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 Felipe Pereira

우리는 우리의 친구, 가족, 연인을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같은 ‘사랑’의 사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공통점이 존재하기는 할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1]


1. 돌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가지 답은 이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돌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이다.[2]

하지만 누군가를 돌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닌 듯하다. 신경질적인 할아버지나 지나치게 간섭하는 부모를 생각해 보라. 비록 곁에 있으면서 그들을 돌보고 싶지는 않더라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3]

반대로, 누군가를 돌보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충분조건도 아닌 듯하다. 사고로 누군가 다치는 것을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박애심이나 도덕적 의무감에서 다친 낯선 사람을 돌보고 함께 있고 싶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신이 그 낯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4]


2. 누군가의 행복(well-being)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

또 다른 관점에 따르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의 일부확장(extension)으로 여기는 것이다.[5] 이 견해에 따르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과 상대의 이익 사이의 구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상대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고, 상대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 설명의 한 가지 장점은 우리가 평소에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곧 나를 괴롭히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나는 내 자신의 일부를 잃었다.”와 같은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이 설명이 사람들이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6] 또한 이 견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진정한 자기희생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증진하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라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겠는가?[7]


3.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는 성향을 지니는 것

2절의 관점을 좀 약화시킨, 아마도 더 그럴듯한 견해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성향을 가진다는 것이다.[8] 이 견해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은 자신의 행복과 별개이지만, 자신의 행복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목격한다면, 그로 인해 자신도 고통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완전히 낯선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목격한다면 괴로울 것이다. 완전히 낯선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는데도 말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낯선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 괴롭기는 하지만, 그것을 ‘사랑’으로 간주할 만큼 충분히 괴롭지는 않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답은 과연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 있을까?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4. 누군가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

또 다른 제안에 따르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매우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상사는 당신을 직원으로서 매우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그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 설명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점에서 누군가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인지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4.1. 누군가를 (특정한) 특성 때문에 가치 있게 여기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좀 더 한정된 목록에 포함되는 특성 때문에 그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가령 ‘훌륭한 직원임’과 같은 특성은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지만 ‘매력적임’, ‘재치 있음’, ‘용감함’과 같은 특성은 포함된다.[9]

그러나 이 견해에는 반직관적인 함축이 있다. 예를 들어, 이 견해는 사랑하는 사람보다 약간 더 매력적이고 재치 있고 용감하면서 그 외의 측면에서는 완벽하게 복제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그 복제인간으로 대체할 이유가 생긴다는 것을 함축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 변덕스러운 것일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깊은 개인적 헌신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 같다.[10]



4.2. 누군가를 인간으로서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어떤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이 견해에 따르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다.[11]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심리적인 한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단지 제한된 수의 사람들에 대해서만 [그들의 인격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한다.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무리한 주장으로 들린다.[12] 게다가 이 제안은 사랑과 존중(respect)을 혼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해 그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 그를 존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13]


4.3.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

또 다른 제안에 따르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와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로(예: 어머니, 딸, 자매, 친구, 파트너 등) 그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14]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특별한 방식으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라면,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도 나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야 한다.[15] 그러나 나의 친구도, 친척도, 연인도 아닌 (그리고 나와 그런 관계를 맺기를 원하지도 않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가능한 것 같다.[16]


4.4. 누군가에게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그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

마지막으로, 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기에 앞서 그 사람이 가치 있는 어떤 측면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유는 우리의 사랑이 그 사람을 우리에게 가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그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하거나 투사하는 것이다.[17]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이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누군가의 가치를 근거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는 ‘나는 왜 사랑받을 만한가?’라는 질문에 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함축을 불편하게 여긴다.[18] 또한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누군가가 대량 학살자라는 사실을 근거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수도 없게 되는데, 이러한 결론은 명백히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19]


5. 결론

이러한 견해들 중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이는 모든 사랑의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가정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사랑은 정의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20] 정의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들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실재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사랑할 것이다.[21]


주석

[1] 이 글에 대해 두 가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 글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즉 특정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과 사람이 아닌 것들(예: 스포츠 팀, 추억이 담긴 물건 등)을 사랑하는 방식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
둘째, 이 글은 사랑이 생물학적 현상인지, 사회적으로 구성된 현상인지, 아니면 이 둘의 혼합인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이 질문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Jenkins (2017)를 보라.

[2] 여러 현대 철학자들이 이러한 견해의 특정 버전을 지지한다. 예를 들어, 가브리엘 테일러(Gabriele Taylor)는 “만약 x가 y를 사랑한다면 x는 y에게 이익이 되고 y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1976: 157)고 썼다. 앨런 소블(Alan Soble)은 어떤 사람 x가 다른 사람 y를 사랑하는 사례들의 “공통된 특징”은 “x는 y에게 좋은 것을 욕구하고, x는 이것을 y를 위해 욕구하며, x는 x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y의 이익을 위해 y에게 좋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1997: 67). 해리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 역시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 단순히 그것을 많이 좋아하거나 그것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는 대상의 행복이나 번영에 대한 사심 없는 관심”의 한 종류라는 주장을 옹호한다. (1998, 11장, 14장).

[3] Velleman (1999: 353). 사람들을 그들의 인격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는 Matthes (2016)를 보라.

[4] Helm (2009).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함께 있기를 원하는 방식을 구체화함으로써 이러한 반론을 피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로울 수 있다. 소피 그레이스 채펠(Sophie Grace Chappell)은 이 방향을 따르는 유망한 제안을 한다. 그녀는 사랑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형태의 박애와 구별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단순한 박애와 달리 사랑은 한 사람의 행복에 자신이 직접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에 구성적으로(constitutively) 관여하기를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나 자신이 그 사람의 삶이 잘 되게 만드는 것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 X에 대한 단순한 박애에 있어서는 X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누군가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관심사이다. 반면에 사랑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나여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2014 : 86; 강조는 원저자의 것).

[5] 로버트 솔로몬(Robert Solomon)은 이렇게 썼다. “흔히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위해 양보하는 것,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자신의 필요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의 욕구와 필요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표현상의 차이가 아니다. 이것은 자아 자체를 공유된 자아로 재정의하는 것이다.”(1981: 150, 강조는 원저자의 것). 비슷한 맥락에서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은 “상호성이 공동체로 될 때, 즉 나의 이익과 너의 이익 사이의 모든 구별이 극복될 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2006: 230).
철학사의 많은 주요 인물들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의미 있는 종류의 합일을 만들어내는 것(또는 만들어내고자 욕구하는 것)이라고 제안해 왔다. 이 “의미 있는 종류의 합일”을 구체화하는 한 가지 방식은 자신의 행복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동일한 전체의 두 부분, 하나의 통일체의 두 부분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이 “의미 있는 종류의 합일”을 다양한 다른 방식들로도 구체화해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플라톤 『향연』의 아리스토파네스(Symposium: 189c-193e),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 I9, 9, 1170b1),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Confessions: IV, 6), 몽테뉴의 『수상록』(Essays: I, 28)을 보라. 사랑에 대한 합일 이론(the union account of love)의 현대 지지자들은 다음과 같다. Nozick (1989, 8장), Solomon (1981) and (1994), Delaney (1996), Baxter (2005), Scruton (2006, 8장), Westlund (2008), Gilbert (2013, ch. 11).

[6] 여러 철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나는 내 자신의 일부를 잃었다”, “당신이 그들을 괴롭힌다면, 당신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와 같은 표현을 문자 그대로 참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당신과 사랑하는 사람이 동일한 한 사람이라는 그럴듯하지 않은 주장을 하게 되는 위험이 있다. 또한 이것은 사랑을 개인의 자율성과 직접적인 긴장 관계에 놓을 위험이 있다. 당신의 이익과 사랑하는 사람의 이익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당신이 자신의 이익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해서 그의 이익에 대한 결정도 내리는 것이 된다. 많은 철학자들은 이러한 귀결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논의는 Lugones (1987), Singer (1994, 6장), Soble (1997), Friedman (1998), Whiting (2016: 46-8)을 보라.

[7] Soble (1997: 86).

[8] 로버트 노직은 이러한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이렇게 썼다. “모든 사랑에 공통적인 것은 이것이다. 당신 자신의 행복은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또는 무언가)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 친구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당신은 그로 인해 슬퍼하고,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당신은 그로 인해 행복해진다”(1989: 68). 그러나 노직은 때때로 이 글의 2절에서 소개한 설명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 당신에게도 나쁜 일이 생긴다”(1989: 68, 강조는 원저자의 것)고 말한다.

[9] 어떤 특성들이 이 한정된 목록에 포함되고 어떤 특성들이 포함되지 않는지를 자의적이지 않게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 사이먼 켈러(Simon Keller)는 그의 논문 “How Do I Love Thee? Let Me Count the Properties”(2000: 165-166)에서 이를 시도한다.

[10]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한 훌륭한 논의는 Grau (2004)를 보라. 그라우(Grau)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체 불가능성을 그들의 역사적 속성의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그들의 역사적 속성 때문에 (예를 들어, 2016년 10월에 당신과 데이트를 한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제안의 문제는 ‘용감함’ 같은 속성과는 달리 사랑하는 사람들의 역사적 속성은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앞서 이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들의 역사적 속성이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이 제안은 이 글의 4.4절에서 논의할 사랑에 대한 가치 부여 이론(bestowal accounts of love)에 제기된 것과 동일한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11] 예를 들어, 데이비드 벨만(David Velleman)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또는 칸트의 표현을 빌리면 이성적 본성을 지닌 존재라는 이유로 그가 지닌 가치에 반응하는 것”(1999: 365)이라고 주장한다.

[12] Kolodny (2003: 173-79); Millgram (2004); Bagley (2015: 483-86).

[13] 벨만은 사랑과 존중이 모두 인간으로서 누군가가 지닌 가치라는 동일한 것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는 그 효과(effects) 측면에서 사랑과 존중을 구별한다. 그에 따르면, 존중은 우리가 이기적이 되는 것을 막고, 사랑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방어적이 되는 것을 막는다. 즉, 누군가를 사랑하면 우리가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는 경험하지 않을 감정을 민감하게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1999: 360-61).
그러나 이것이 사랑과 존중의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사랑은 그 설명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될 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방금 경쟁에서 졌다고 상상해 보라. 아마도 당신은 슬프거나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경쟁에서 진 낯선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그러한 감정 반응을 가지는 것에 은 이유가 있는가? 직관적인 답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 감정 반응을 정당화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 (낯선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베넷 헬름(Bennett Helm)이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벨만은 이렇게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벨만에 따르면 [인간으로서의] 당신의 존엄성에 대한 나의 반응을 존중이 아닌 사랑의 반응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내가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감정의 정당성을 설명할 때 나의 사랑에 호소하는 것은 악순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2010: 27).

[14] 예를 들어, 니코 콜로드니(Niko Kolodny)는 “사랑은 (a)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그 관계와 상대방을 모두 가치 있게 여길 이유로 여기고, (b) 그에 따라 그 관계와 상대방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2003: 150)이라고 주장한다.

[15] Stump (2006: 26-7).

[16] 대부분의 경우, 당신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사랑할 때, 그들은 당신의 지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사랑하는 사람이 지인이라는 점 때문에 그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제안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답변에 대한 훌륭한 논의와 비판은 Protasi (2016)를 보라.

[17] 예를 들어, 어빙 싱어(Irving Singer)는 “사람들을 사랑할 때 … 사람들은 상대의 개인적이거나 객관적인 가치에 더해 [또다른] 가치를 서로에게 부여한다”(1984: 6)고 썼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랑이 [가치의] 부여인 한, 그것은 사랑받는 사람에게 평가를 넘어서는 일종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 사람으로 인해 기뻐할 때,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그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든다.”(1994: 2, 강조는 원저자의 것). 해리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도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우리가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2006: 39, 강조는 원저자의 것).

[18] Keller (2000)를 보라.

[19] 사랑에 대한 가치 부여 이론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 정당화 될 수 있거나 정당화 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Singer (1984), Frankfurt (2006: 39-40) 또는 Smuts (2015: 101-3)를 보라.

[20] 로날드 드 소사(Ronald de Sousa)는 이러한 견해를 명시적으로 옹호한다. “Love Undigitized”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각각의 개별적인 사랑이 특별한 개별적인 인간들을 연결한다.(Particular loves link particular persons.) 사랑의 본질은 없다”(1997).

[21] 사랑에 대한 몇 가지 유망한 대안적 설명에 대해서는 Helm (2010), Bagley (2015), Protasi (2016), Pismenny and Prinz (2017), Yao (2020)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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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tue Ethics by David Merry

Happiness by Kiki Berk (번역본: 행복: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Hell is Other People”: Sartre on Personal Relationships by Kiki Berk

Stoicism: Finding Happiness in What’s Under Your Control by Matthew Pianalto (번역본: 스토아 철학: 통제할 수 있는 것에서 행복 찾기)

Hope by Michael Milone & Katie Stockdale

Sexual Orientation, Sex, and Gender by Raja Halwani


감사의 말

이 글의 초고에 대해 친절하고 세심한 논평을 해 주신 테일러 사이어(Taylor Cyr), 니키 에른스트(Nikki Ernst), 댄 로우(Dan Lowe), 네이선 노비스(Nathan Nobis), 사라 프로타시(Sara Protasi), 파커 로즈(Parker Rose), 레뮤엘 탕(Lemuel Tang), 트래비스 티머만(Travis Timmerman), 비다 야오(Vida Yao)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자 소개

펠리페 페레이라(Felipe Pereira)는 피츠버그 대학교 박사과정생이다. 현재 윤리학과 도덕 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트래비스 티머만(Travis Timmerman)과 공동 집필한 Philosophy Compass의 “The (Un)desirability of Immortality“와 Ergo의 “Non-Repeatable Hedonism Is False“의 공저자이다. 또한 1,000-Word Philosophy의 “Is Immortality Desirable?“의 저자이다. felipe-pereira.weebly.com


이 글은 Felipe Pereira의 What Is It To Love Someone?을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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