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되는 것에 특별히 전문적인 것이 있을까? – David Egan

대학 밖에서 사람들에게 제가 철학 분야에서 일을 한다고 말하면 대화가 중단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당혹스럽지만 악의 없는 질문을 받은 적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친절하고 똑똑하고 유능해 보이는데, 왜 부자가 되지도 못하고 눈에 띄는 방식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지도 못하는 일을 하느냐는 것이죠.

이런 종류의 당혹감은 일반적으로 인문학 분야의 종사자들을 괴롭힙니다. STEM 분야(과학, 기술, 공학, 수학)의 ‘딱딱한'(hard) 학문과 달리 인문학은 종종 ‘부드러운'(soft) 학문이라는 말로 폄하됩니다. 소설을 읽는데 석박사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뭐하러 굳이 인문학을 공부하냐는 것입니다.

이 형용사 ‘딱딱한’과 ‘부드러운’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종종 ‘딱딱함’을 난이도의 측면에서 설명하지만, 인문학 분야의 작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종종 우리가 공부하는 주제가 ‘주관적’이거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엄격한 비평적 검토가 불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첫 번째 에세이를 제출했다가 낭패를 보고 나서야 이를 깨닫곤 합니다. 어쩌면 STEM 분야의 ‘딱딱함’은 보다 전문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논리학을 수강했거나 율독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듯이 인문학 분야에도 전문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STEM 분야의 어떤 점이 더 높은 밀도의 전문적 기술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비유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2018년 가장 주목받은 영화 중 하나인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의 ‘로마'(Roma)는 멕시코 시티의 콜로니아 로마 지역에서 자란 감독 자신의 성장기를 반자전적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중심인물인 원주민 가정부 클레오 역은 처음 연기를 도전했던 배우 얄리차 아파리시오(Yalitza Aparicio)가 맡아 큰 찬사를 받았으며, 그녀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다른 여러 상을 수상했습니다. 아파리시오는 비전문 배우가 관객들을 놀라게 한 최근의 두드러진 사례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전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스트들은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고, 베르너 헤르조그(Werner Herzog), 켄 로치(Ken Loach), 다르덴 형제(Dardenne brothers) 같은 감독들도 비전문 배우들을 적극 기용했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던 배우 행 S. 응고르(Haing S Ngor)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 1984)에서 맡은 역할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이올린 연주회에 초대받았는데 연주자가 처음으로 악기를 연주해 보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조금 부드럽게 말하자면, 이것은 예술적 성공의 청사진처럼은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그럴까요? 왜 영화감독들은 처음 연기하는 배우로부터 훌륭한 연기를 얻을 수 있지만, 지휘자들은 처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연주자로부터 훌륭한 연주를 얻을 수 없을까요? 바이올린 연주가 어떤 면에서 연기보다 더 어렵기 때문일까요?

제 생각에 그에 대한 답은, 정말로 처음 연기하는 배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회화된 모든 인간은 분노에 휩싸이거나, 웃음을 터뜨리거나, 의심의 눈길로 누군가를 보거나, 동정심을 가지고 듣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지식을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배우는 것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특별히 그것을 습득하려고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말총을 장선에 문지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아는 지식은 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항상 자신을 연기하기 때문에,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방법에 대한 직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기 학교가 사기인 것은 아닙니다. 연기는 기술이며,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숙달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노력합니다. 아역 배우와 같은 비전문 연기자들은 상당히 제한된 범위의 역할에서만 찬사를 받습니다. 우선 아동 및 비전문 배우들이 주연을 맡는 것은 카메라 워크와 편집을 통해 그들의 기술의 한계를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는 스크린 연기에 거의 전적으로 국한됩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연기에 대한 찬사들은 화면 밖에서의 모습과 비교적 가까운 역할을 연기한 배우의 ‘진정성’이나 ‘자연스러움’을 강조합니다. 훈련을 받지 않은 배우가 오크나 빅토리아 시대 귀족, 또는 덴마크의 음울한 왕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연기 강사와 바이올린 선생님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훈련이 종류가 어떻게 다를지 생각해 보세요. 연기 수업은 이를테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이미 경험한 감정적 과정을 더 잘 이해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언어적, 신체적 표현력을 더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그 훈련은 때때로 고도의 기술을 요하지만, 대부분은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능력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바이올린 교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바이올린과 활을 잡는 데 익숙해지게 하고, 처음으로 활을 현에 대고 그어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느껴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대조를 철학 수업의 첫 시간과 전기공학 수업의 첫 시간 사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직관에서 시작하여, 그 직관을 밀어붙이고, 학생들에게 평소보다 더 멀리까지 추론하도록 요구함으로써 그들을 철학적 질문으로 이끕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안다고 주장하며, 때로는 이 주장이 정당화되고 때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 수업에서가 아니고는 무엇이 지식을 구성하는지, 그리고 지식을 운 좋은 추측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을 아주 강하게 밀어붙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언제 무언가를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또는 없는지에 대한 학생들의 친숙한 직관으로 시작하여 이 질문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도록 권합니다. 반면에, 저는 전기공학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 수업이 전기 회로 작동에 대한 학생들의 직관을 파고드는 것으로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고대 도시에 비유했습니다. 길과 광장이 미로처럼 얽힌 중심부의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점차로 보다 새롭고 계획된 교외의 정돈된 길과 균일화된 집들로 이어집니다. 인간의 탐구 분야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이처럼 잘 정돈된 교외와 같아서, 정확한 방법론에 따라 엄격하게 정렬되어 있고, 인문학은 그 안에서 왁자지껄하게 돌아가는 인간 생활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중심부와 같습니다. 우리는 로켓을 우주에 보내고, 공격적인 암을 치료하고, 골드바흐의 추측에 대한 증명을 고안하는 등의 특정 목적을 위해 여러 다른 교외를 여행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교외를 결코 방문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그 모든 곳을 전부 다 깊이 알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도시 중심부에서 만납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이 의미 있고 존경할 만하거나 경멸할 만한지, 무엇을 희망하고 두려워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질문을 더 신중하고 엄격하게 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이미 익숙한 활동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학은 어떤 점에서 유용할까요? 제가 배운 대답은 제기된 질문 자체가 철학적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이 하는 일 중 하나는 바로 무엇이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왜 그런지를 묻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저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은 이미 무엇이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꽤 제한된 대답들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 대답들은 일반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물질적 복지에 관한 것에서 끝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답은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하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철학적 질문에 대한 철학적 대답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항상 철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암묵적인 대답입니다. 철학적 훈련의 큰 부분은 이러한 암묵적 대답을 명시적으로 만든 다음 그것들을 엄격하게 검토하는 것입니다. 철학적 성찰은 일단 시작하면 끝없이 까다로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적 삶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현명할 일일 것 같습니다.

저자 소개

데이비드 이건(David Egan)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캐나다, 미국, 영국의 여러 교육기관에서 가르쳤습니다. 또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온라인 철학 강의를 합니다. 저서로는 The Pursuit of an Authentic Philosophy: Wittgenstein, Heidegger, and the Everyday,(2019)가 있습니다. 현재 동물에 관한 책을 집필 중입니다.

샘 드레서(Sam Dresser)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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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eon에 게재된 Is there anything especially expert about being a philosopher?을 번역한 것입니다.
Aeon의 번역 및 배포 기준을 준수하여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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