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상대 진영의 지도자를 약한 인물로 보이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공격이 대중에게 반향을 일으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권위주의 체제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도 널리 퍼져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지도자’란 대개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공공정책을 좌지우지하며, 정당 내 의사결정을 장악하고, 정부의 모든 중요한 결정을 직접 내리는 사람을 말한다.
미국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을 약한 지도자로 규정하는 수사를 반복해 왔다.[역주1] 오바마를 향한 이 비판은 주로 그가 해외의 분쟁 지역에 미군을 투입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부터 이라크까지 미국의 참혹했던 경험을 고려하면, 오바마의 신중함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내세우는 사람의 호소력은 공화당 경선의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에서 잘 드러난다. 트럼프의 정책은 멕시코인들의 미국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멕시코에게 그 비용을 부담시겠다는 식의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열망들을 뒤섞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트럼프가 자신의 강한 캐릭터와 지지자들의 분노 결집을 통해 어떻게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는 선거 구호를 실현할 것이라고 환멸에 빠진 보수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능력 앞에 무색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권위주의 체제나 민주주의 어느 쪽에 대해 논하든, 자신의 개인적인 권력을 극대화하는 지도자가 가장 훌륭하고 성공적인 지도자라는 생각은 매우 의심스럽다. 전체주의나 권위주의 체제의 경우, 집단 지도체제가 개인의 독재보다 덜 해롭다는 점이 특히 분명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시기에 이루어진 자유화와 다원화 이전에 소련은 항상 매우 권위주의적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초에 절대화된 스탈린의 개인 독재시기에 비한다면 1920년대, 그리고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의 소련은 덜 잔혹한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1950년대 초반의 중국이나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의 중국은 권위주의적이었고 지금의 중국도 그렇지만, 대약진 운동(Great Leap Forward)에서 수천만 명이 죽고 문화대혁명(Cultural Revolution)에서 수십만 명이 살해된 것은 마오의 개인적 집착과 그의 무제한적 권력의 결과였다.
잘 정립된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지도자가 스탈린이나 마오만큼의 해악을 끼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가 내각과 정당 내에서 집단적 지도체제를 강화하기보다 총리와 다우닝가 10번지[역주2]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대중 매체는 끊임없이 총리와 당 지도자들에게 이런저런 행동을 촉구하면서, 지도자가 모든 사안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는 기이한 가정을 강화한다.
민주주의에서 총리나 대통령에게 더 많은 권력이 집중될수록 더 좋다는 생각이 지속되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이제는 흔들림 없는 신념을 가지고 정당, 내각, 정책 과정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지도자가 가장 존경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반박할 때가 되었다. 한 사람의 지배는 민주주의 원칙상 바람직하지 않으며, 지도자의 야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런 지배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해럴드 맥밀런(Harold Macmillan), 해럴드 윌슨(Harold Wilson), 제임스 캘러한(James Callaghan)이 이끈 보다 집단적인 전후 영국 정부들과 대조적으로,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와 토니 블레어(Tony Blair)는 정책 과정을 장악하려 했다. 그들의 시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좌절되었다.
대처의 몰락에 기여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그녀가 인두세에 대한 재무장관 나이젤 로슨(Nigel Lawson)의 반대 의견을 무시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각 다수를 설득해 이 극도로 인기 없는 세금을 지지하게 만든 대가로 결국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잃었다. 반면 블레어는 영국을 유로화 체제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에서 실패했다. 그는 2000년에 “통화 통합 문제는 내가 결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블레어의 전 통상산업부 장관 앨리스터 달링(Alistair Darling)은 블레어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평소보다 내각을 정책 과정에 더 많이 참여시켰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이 승리를 거두었다. 영국의 공동 통화 참여에 반대했던 브라운은 손쉽게 블레어를 저지했다.
자신을 강력한 지도자로 여기거나 그렇게 보이길 원하는 정치인들은 모험적 대외 정책(foreign adventures)[역주3]에 특히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실패한 영국의 두 가지 외교 정책 결정은 영국이 프랑스, 이스라엘과 공모한 1956년 이집트 군사 개입과 영국이 조지 W. 부시(George W Bush)의 미국의 조력자로 참여한 2003년 이라크 침공이었다. 두 경우 모두 총리가(첫 번째는 앤서니 이든(Anthony Eden)이, 두 번째는 블레어가) 영국군을 이러한 선택적 전쟁에 투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두 경우 모두, 그들은 내각 동료들에게 충분히 솔직하지 못했고, 외무부와 정부 바깥에서 중동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의견에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총리와 당 지도자들은,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이나 애틀리처럼 현실 감각이 뛰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판단이 특별히 뛰어나며, 따라서 자기 지위를 내세워 정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비현실적인 믿음을 갖게 된다. 이러한 확신은 그들의 측근과 주변 사람들의 야심에 의해 계속 강화된다. 지도자들이 오만해지고 스스로가 그들을 지도자 자리에 올려준 정당보다 위에 있는 존재라고 여기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동료간의 협력적이고 집단적인 의사결정의 가치를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정당 지도자와 총리가 선출된 것은 그들이 지혜를 독점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강력한 개인 지도자라는 거짓 신에 대한 숭배를 중단해야 할 때이다.
주석
[역주1] 이 글은 2016년 3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공화당 경선 시기에 게시되었다.
[역주2] 영국 총리 관저
[역주3] 해외에서 벌이는 군사적, 정치적 개입이나 모험적 행동
저자 소개
아치 브라운(Archie Brown)은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 정치학 명예교수이며, 세인트 앤터니 칼리지의 명예 펠로우이다. 최근 저서로는 The Myth of the Strong Leader: Political Leadership in the Modern Age(2014)(번역본: 『강한 리더라는 신화』, 홍지영 역, 사계절, 2017.)이 있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We must stop worshipping the false god of the strong leader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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