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당신은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 팔이 가려워서 긁은 후에, 초밥을 먹기로 결정한다.
당신은 자신이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 가렵다는 것, 그리고 초밥을 먹기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어떻게 아는가?
이러한 정신 상태들(mental states)에 대한 자기 지식(self-knowledge)을 가지려면, 그것들에 대해 참이면서 정당화된 믿음(true and justified beliefs)을 가져야 한다.[1]
그런데 자기 지식에는 특별한 특징들이 더 있는 것 같다. 첫째, 우리는 보통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better) 안다.[2] 둘째,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정신 상태를 알게 되는 방식과는 다른(different) 방식으로 그것들을 알게 된다.[3] 즉, 다른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파악할 때와 달리,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해 자기 관찰(self-observation)이나 가설 설정(hypothesizing)을 하지 않는다.[4]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특별한 종류의 자기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일까?[5] 이 글에서는 몇 가지 영향력 있는 답변들을 살펴본다.
1. 자기 지식의 가치
먼저 자기 지식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선, 우리가 보통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보통 언제 어디서 자신의 정신 활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낼지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6] 예를 들어, 당신이 직장을 싫어한다면, 당신의 상사보다 당신이 이 감정을 더 잘 아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이것을 상사로부터 숨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아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안다는 것도 중요할까? 그렇다. 적어도 당신이 자신을 아는 특별한 방식이 당신이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이유의 일부라면 말이다. 만약 당신의 상사가 당신의 감정을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알 수 없고, 당신이 자신의 감정을 아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상사가 그것을 아는 방식보다 더 정확하다면, 상사는 일반적으로 당신의 감정에 대해 당신만큼 잘 알지 못할 것이다.[7]
2. 내성적 자기 지식
그렇다면 자기 지식의 원천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기 지식이 독특한 것은 그것이 내성(introspection), 즉 일종의 ‘내면 들여다보기’(looking inward)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내성에 대한 한 이론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정신 상태를 ‘살펴 보아’(scan) 스스로에게 드러내는 특별한 메커니즘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8]
이 능력은 종종 ‘내적 감각’(inner sense)이라고 불린다. 내적 감각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지식을 주는 청각이나 시각과 같은 “외적”(outer) 감각들보다 훨씬 더 신뢰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아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더 잘,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아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청각, 시각 등의 감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달리, 내적 감각은 매우 추정적인(speculative) 능력이라는 점이다. 만약 우리에게 정말로 내적 감각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9]
더 큰 문제는, 내적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 없이는 그것이 우리의 외적 감각들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10] 내적 감각이 존재할 수도 있고, 우리의 외적 감각들보다 더 신뢰할 만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3. 외성적 자기 지식
내성이 내면을 들여다보는(looking inward) 것이라면,[11] 외성(extrospection)은 자신의 마음을 알기 위해 바깥을 바라보는(looking outward)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자신이 하늘이 파랗다고 믿는지 알기 위해, 하늘이 파란지에 집중할 수 있다.[12] 만약 답이 그렇다라면, 이것이 당신이 믿는 것이고, 당신은 이 믿음을 자신에게 귀속시킬 수 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하늘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외성을 통해 자기 지식을 얻는 것이다.
외성은 특별히 신뢰할 만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하늘에 대한 당신의 믿음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당신의 믿음이고, 따라서 당신이 그 믿음을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옳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른 사람이 ‘하늘이 파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에게 당신이 무엇을 믿는지를 신뢰할 만하게 말해 주지는 않는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외성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지식보다 자기 지식에 대해 더 나은, 다른 경로를 제공한다. 이 설명은 또한 내적 감각(inner sense)의 메커니즘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도 없다.
한 가지 문제는 바깥 세계에 집중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소용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간지러운 느낌이나 고통에 대한 자기 지식을 얻는 경우에 그렇다. 이런 감각들은 바깥 세계에 관한 믿음이나 다른 정신 상태들과 달리 완전히 ‘내적인’ 것처럼 보인다. 외성은 때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지식과 비교했을 때 자기 지식이 어떤 점에서 다르고 더 나은지 설명할 수 있지만, 모든 경우를 설명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13]
4. 무매개적 자기 지식(Self-Knowledge for Free)
어쩌면 자기 지식은 내성이나 외성, 또는 어떤 매개하는 과정이나 메커니즘에도 기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어쩌면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과 그런 마음 상태에 있는 것 사이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14] 예를 들어, 배고픔을 느끼는 것에 자신의 배고픔 감각을 자각하는(aware) 것이 포함되고, 쇼핑하려고 의도하는 것에 자신이 그렇게 의도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포함될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참이라면, 자기 지식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지식과 매우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결코 당신의 정신 상태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당신이 자신의 정신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 정신 상태의 본성이라면, 자기 무지(self-ignorance)는 불가능하고, 이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아는 것보다 당신이 스스로를 더 잘 안다는 것을 보장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해 결코 잘못 알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럴듯하지 않다. 당신이 친구에게 가혹하게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해보자. 이것은 질투로 인한 것일까, 아니면 사랑에서 나온 엄격함일까? 이를 성찰하는 과정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은 심지어 자기기만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치과의사의 드릴이 입에 닿기도 전에 “아파!”라고 외치는 사람을 상상해 보라. 아마 그는 그냥 무서워하는 것이지 실제로 아픈 것은 아닐 것이다.[15]
자기 지식에 대한 좋은 설명은 때때로 일어나는 자기 무지(self-ignorance)의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현재의 설명은 이런 점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5. 결론
여기서 우리는 자기 지식의 특별한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 자기 지식의 모든 사례들을 설명해야 한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일부 철학자들은 어떤 이론은 특정 사례들을 설명하고 다른 사례들은 다른 이론이 설명하여, 상호 보완적인 이론들을 함께 동원해야 모든 사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6]
또 다른 가능성으로, 각 설명의 한계가 자기 지식의 특별함에 대한 회의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만약 회의주의자들이 옳다면, 우리는 자기 지식이 우리의 삶에서 그토록 가치 있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17]
주석
[1] 지식을 ‘정당화된 참인 믿음’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한 게티어(Gettier, 1963)의 우려를 고려하더라도, 적어도 이것은 표준적인 견해이다. Andrew Chapman의 The Gettier Problem and the Definition of Knowledge(번역본: 게티어 문제와 지식의 정의)와 Todd R. Long의 Epistemic Justification: What is Rational Belief?(번역본: 인식적 정당성: 합리적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보라. Campbell(2018)과 같은 일부 철학자들은 자기 지식은 능력이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을 선호한다.
[2] 이러한 특성에 대해 여러 용어들이 제안되었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것은 ‘특권적 접근’(previliged access)으로, 자기 지식이 특별히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더 자세한 논의와 참고문헌에 대해서는 Byrne(2018, sect. 1.3.2)을 보라.
[3] ‘더 나은’ 자기 지식에 대해 여러 용어들이 제안된 것처럼, ‘다른’ 자기 지식에 대해서도 여러 용어들이 제안되었다. 예를 들어, 많은 철학자들은 자기 지식이 다른 마음들에 대한 지식(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는 다른 원천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특이한’(peculiar) 것이라고 말한다. 더 자세한 논의와 참고문헌에 대해서는 Byrne(2018, sect. 1.3.3)을 보라.
[4] 주석 2와 3에서 언급된 대안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Eric Marcus(2021)를 따라 ‘더 나은’(better), 그리고 ‘다른’(different)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5] 우리가 어떻게 그토록 잘, 그리고 독특하게 자기 지식을 획득하는지에 대한 두 편의 포괄적 연구로 Gertler (2011), Coliva (2016) 참고.
[6] Peterson (2021, p. 4)은 이를 ‘인식적 통제’(epistemic control)라고 부른다.
[7] 이런 자기 지식의 중요성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Shoemaker(1996), Burge(1996), Nguyen(2015), Sorgiovanni(2019), Peterson(2021), 그리고 Winokur(2021a, 2021b, 2021c, 그리고 출간 예정)을 보라.
[8]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내적 눈’(inner eye)일 수도 있고, 뇌의 구조 어딘가에 기반을 둔 메커니즘일 수도 있다. 더 자세한 논의는 Armstrong(1968)과 Lycan(1996)을 보라.
[9] 내적 감각 이론에 대해 더 많은 옹호와 비판에 대해서는 Byrne (2018)을 보라. 더 많은 비판을 위해서는 Burge (1996), Shoemaker (1996b)을 보라.
[10] Shoemaker(1996)는 정상적인 이성적 능력을 가진 행위자가 자신의 정신 상태들을 다른 사람들이 그것들을 아는 것보다 더 잘, 그리고 다르게 알지 못하는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많은 분량을 들여 주장했다.
[11] ‘외성’(extrospection)이라는 용어는 Fernández (2003)가 만들었지만, 그 기본 개념은 Evans (1982)가 제시한 바 있다.
[12] 우리가 이런 외성적 방식으로 어떻게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이행하는지에 대한 가장 상세하고 체계적인 논의에 대해서는 Byrne(2018)을 보라.
[13] Byrne(2018)은 자신의 외성 이론을 모든 종류의 정신 상태들에 대한 자기 지식으로 확장하려고 시도하지만, 그의 논증들은 상당한 저항에 부딪혔다. 예를 들어 Bar-On and Johnson(2019)을 보라.
[14] 이 견해는 흔히 자기 지식에 대한 ‘구성주의’(constitutivism)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의 정신 상태들이 그것들에 대한 개인의 자각(awareness)에 의해 구성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견해의 지지자들로는 Shoemaker(1996a), Bilgrami(2006), Coliva(2016), 그리고 Marcus(2021)가 있다. 주목할 점은 구성주의자들이 항상 우리의 모든 정신 상태들이 본성상 자기에게 알려진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15] 이 사례는 Locke(1967)와 Barz(2018)의 사례를 변형한 것이다. 유사한 사례에 대해서는 Bar-On(2004, p. 8)을 보라.
[16] 특권적(privileged)이고 특이한(peculiar) 자기 지식의 원천들에 대해 우리가 다원주의자(pluralists)가 되어야 한다는 논증들에 대해서는 Boyle(2009)과 Coliva(2016)를 보라.
[17] 이 영역에서의 회의주의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Cassam(2014)을 보라. 회의주의의 초기 지지자에 대해서는 Ryle(2009 [1949])을 보라. 주목할 점은 Bilgrami(2006)와 Coliva(2016, ch. 8)가 자기 지식이 그것을 매개하는 메커니즘을 전혀 요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기 무지는 때때로 가능한데, 왜냐하면 때때로 우리는 자기 지식을 얻기 위해 과정을 거치거나 메커니즘을 사용해야 하고, 이 과정이나 메커니즘을 잘못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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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에세이
Epistemology, or Theory of Knowledge by Thomas Metcalf (번역본: 인식론, 또는 지식 이론)
Epistemic Justification: What is Rational Belief? by Todd R. Long (번역본: 인식적 정당성: 합리적 믿음이란 무엇인가?)
Philosophy of Pain by Tiina Carita Rosenqvist
Semantic Externalism by Rachel Bourbaki
The Extended Mind by Rachel Bourbaki
“I Think, Therefore I am”: Descartes on the Foundations of Knowledge by Charles Miceli (번역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지식의 토대에 대한 르네 데카르트의 견해)
The Gettier Problem and the Definition of Knowledge by Andrew Chapman (번역본: 게티어 문제와 지식의 정의)
The Epistemology of Disagreement by John Matheson (번역본: 의견 불일치의 인식론)
저자 소개
벤저민 위노커(Benjamin Winokur)는 아쇼카 대학교(Ashoka University)의 방문 조교수다. 2021년 요크 대학교(York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관심사는 인식론, 심리철학, 언어철학, 응용 윤리학(특히 기술 윤리학)에 걸쳐 있다. 그는 자기 지식, 자기 표현, 추론의 본성, 메타윤리학, 소셜 미디어의 인식론에 관한 글들을 발표했다. BenWinokur.com
이 글은 Benjamin Winokur의 Self-Knowledge: Knowing Your Own Mind를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