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덕이 자명하게 여기는 공리 중 하나는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에 피할 수 없는 긴장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관심과 에너지와 자원을 쏟을수록,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맞서는 이 두 요구 사이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찾으려 애쓰다가, 대개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에 한참 못 미치는 지점에서 멈추고는 죄책감을 느낀다. (뭐, 적어도 우리 중 일부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은 잘못된 이분법이라면 어떨까? 우리가 다른 틀을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즉, 나 자신을 돕는 일이 곧 인류 전체를 돕는 일이고, 거꾸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이 곧 나 자신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의 바탕에 깔린 기본 생각이다. ‘세계시민주의’란 말 그대로 ‘세계의 시민’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상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로마에서 한층 더 발전했다. 알고 보면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에는 현대인인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이 아직 한두 가지쯤 남아 있다.
‘세계시민(cosmopolitan)’이라는 용어는 원래 고대 견유학파(Cynic) 철학자들과 결부된 말이었다. 이 학파의 이름이 된 단어[역주1]에는 오늘날 ‘시니컬(cynical)하다’고 할 때의 냉소적인 함의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소박하게 살아가며 재산도 집도 소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의 규범에 맞서는 데 헌신한 급진주의자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견유학파의 영향을 받은 헬레니즘 철학의 한 학파가 훨씬 주류에 가까웠던 스토아학파다(이들은 실제로 집에서 살았고, 로마 원로원 의원이었던 세네카처럼 부유한 사람도 있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세계시민주의를 일상의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하나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노예에서 철학자가 된 2세기 로마의 에픽테토스는 『담화록』(Discourses)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가 했던 대로 하라. 그는 어디 출신이냐는 물음에 한 번도 ‘나는 아테나이 사람입니다.’라거나 ‘나는 코린토스 사람입니다.’라고 답하지 않고 언제나 ‘나는 세계의 시민입니다.’라고 답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억하고 내면화하고 실천해야 할 태도다. 공포를 부추기는 선동과 외국인 혐오, 브렉시트, 트럼프주의, 국수주의적 부족주의가 판치는 요즘 같은 때에는 더욱 그렇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생각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했다. 모든 인간은 같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에 살고 있으며, 실로 우리는 서로 너무나 긴밀히 얽혀 있고 서로에게 기대고 있어서 사실상 한 집안의 대가족이나 다름없으니,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 히에로클레스(Hierocles)는 ‘관심의 원’이 여러 겹의 동심원을 이루는 이미지를 고안했다. 가장 작은 안쪽 원의 한가운데에는 내가 있다. 그 바로 바깥이 가족의 원이다. 그 바깥은 친구들의 원이다. 그다음 원은 당신과 같은 도시에 거주하는 동료 시민들의 원이고, 그다음은 같은 나라 사람들의 원이며, 마지막은 인류 전체의 원이다.
피터 싱어(Peter Singer) 같은 현대 철학자는 이 원을 바깥으로 넓히자(expanding the circles)고 말한다.[역주2] 관심의 범위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도록 넓혀감으로써 타고난 이기심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히에로클레스는 우리가 원을 안으로 당겨 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친족임을 깨닫고 그들을 우리 쪽으로 더 가까이 당겨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우리에게 가까이 끌어당길수록 나와 남을 가르는 이분법은 옅어지고, 나의 이익은 공동체의 이익과 더 많이 일치하게 된다. 실제로 히에로클레스는 제자들에게 낯선 사람을 ‘형제’나 ‘자매’라고(상대의 나이에 따라서는 ‘삼촌’이나 ‘이모’라고) 부르라고까지 가르쳤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고, 그리하여 그들을 대하는 방식까지 바꾸려고 한 초기 형태의 인지치료였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명상록』(Meditations)에서 세계시민주의 사상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하나의 논리적 연쇄로 요약했다. “지성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라면, 우리를 이성적 존재이게 하는 이성 또한 공통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명하는 이성 또한 공통된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공통된 법 또한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하나의 정치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이다.”
이것이 바로 스토아학파가 그들의 근본적인 표어 가운데 하나인 “자연(nature)에 따라 살라”라는 말에 담아낸 내용이다. 이는 우리가 숲속에서 벌거벗고 돌아다니며 나무를 껴안으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nature)을 잘 살피고 그에 따라 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의 본성이다. (내가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이라고 말했다는 점에 유의하라.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그런 능력을 남들보다 더 자주, 더 예리하게 사용한다.) 따라서 자연에 따라, 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이성을 사용하여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일에 각자 제 몫을 다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할 때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는 제대로 굴러가는 정의로운 사회에서 번영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나와 남을 가르는 현대의 이분법이 지나치게 단순할 뿐 아니라 사실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임을 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서로 대립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테면 내 아이의 당장의 이익과 낯선 사람들의 이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구체적인 상황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내 아이도 결국 번영하는 사회에서 잘 살아가리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삶을 제로섬 게임으로 대하던 사고방식을 협력 게임으로 보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스토아 학파의 세계시민주의가 개별성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지워지는 벌집 같은 사회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했고, 개별 행위 주체의 독립성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다만 그들은 각자의 목표를 추구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번영할 자유란, 우리와 똑같이 자유로운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우리 모두의 이익이 큰 틀에서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 우리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우연이다. 아테나이일 수도 코린토스일 수도 있고, 미국일 수도 멕시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하나의 지구적 폴리스(polis)의 구성원이다. 우리도 이제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주석
[역주1] 견유학파(犬儒學派)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kynikos(개 같은)에서 왔다. 영어 cynic의 현대적 의미인 ‘냉소적’이라는 뜻은 후대에 덧붙은 것이다.
[역주2] 피터 싱어의 책 The Expanding Circle (2011)은 『사회생물학과 윤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저자 소개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는 저술가이자 블로거, 팟캐스터이며, 뉴욕시립대학교 시티칼리지(City College of New York)의 K. D. 이라니 철학 석좌교수다. 그의 연구 분야는 진화생물학, 과학철학, 유사과학의 본성, 실천철학이다. 저서로 How to Be a Stoic: Using Ancient Philosophy to Live a Modern Life (2017)(번역본: 석기용 역,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든, 2019)와 Nonsense on Stilts: How to Tell Science from Bunk (제2판, 2018)(번역본: 노태복 역,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부키, 2012) 등이 있다. 가장 최근 작품은 Think Like a Stoic: Ancient Wisdom for Today’s World (2021)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Massimo Pigliucci의 When I help you, I also help myself: on being a cosmopolitan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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