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 대한 갈증은 인류의 가장 고귀한 욕구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갈증을 채우려는 욕망은 때때로 우리가 진리로 위장한 거짓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른바 정보화 시대(Information Age)는 너무 자주 허위 정보의 시대(Misinformation Age)이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으므로 전문가를 무시하는 것은 스스로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이 실제로 전문가인 것은 아니기에, 우리 자신이 전문가가 아닌 경우에는 누가 전문가인지 판단하기 위해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전문가를 신뢰할지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어떤 전문가를 신뢰할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이것이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지운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5)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성직자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당신은 그 성직자를 선택한 것이고, 밑바닥에서는 이미 그가 어떤 조언을 해줄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비관적으로 해석한다면 전문성에 대한 호소는 결국 허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동기 부여된 사고(motivated thinking)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힘을 반복해서 입증해 왔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는 권위자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다수의 의견이 자신의 편이라면,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양을 내세울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 자신에게 반대하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질을 내세우며 진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지적할 것이다. 권위자들은 우리를 진리로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진리에 관심이 있다면, 이성적 자율성을 포기하거나 선입견에 굴복하지 않고 전문가의 의견을 보다 객관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판단하기 위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간단한 3단계 판단법을 개발했는데, 이를 ‘진리의 트리아지'(The Triage of Truth)이라고 부른다. ‘트리아지'(triage)의 원래 의미는 질에 따라 분류하는 것으로, 오늘날 이 용어는 치료의 긴급성을 판단하는 의료적 맥락에서 가장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나의 판단법이 완벽하지는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가 피할 수 있는 몇몇 실수들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트리아지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 이 분야에 전문가가 있는가?
- 이 분야에서 어떤 유형의 전문가를 선택해야 할까?
- 여기서 어떤 특정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할까?
많은 경우 이에 대한 단순한 예/아니오의 답은 없다. 예를 들어 경기 변동 예측과 같은 영역에서는 매우 제한적인 전문성만이 가능하다. 한편 당신이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신학자나 성직자가 신의 뜻에 대한 전문가일 수는 없다고 볼 것이다.
만약 진정한 전문성이 있다면, 두 번째 단계는 해당 영역이 전문성을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어떤 유형의 전문가를 신뢰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 분야에는 표준적인 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뿐만 아니라 약초치료사, 동종요법사, 척추 지압사, 기 치료사도 있다. 이러한 치료법 중 어느 하나라도 배제할 만한 좋은 이유가 있다면 해당 유형에 속하는 개별 치료사를 평가할 필요 없이 배제할 수 있다.
해당 영역에 전문가 집단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트리아지의 세 번째 단계는 그중 어떤 전문가를 신뢰할지 묻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 작업이 꽤 쉽다. 자격을 갖춘 치과 의사라면 누구든 충분히 잘할 것이고, 어차피 우리는 의사를 고르는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업자의 경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분명히 더 전문적이다.
가장 까다로운 상황은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들 사이의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의학에는 매우 풍부한 진정한 전문 지식이 있지만, 영양학(Nutritional Science)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영역의 많은 조언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조심스러움의 정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까지도 말이다.
이 트리아지는 한 단계에서의 의견 변화가 다른 단계에서의 변화로 이어지는 반복적인 과정이다. 우리의 믿음은 각 부분이 서로를 지지하는 복잡한 전체론적 그물망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특정 영역에 전문성이 있는지 여부를 진공 상태에서 결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신뢰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모든 새로운 판단은 우리 믿음에 영향을 주어, 다음 판단을 바꾸게 된다.
아마도 이 트리아지 전반에 걸쳐 적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격언일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 증거에 비례하여 믿음을 가진다.” 전문가에 대한 신뢰는 항상 비례적이어야 한다. 전기 기술자가 전선을 만지면 감전될 것이라고 경고한다면 이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경기 변동에 대한 예측은 기껏해야 확률을 제시할 뿐이라고 보아야 하며, 최악의 경우 교육 받은 사람의 추측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야 할 수도 있다.
비례성은 또한 전문가에게 해당 분야 안에서만, 그리고 필요한 만큼의 권위만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저명한 과학자가 윤리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전문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다. 철학자가 경제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므로 내가 여기에 쓴 내용 중 일부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 트리아지는 절차는 제공하지만 알고리즘은 제공하지 않는다. 판단을 내릴 필요성을 없애 주지는 않으며, 단지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틀을 제공할 뿐이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계몽주의적 명령인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감히 알고자 하라)를 제대로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판단과 타인의 판단에 모두 의존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thinking for ourselves)과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생각하는 것(thinking by ourselves)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당신의 마음을 대신 정해줄 수는 없다.
저자 소개
줄리안 배기니(Julian Bagginiis)는 작가이자 철학자입니다. 최근에 How to Think Like a Philosopher (2023)를 썼습니다.
https://www.julianbaggini.com/
https://twitter.com/JulianBaggini
https://www.linkedin.com/in/jbaggini/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The triage of truth: do not take expert opinion lying down을 번역한 것입니다.
Aeon의 번역 및 배포 기준을 준수하여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