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과학은 모두 우리 자신과 세계에 관해 탐구하는 방법이다.
이 글에서는 과학과 철학의 방법론과 지식의 원천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겹치는지에 대한 두 가지 주요 관점을 검토할 것이다.
우리는 철학의 본성에 대해 역사적으로 가장 지배적이었던 관점으로 시작할 것이다.[1] 이 관점을 ‘이성주의‘(rationalism)[2]라고 부르자. 이 전통적인 관점을 살펴본 후, 철학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최근의 관점을 검토할 것이다: 이 관점은 ‘자연주의‘(naturalism)이다.
1. 전통적인 관점: 이성주의
철학 자체에 대한 이성주의에 따르면, 우리가 가진 전형적인 철학적 믿음의 대부분 또는 모두는 감각적 관찰과는 독립적으로 형성되고 정당화된다. 즉, 이러한 믿음은 선험적으로(a priori) 또는 문제에 대해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형성되고 정당화된다.
어떤 사실을 선험적으로 안다는 것은 그 사실에 대한 경험적, 감각적, 지각적 관찰과는 독립적으로, 또는 그러한 관찰 이전에 그 사실을 아는 것이다.[3] 예를 들어, 우리는 모든 짝수는 2로 정확히 나누어떨어진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기 위해 과학적 실험을 할 필요는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태양계 행성의 수가 짝수개인지 알기 위해서는 선험적인 조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적인, 또는 감각이나 경험에 기반한 정보가 필요하다.[4]
만약 우리가 전형적인 철학적 믿음들이 (그것들이 정당화되거나 알려진다고 할 때) 선험적으로 정당화되거나 알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과학과 철학의 차이점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다. 다음은 이 둘을 대조하는 한 가지 방식을 요약한 것이다:
- 과학은 경험적 지식에 관한 것이다. 철학도 종종 그렇지만, 철학은 또한 선험적 지식(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 과학은 우연적 사실이나 진리에 관한 것이다. 철학도 종종 그렇지만, 철학은 또한 필연적 진리(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5]
- 과학은 기술적(descriptive) 사실에 관한 것이다. 철학도 종종 그렇지만, 철학은 또한 규범적(normative), 평가적(evaluative) 진리(만약 그런 진리가 존재한다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 과학은 물리적 대상에 관한 것이다. 철학도 종종 그렇지만, 철학은 또한 추상적 대상(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조를 설명하자면, 우연적 사실이란 실제로는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래야 했던 것은 아닌 사실이다. 그것들은 다르게 될 수도 있었다. 반면, 필연적 진리란 참인 주장으로서 반드시 참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기술적 사실이란 사물/사태(things)가 실제로 어떤지에 관한 것이고, 규범적 진리와 평가적 진리는 그것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또는 어떠하지 않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좋은지 나쁜지에 관한 것이다. 물리적 대상은,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아마도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시공간 상에 위치하는 대상일 것이다. 추상적 대상은, 만약 존재한다면, 물리적 우주 안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6]
위에서 “또한”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라. 철학도 종종 우연적, 기술적, 물리적 사실에 대한 경험적 지식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단지 그러한 것들은 주로 과학의 초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괄호 안에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이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라. 일부 철학자들은 선험적 지식,[7] 필연적 진리,[8] 규범적 진리,[9] 추상적 대상[10]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철학과 과학을 대조하는 이러한 접근법은 철학의 범위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를 살펴봄으로써 뒷받침할 수 있다. 철학은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실재의 본성, 구조, 내용), 인식론(지식, 증거의 본성과 범위), 윤리학(좋음, 나쁨, 옳음, 그름)이라는 세 가지 주요 하위 영역을 갖는다고 여겨진다.[11]
만약 이것이 정확하다면, 이는 이성주의에 대한 위의 설명과 매우 잘 들어맞는다. 형이상학은 주로 필연적인 진리와 추상적인 대상에 관한 것이다.[12] 인식론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이고 평가적인 질문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 것이 정당화되는가?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지식은 참인 믿음 이상의 무엇인가?[13] 그리고 윤리학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적인 질문에 관한 것이므로 분명히 규범적이다.[14]
그리고 만약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지식이나 정당화된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선험적이다. 믿음의 정당화를 위해 실험실에서 과학적인 실험을 할 필요가 없고, 그러한 실험이 어떤 모습일지도 분명하지 않다.
2. 새로운 관점: 자연주의
철학에서 ‘자연주의’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다루는 것은 ‘메타철학적'(metaphilosophical) 자연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15]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 이론이 단순히 특정 철학적 문제나 주제에 대한 자연주의가 아니고 철학 자체에 대한 자연주의라는 것이다. 즉, 이것은 철학 자체에 대한 철학적 견해이다.
“자연주의”라는 단어는 또한 이 이론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것은 철학과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사이에 어떤 강력한 연관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이것은 신경과학이나 우주론에서의 과학적 관찰이 전통적인 철학적 관심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과학이 철학적 주제들에 대해 중요한 것들을 말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며, 일부는 심지어 철학의 대부분이 경험 과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쩌면 우리는 단순히 우리가 가진 최고의 과학 이론이 실재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는 모든 것을 믿어야 하며, 오직 그것들만을 믿어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과학이 전통적인 철학적 관심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16] 이런 종류의 견해도 “자연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다.
우리가 위의 어느 방식으로 정의된 자연주의와 같은 것을 받아들인다면, 철학을 단순히 과학과 대조하여 정의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위의 글머리 기호 목록에서 “철학은 또한 ~에 관한 것이기도 히다”라는 표현을 “전통적으로 철학은 ~과 더 관련되어온 것이다”로 단순히 대체한다면, 우리는 자연주의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주의자들은 과학을 사용해서 전통적인 철학적 질문들을 탐구해야 한다고 믿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입장이 비교적 새로운 것임을 인정할 것이다.[17] 그들은 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그들의 주제를 주로 지성, 개념적 탐구, 논리학 및 직관의 사용을 통해 탐구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는 것을 인정한다.
3. 결론
철학 수업에서 공부하는 주제들은 일반적으로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의 주제, 방법과 대조하여 정의될 수 있다.
철학적 문제들은 궁극적으로 선험적 탐구에 적합할까, 아니면 과학적 관찰의 대상으로 고려하는 것이 더 적절할까? 이 질문에 이성주의자들과 자연주의자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이해하고, 그들의 대답을 정당화하는 통찰과 방법을 비교하는 것은 철학에 대해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철학에 대한 철학(philosophy of philosophy)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주석
[1] 철학 자체를 정의하고 그 특징을 설명하는 방식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토마스 멧칼프(Thomas Metcalf)의 What is Philosophy?(번역본: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참조.
[2] “이성주의”라는 단어는 철학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며 여러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다른 대안들과 비교해보면] 이 명칭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직관주의”(intuitionism)는 더 강한 주장을 담고 있고, “비자연주의”(nonnaturalism) 역시 더 강한 주장을 암시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별로 정보를 주지 않는다. 또한 “선험주의”(apriorism)는 혼란을 줄 수 있다. 이 외에, 일부 이성주의자들은 비-이성주의(non-rationalistic) 철학이 자기논박적이라고 영향력 있게 주장해 왔다(BonJour 1998: 1장; Bealer 1996; Huemer 2017). 이 결론을 지지하는 조금이라도 설득력 있는 근거가 있다면, 이는 철학 자체가 중요한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선험적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우리는 철학적 지식을 얻기 위해 이성주의가 옳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하지 않고도 이 결론을 긍정할 수 있다.
[3] 이것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관찰도 전혀 하지 않고 선험적으로 무언가를 알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색깔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기 위해 우리의 눈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철학자들은 예를 들어 우리가 일단 빨간색과 초록색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완전히 빨간색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초록색일 수는 없다는 것을 단지 생각만으로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참조: BonJour 1998: 2). 우리는 그것에 대해 단지 생각만으로 안다. 즉, 완전히 빨간색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초록색인 것의 관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냥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또는 그러한 대상을 상상하는 것을 시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선험적 학습에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하라. 예를 들어, 어딘가에 “1=1″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그 등식이 참이라는 것을 즉시 깨닫게 되는데, 이를 위해 특별히 많은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단지 생각만으로도”라는 설명은 일반적으로 선험적 지식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다.
[4] 이 구분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토마스 멧칼프(Thomas Metcalf)의 Epistemology, or Theory of Knowledge 항목을 참조.
[5] 우연적 진리와 필연적 진리의 구분에 대한 설명은 안드레 레오 루사부크(Andre Leo Rusavuk)의 Possibility and Necessity: An Introduction to Modality 참조.
[6] 참조: Plato 1997, bks. V-VII.
[7] Quine 1961: 43.
[8] Quine 1969: §§ 1-4.
[9] 참조: Ridge 2013.
[10] 참조: Loux 2006: 2장; Armstrong 2002.
[11] 이 분류법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과 더 많은 예는 토마스 멧칼프(Thomas Metcalf)의 What is Philosophy? 참조.
[12] Loux 2006.
[13] BonJour 2002: 10장; Huemer 2002; 그러나 Kornblith 2002, Goldman 1986와 비교해 보라.
[14] 참조: Huemer 2005: 4장; Ridge 2013.
[15] Quine 1969; Goldman 1986; Kornblith 2002. 또한 Papineau 2013 참조.
[16] 예를 들어 Papineau 2013 참조.
[17] Papineau 2013.
참고 문헌
Armstrong, D. M. 2002. A Materialist Theory of the Mind.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Goldman, Alvin. 1986. Epistemology and Cognit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Huemer, Michael (ed.). 2002. Epistemology: Contemporary Readings.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Huemer, Michael. 2005. Ethical Intuitionism. New York: Palgrave Macmillan.
Kornlibth, Hilary. 2002. Knowledge and its Place in Natu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Loux, Michael. 2006. Metaphysics: A Contemporary Introduction, 3rd ed.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번역본: 마이클 루, 박제철 역, 『형이상학 강의』, 아카넷, 2010.)
Plato. 1997. “Republic.” Tr. G. M. A. Grube, Rev. Tr. C. D. C. Reeve. In John M. Cooper (ed.), Plato: Complete Works. Indianapolis and Cambridge, UK: Hackett, pp. 971-1223.
(번역본: 플라톤, 박종현 역, 『국가·정체(政體)』, 서광사, 2005.)
관련 에세이
What is Philosophy? by Thomas Metcalf (번역본: 철학이란 무엇인가?)
Epistemology, or Theory of Knowledge by Thomas Metcalf
Possibility and Necessity: An Introduction to Modality by Andre Leo Rusavuk
Ethical Realism, or Moral Realism by Thomas Metcalf
문서 역사
이 에세이(영어 원본)는 2018년 2월 23일에 처음 게시되었습니다. 2021년 10월 8일에 대폭 수정된 버전이 게시되었습니다.
저자 소개
톰 멧칼프(Tom Metcalf)는 앨라배마주 모바일에 있는 스프링힐 대학(Spring Hill College)의 부교수입니다.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the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윤리학, 메타윤리학, 인식론, 종교 철학을 전문으로 연구합니다. 톰은 헤스페러스(Hesperus)와 포스포러스(Phosphorus)라는 이름의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http://shc.academia.edu/ThomasMetcalf
이 글은 Thomas Metcalf의 Philosophy and Its Contrast with Science: Comparing Philosophical and Scientific Understanding을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2 thoughts on “철학과 과학의 차이점: 철학적 이해와 과학적 이해를 비교하기 – Thomas Metcalf”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