명을 버려도 되는 것으로 간주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왜 많은 여성들이 자동차 사고에서 부당하게 높은 사망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또한 이는 지배가 종종 종속된 집단 구성원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특히 유색인종 트랜스 여성들이 직면하는 높은 폭력 위험이 이를 보여주는데, 이는 그들이 여러 종속 집단에 속해 있음으로 인해 더욱 심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12]
여성과 다른 종속 집단에 대한 지배가 이들을 중요한 의미에서 무력하게 만든다면, 지배 접근법은 종속된 이들이 억압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13] 자신들에 대한 억압이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구조적 힘의 결과라고 가르치는 것은 그 자체로 무력감을 줄 수 있다. 억압받는 자들에게 힘을 주는 것은 억압과 싸우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는 또한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억압받는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간성을 존중받기 위한 투쟁에 요구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언제 그러한가? 그리고 특권과 권력을 가진 개인들은 억압에 대항하는 이 투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14]
요약하자면, 동일성 접근법은 젠더 평등을 우선시하고, 차이 접근법은 여성적 특성의 가치를 높이려 하며, 지배 접근법은 여성과 다른 피지배 집단들의 종속을 유지하는 구조와 체계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주석
[1] 이 시리즈의 제1부와 제2부에서 애널리 커티스(Annaleigh Curtis)가 제시한 주의사항에 발맞추어, 잠시 멈추어 다음 사항을 언급하고자 한다. 나는 이 글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가 실재하고 가능한 젠더의 범위를 모두 포괄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내가 여기에서 다루는 사상가들이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한쪽에는 남성이 있고 다른 쪽에 여성이 있는 엄격한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 이분법이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성별, 젠더 정체성과 표현, 성적 지향이 어떻게 갈리는지에 대한 개요는 여기를 참고하라.
[2] De Beauvoir, Simone. The Second Sex (Introduction) in Hackett, Elizabeth, and Sally Haslanger. Theorizing Feminisms: A Rea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3] Haslanger, Sally. “Ideology, Generics, and Common Ground” in Haslanger, Sally. Resisting Reality: Social Construction and Social Critiqu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4] 그리고 제2부에서 보았듯이, 같은 비판이 제1부에서 설명한 동일성 접근법에도 제기될 수 있다.
[5] MacKinnon, Catharine. “Difference and Domination: On Sex Discrimination” in Hackett, Elizabeth, and Sally Haslanger. Theorizing Feminisms: A Rea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6] Frye, Marilyn. The Politics of Reality: Essays in Feminist Theory. California: The Crossing Press, 1983, p. 105. 이는 지배 집단이 정의(definition)를 만들고 강요함으로써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우리의 담론을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같은 저작에서 프라이는 지배 집단이 담론을 통제하는 예시를 든다. “국방장관이 어떤 것을 평화 협상이라고 부를 때 … 그가 평화 협상이라고 부른 것은 무엇이든 평화 협상의 사례가 된다”(p. 105).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은 인식적 부정의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소개는 후제이페 데미르타스(Huzeyfe Demirtas)의 Epistemic Injustice(번역본: 인식적 부정의)를 참고하라.
[7] MacKinnon, Catharine. “Difference and Domination: On Sex Discrimination” in Hackett, Elizabeth, and Sally Haslanger. Theorizing Feminisms: A Rea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 251.
[8] MacKinnon, Catharine. “Desire and Power” and “Sex and Violence: A Perspective” in Hackett, Elizabeth, and Sally Haslanger. Theorizing Feminisms: A Rea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 267.
[9] 미국 도로교통안전국(the 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안전벨트를 착용한 여성이 정면충돌 사고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을 확률은 같은 종류와 강도의 사고를 당한 남성에 비해 73% 더 높았다. 참고: Criado-Perez, Caroline의 Invisible Women: Data Bias in a World Designed for Men. New York: Abrams Press, 2019(번역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황가한 역,『보이지 않는 여자들: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20.), 또는 다음 기사에서 관련 문제들을 개괄적으로 볼 수 있다: Criado-Perez, Caroline. “The deadly truth about a world built for men – from stab vests to car crashes.” The Guardian. February 23, 2019. 사회의 의사결정 권력이 지배 집단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종속된 집단의 신체적 안전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지배 집단의 이해관계가 일상적으로 우선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0] Lorde, Audre. “Age, Race, Class, and Sex: Women Redefining Difference” in Hackett, Elizabeth, and Sally Haslanger. Theorizing Feminisms: A Rea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 293. 로드가 말하는 “신화적”이라는 표현은 이 규범(norm)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이상화된 인간이 인간의 표준(norm)을 정확히 대표한다는 것은 신화이지만, 그 규범(norm)과 그것이 야기하는 억압적 효과는 매우 실제적이다.
[11] Ibid.
[12] Barrouquere, Brett. “Under Attack” in Intelligence Report published by the Southern Poverty Law Center, Spring Issue, Feb. 20, 2019.
[13]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캐서린 맥키넌(Catherine MacKinnon)에게 이런 종류의 비판을 제기한다. Butler, Judith. The Psychic Life of Power: Theories in Subjection.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번역본: 주디스 버틀러(저), 강경덕, 김세서리아(역), 『권력의 정신적 삶: 예속화의 이론들』, 그린비, 2019.)
[14] Lorde, Audre. “Age, Race, Class, and Sex: Women Redefining Difference” in Hackett, Elizabeth, and Sally Haslanger. Theorizing Feminisms: A Rea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참고문헌
Barrouquere, Brett. “Under Attack” in Intelligence Report, published by the Southern Poverty Law Center, Spring Issue, Feb. 20, 2019.
Butler, Judith. The Psychic Life of Power: Theories in Subjection.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 번역본: 주디스 버틀러(저), 강경덕, 김세서리아(역), 『권력의 정신적 삶: 예속화의 이론들』, 그린비, 2019.
Criado-Perez, Caroline. Invisible Women: Data Bias in a World Designed for Men. New York: Abrams Press, 2019.
– 번역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황가한 역,『보이지 않는 여자들: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20.
Criado-Perez, Caroline. “The deadly truth about a world built for men – from stab vests to car crashes.” The Guardian. February 23, 2019.
de Beauvior, Simone. The Second Sex (Introduction) in Hackett, Elizabeth, and Sally Haslanger. Theorizing Feminisms: A Rea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Frye, Marilyn. The Politics of Reality: Essays in Feminist Theory. California: The Crossing Press, 1983.
Lorde, Audre. “Age, Race, Class, and Sex: Women Redefining Difference” in Hackett, Elizabeth, and Sally Haslanger. Theorizing Feminisms: A Rea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MacKinnon, Catharine. “Desire and Power” and “Sex and Violence: A Perspective” in Hackett, Elizabeth, and Sally Haslanger. Theorizing Feminisms: A Read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관련 에세이
Feminism Part 1: The Sameness Approach by Annaleigh Curtis (번역본: 페미니즘 제1부: 동일성 접근법)
Feminism Part 2: The Difference Approach by Annaleigh Curtis (번역본: 페미니즘 제2부: 차이 접근법)
What Is Misogyny? by Odelia Zuckerman and Clair Morrissey
Epistemic Injustice by Huzeyfe Demirtas (번역본: 인식적 부정의)
저자 소개
첼시 하라미아(Chelsea Haramia)는 앨라배마 스프링힐 대학(Spring Hill College, Alabama)의 철학 부교수이며, 겉보기에는 똑같지만 수적으로는 아마도 구분되는 두 고양이 헤스페루스(Hesperus)와 포스포루스(Phosphorus)를 키우고 있다. ChelseaHaramia.com
이 글은 Chelsea Haramia의 Feminism Part 3: The Dominance Approach를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