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막대한 파괴를 초래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옳은 전쟁이 있다고 믿는다. 일찍이 키케로 시대부터 다양한 문화적 전통[1]에 속한 사상가들은 다음 물음에 답하고자 해왔다. 전쟁은 언제 정당한가?
정당한 전쟁 전통(just war tradition), 또는 정당한 전쟁론(just war theory)은 군사 윤리학의 하위 분야이다.[2] 현대에 들어 정당한 전쟁론에 대한 관심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베트남 전쟁 직후에 출간된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의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Just and Unjust Wars)(1977)이었다. 최근에는 ‘수정주의(revisionism)’라는 기치 아래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론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 제기되어, 전쟁 윤리학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3]
이 글에서는 먼저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론의 기준들을 살펴본 뒤, 수정주의 학파의 비판을 간략히 다룰 것이다.
1. 전쟁 개시의 정의 (Jus ad Bellum)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론은 두 가지 질문을 다룬다. (1)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 정당한가? (2) 전쟁은 어떻게 정당하게 수행될 수 있는가?[4] 이 두 영역은 보통 각각 라틴어 jus ad bellum(전쟁 개시의 정의)와 jus in bello(전쟁 수행의 정의)로 불린다. 이 구분을 통해 우리는 어떤 전쟁이 선포는 정당했지만 부당하게 수행되었다고, 혹은 그 반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5]
전쟁에 나서는 것은 언제 정당한가? (이것은 도덕적 질문으로, 전쟁이 현명한(prudent) 선택인지 또는 여론의 지지를 받는지를 묻는 것과는 별개라는 점에 유의하라.) 전통주의자들에 따르면, 국가는 정당한 명분(just cause), 올바른 의도(right intention), 최후의 수단(last resort), 비례성(proportionality), 성공 가능성(probability of success), 그리고 적법한 권위(proper authority) 같은 여러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론가들은 대체로, 전쟁 선포의 유일하게 정당한 명분은 자기 방어(self-defense), 즉 실제 발생한 침략에 대한 대응뿐이라고 본다. 상대 국가가 장차 위협이 되리라는 판단에 따라 먼저 전쟁을 선포하는 선제적 전쟁(pre-emptive war)은 분명 판도라의 상자이다. 그보다는, 전쟁을 정당화하려면 높은 수준의 입증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단지 공격이 의심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쟁 선포가 정당하려면, 국가는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자기 방어를 내세우면서 실제 동기는 상대국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빼앗으려는 것이라면, 그 전쟁은 부당하다.
전쟁은 중대한 악이므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모든 평화적 수단이 소진되었을 때에만 정당하다.[6] 즉,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나아가, 전쟁을 수행하여 실제로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막대한 파괴를 초래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전쟁 선포가 정당하려면, 추구하는 선(善,good)이 예상되는 피해에 비례해야 한다. [즉, 예상되는 피해가 추구하는 선에 비해 과도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매우 작은 영토의 통치권을 두고 막대한 파괴를 수반하는 전쟁을 벌이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쟁은 적법한 권위를 가진 주체만이 선포할 수 있다. 코피 아난(Kofi Annan)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불법이었다고 시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7] 국제법에 따르면, 전쟁은 유엔의 승인을 받아야만 합법적이며, 그 밖의 모든 위협이나 무력 사용은 불법이다.[8]
2. 전쟁 수행의 정의 (Jus in Bello)
전쟁 수행의 정의(Jus in bello)는 전쟁 중에 누구를, 언제 공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다룬다. 이론가들은 전시의 폭력이 다음 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1)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어야 하고, (2) 공격을 받아 마땅한 자(즉 무고하지 않은 자)만을 겨냥해야 하며, (3) 과도한 피해와 고통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제한은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 피해가 오직 정당한 이유에서만,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등 공격받아 마땅한 행위를 한 자에게만 가해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잠재적 전략적 이득이 아무리 크더라도, 무고한 비전투원을 공격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9]
마지막으로, mala in se, 즉 그 자체로 악한 무기는 금지된다. 이 부류의 무기는 (1) 대규모 파괴를 일으키거나 예측할 수 없는 효과를 갖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무차별적이며, (2) 전쟁 중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특히 끔찍한 방식으로 피해를 입힌다. 핵무기, 생물 무기, 화학 무기는 이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량 살상 무기’들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으로 간주될 만한 대표적인 후보들이다.
3. 정당한 전쟁론의 새로운 쟁점들
맥마한(McMahan), 로딘(Rodin) 등의 ‘수정주의적’ 작업에서 제기된 일련의 반론이 현재 정당한 전쟁론 학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전투원의 도덕적 평등(moral equality of combatants) 원칙이 있다.
전통주의자들은 국제법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어느 편에 선 군인들이든 똑같이 정당한 공격 대상이며 동등한 도덕적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수정주의자들은, 부당한 명분을 위해 싸우는 군인들은 부당한 위협을 가한 책임이 있으므로 도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범죄자와 그를 추격하는 경찰관이 똑같이 정당한 폭력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수정주의자들이 궁극적으로 옳은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들의 여러 논증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서, 전통적 견해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의문시되지 않았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다른 학자들은 이 ‘법 집행’ 비유를 전쟁에까지 확장하여, 군인들이 서로에게 치명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실상의(de facto) 면허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법 집행의 경우, 우리는 보통 경찰이 범법자에게 무력을 행사하기 전에 경고를 하거나 항복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정주의자들은 서로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의무가 지도자의 전쟁 선포만으로 크게 달라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적군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려면, 통상 생각하는 것보다 더 충분한 근거가 필요하다.[10]
수정주의 논증의 한 가지 결과로 조건적 평화주의(contingent pacifism)라는 입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건적 평화주의자는 전쟁이 원칙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마도(혹은 거의 확실히) 정당화되는 일이 결코 없으리라고 본다. 수정주의자들이 전쟁에 대한 새로운 도덕적 제약들을 옹호하는 논증들을 제시함에 따라, 일부 철학자들은 실제로 어떤 전쟁이 이 높은 기준을 충족시키기란 극히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11]
주석
[1] 여기에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전통이 포함된다. 이러한 다양한 전통 전반을 아우르는 훌륭한 선집으로 Sorabji와 Rodin(2006)을 보라.
[2] 군사 윤리학은 정당한 전쟁론을 포함하는 더 넓은 분야로, 예컨대 이상적인 전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든가, 지휘관이 부하에 대해 지는 의무 같은 물음도 다룬다.
[3] McMahan(2009)과 Rodin(2005)을 보라.
[4] 여기에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전통이 포함된다. 이러한 다양한 전통 전반을 아우르는 훌륭한 선집으로 Sorabji와 Rodin(2006)을 보라. [옮긴이: 이 주석은 주석 [1]과 내용이 동일하며, 원문의 편집 오류로 보인다.]
[5]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McMahan(2005)은 정당한 명분을 결여한 전쟁은 정당하게 수행될 수도 없다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 바 있다.
[6] ‘최후의 수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가장 큰 수’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분쟁을 해결할 또 다른 방법은 언제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7] Ewen MacAskill and Julian Borger, “Iraq War Was Illegal and Breached UN Charter, Says Annan,” The Guardian, 2004년 9월 15일자를 보라. (2014년 7월 16일 접속.)
[8] 유엔 헌장(UN Charter) 제2조 4항을 보라.
[9] Nagel(1972)과 Anscombe(1981)를 보라.
[10] Statman(2005)과 Gross(2006)를 보라. 이 논의는 무인 항공기(드론)를 둘러싼 도덕적 논쟁과 특히 관련이 깊다. 무인 항공기는 적군 병사에게 항복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으므로, 부당하거나 과도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11] 예를 들어, May(2012)와 McMahan(2010)을 보라.
참고 문헌
McMahan, Jeff. 2005. “Just Cause for War.” Ethics & International Affairs 19: 1-21.
———. 2009. Killing in Wa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 2010. “Pacifism and Moral Theory.” Diametros 23:44-68.
Nagel, Thomas. 1972. “War and Massacre.” Philosophy & Public Affairs: 123-144.
Orend, Brian. 2013. The Morality of War, 2 ed. Broadview Press.
Rodin, David. 2005. War and Self-Defens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United Nations. 1945.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Available at .
Walzer, Michael. Just and Unjust Wars: A Moral Argument with Historical Illustrations. Basic Books, 1977 1st ed., 2015, 5th ed.
번역본: 마이클 왈저 저, 권영근, 김덕현, 이석구 역, 『마르스의 두 얼굴 – 정당한 전쟁.부당한 전쟁』, 연경문화사, 2007.
관련 에세이
The Ethics of Drone Strikes by Ryan Jenkins
Social Contract Theory by David Antonini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by Ben Davies
Is Death Bad? Epicurus and Lucretius on the Fear of Death by Frederik Kaufman
Theories of Punishment by Travis Joseph Rodgers
Reparations for Historic Injustice by Joseph Frigault
How to Establish Social Order? Three Early Chinese Answers by Henrique Schneider
저자 소개
라이언 젠킨스(Ryan Jenkins)는 샌루이스오비스포(San Luis Obispo)에 있는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California Polytechnic State University) 철학과 부교수이자, 같은 대학 ‘윤리와 신흥 과학 그룹(Ethics + Emerging Sciences Group)’의 선임 연구원이다. 그는 특히 자동화, 사이버 전쟁, 자율 무기, 무인 자동차를 중심으로 신흥 기술의 윤리학을 연구한다. 그의 연구는 Ethical Theory and Moral Practice, Journal of Military Ethics 와 같은 학술지뿐 아니라 Slate, Forbes 같은 대중 매체에도 실렸다.
calpoly.academia.edu/RyanJenkins
이 글은 Ryan Jenkins의 Just War Theory을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