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은 그리 기분 좋은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확신은 어리석은 상태이다.[역주1]
볼테르 (1770)
내가 병동을 회진하고 있을 때 매기는 내게 말했다. 자신이 지난주에 마돈나의 저택을 방문해서 투어 의상 고르는 것을 도와 줬다고. 문제는 매기가 더블린의 재봉사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마돈나를 만난 적이 전혀 없었다. 그 유명한 원뿔 모양 브래지어에 대한 의상 조언을 해준 적도 없었다. 실제로는, 며칠 전 매기가 고열에 시달리며 몹시 불안해하는 상태로 응급실에 왔을 때 시행한 MRI 검사에서 뇌염이 발견되었다. 염증으로 뇌가 부어오른 것이었다.
매기는 작화(confabulation)를 하고 있었다. 뇌 손상으로 인해 생긴 거짓 기억들을 진실로 믿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더라도, 매기는 자신이 유명인들의 재봉사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작화증의 본질이다. 사실을 의심하고 검증하는 비판 능력이 손상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직한 거짓말들이 매기에게는 진실이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작화증은 뇌염, 뇌졸중, 외상, 또는 만성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한 비타민 B1(티아민) 결핍 등이 일으킨 뇌 손상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작화증 환자들 중 일부는 기괴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전생에 우주선 선장이었다고 말하거나 UFO에서 외계인을 봤다고 보고하는 식이다.
뇌 손상이 있는 작화증 환자들은 종종 기이한 이야기들에 의거해 행동하려고 한다. 재봉틀을 가지고 유명인의 저택에 가겠다고 고집하는 것처럼 말이다. 먼 과거의 기억들과 지각들이 현재로 흘러들어와 혼합되고 뒤섞여, 현재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게 된다.
러시아의 정신과 의사 세르게이 코르사코프(Sergei Korsakoff)는 1889년 동료들에게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다. 그의 보고서는 과거에 핀란드를 여행했던 환자의 사례를 다루었다. 그 여행을 묘사하면서 환자는 크림반도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에 섞어 넣었다. 그 결과 그녀의 이야기에서 핀란드 사람들은 항상 양고기를 먹었고, 주민들은 타타르인이 되어 버렸다.
코르사코프의 환자처럼, 많은 작화증 환자들은 세세하게 이야기를 덧붙이거나 꾸미고, 단순히 사실들을 뒤섞기도 한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조금씩 그렇다. 우리의 직관에는 종종 ‘이게 맞다’는 자동적인 느낌이 따라온다. 우리는 곧바로 그것을 그럴듯하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뇌 손상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뇌는 도저히 사실일 수 없는 정보와 지각들을 점검하는 경향이 있다. “에든버러로 가는 길에서 내가 캥거루를 본 게 정말일 수 있을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정보를 따로 두고 추가 사실 확인을 위해 보류한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의심 신호’(doubt tags)인데, 신경과학자들은 이것이 뇌 앞부분의 안와전두피질(OFC)과 복내측전전두피질(vmPFC)에서 작동한다고 밝혀냈다. 이러한 신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여기 뭔가 수상한 것이 있다.’ 뇌 손상이 있는 작화증 환자들은 이 영역들이 손상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터무니없는 생각들에 대해서도 의심 신호를 작동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작화증은 뇌 손상이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아이들도 흔히 작화를 하는데, 이는 아직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 발달하는 중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영국 베드퍼드셔 대학교(the University of Bedfordshire)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의 연구자들은 건강한 대학생 집단이 자신에게 범죄 전력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참가자들이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게 하기 위해, 면접관들은 먼저 그들이 청소년기에 실제로 경험한 사건을 이야기했다. 이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전에 가족으로부터 확보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면접관들은 거짓 사건을 제시했다. “두 번째 사건은 부모님께서 말씀하신 것인데, 당신이 경찰과 접촉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진짜 사건과 가짜 사건 모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도록 요청받았다.
세 번째 면접 때가 되자, 참가자의 70%가 청소년기 초기에 절도, 폭행, 또는 흉기 사용 폭행을 저질러 경찰과 연루되었다는 거짓 기억을 만들어냈다. 이야기를 되풀이할수록 의심은 줄어들었다.
“경찰이 두 명이었다고 기억해요. 네, 두 명이었어요.” 한 연구 참가자가 말했다. “이건 확실해요… 한 명은 백인이었고, 한 명은 아마 히스패닉계였던 것 같아요… 제가 곤란해졌던 게 기억나요. 그래서 제가 한 일을 그들한테 말해야 했어요…”
“소리를 질렀던 게 기억나나요?” 면접관이 물었다.
“걔가 저를 ‘걸레’라고 불렀던 것 같아요.” 참가자가 대답했다. “그래서 화가 나서 돌을 던진 거예요. 제가 돌을 던진 이유는, 걔한테 가까이 갈 수가 없었거든요…”
당신이 마돈나의 집에 재봉틀을 가져가려 한 적은 없더라도, 우리 모두는 작화증 환자들과 공통점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일부 기억과 지각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리노이주 엘름허스트 대학(Elmhurst Colleg)의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윌리엄 허스타인(William Hirstein)의 표현을 빌리면, 잘못된 반응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억과 지각이 타인에 의해 유도되거나 제안될 때, 또는 압박을 받을 때 특히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무고한 용의자가 법정 심문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화하도록 유도될 수 있다(“그냥 최대한 짐작 가는 바라도 말해 보세요”). 그리고 이는 허위 자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억이나 인식에 강렬한 감정이 얽혀 있다면 이 역시 우리의 의심 신호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감정은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게 하고, 그 정확성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을 강화하며, 그 사건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깊은 느낌을 더해 준다. 끔찍한 교통사고나 격렬한 말다툼에 대한 이야기들은 저녁 식탁이나 사무실 정수기 앞에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의심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인 것은 아니다.
의심 결핍에는 아름다운 진화적 이점이 있다. 눈앞에 울부짖는 동물이 정말 늑대일까? 늑대처럼 보인다. 1초도 의심하는 데 쓰지 말라. 달려라, 그냥 달려라.
하지만 단점도 있다. 그중 하나는 속임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복내측전전두피질(vmPFC) 손상이 있는 성인들은, 뇌의 다른 부위에 손상이 있는 사람들이나 뇌 손상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기만적인 광고를 믿을 가능성이 약 2배 더 높다. 이는 기억력이나 문해력의 차이와 무관하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노인들이 특히 사기에 취약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나이가 들면서 복내측전전두피질의 구조적 온전성과 기능이 약화되고, 그 결과 의심 능력이 둔화된다.
뇌 손상이 없어도, 속임을 당해서 작화를 하게 되고 그 결과 의심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결과를 초래한다. 2012년 스웨덴 룬드 대학(Lund University)의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분쟁, 이민, 정부 감시, 성매매 등에 관한 여러 진술에 대한 동의 정도를 표시하도록 요청했다.
그중 한 진술은 이렇게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의 분쟁에서 사용한 폭력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반대 진술은 그 폭력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선택한 후 그 답변을 소리 내어 읽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두 답변이 바뀌어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참가자가 자신은 불법 이민자를 숨겨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혐오스럽다고 강하게 믿는다고 대답했다면, 나중에 그가 그것을 도덕적으로 칭찬할 만하다고 강하게 믿는다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충격적이게도 69%가 적어도 하나의 이러한 바꿔치기를 감지하지 못했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입장을 지지하는 논증을 명확하게 작화했다. (이것을 선택맹(choice blindness)이라 한다. 자신의 결정과 그것의 결과 사이의 불일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이 선택한 것의 반대 입장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반대로 달라진 입장은 고착되었다. 1주일 후, 이런 식으로 작화를 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는 선택하지 않았던 입장에 대해 더 높은 선호를 보였다. 나는 이 연구의 저자 중 한 명인 룬드 대학의 인지과학자 페터 요한손(Petter Johansson)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답변을 구성할 때,” 그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청자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어쩌면 우리의 가치관은 신중한 성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후 합리화를 통해 형성되고 변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동자 추적과 동공 확장에 대한 (놀람을 측정하기 위한) 예비 분석은 대부분의 작화자들이 조작을 감지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었다. 이는 위험한 상태이다. 의심 결핍은 늑대로부터는 당신을 구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당신을 속임수에 취약하게 만들고, 심지어 도덕성마저 위태롭게 한다.
의심에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과학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대안적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엄밀히 검토하도록 한다. 중세 철학자 피터 아벨라르(Peter Abelard)의 말을 빌리면, “의심함으로써 우리는 탐구에 이르고, 탐구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한다.”
허스타인(Hirstein)은 흥미롭게도 흔히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과 연관되는 체계를 언급한다. “우리에게 의심은 단순히 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라고 그가 내게 말했다. “그것은 자율신경계가 만들어내는 불쾌한 직감(gut feeling)을 동반합니다. 아마도 바로 이 직감이 의심에게 우리를 멈추게 하고 우리가 말하려는 것을 재고하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의심은 양날의 검이다. 혼란스러운 수사들이 우리를 뒤덮는다. 백신 접종, 이민, 기후변화를 둘러싼 주장들과 반론들이 소용돌이치고, 우리의 의심은 조작자들(manipulators)이 사용하는 무기가 된다. 1969년 담배 산업의 홍보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의심이야말로 우리의 상품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대중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사실들의 집합체’와 경쟁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의심을 주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증거’나 ‘전문가들’ 같은 단어에 인용 부호를 붙여라. 인정받는 증거를 비판하는 전문가들을 돈을 주고 고용하라. 그들의 용기를 칭송하라. 역학 연구가 가진 본질적 모호성을 활용하라. 건강한 회의주의를 선전으로 바꾸라. 잘 섞고, 양념을 쳐라. 진리를 제공하지 않고도 상대편이 그들의 진리를 의심하도록 만들 수 있다.
매기의 열은 사라졌고, 그녀의 기이한 이야기들도 함께 사라졌다. 의심하는 능력이 회복되면서, 그녀는 한 가지 취약성을 다른 취약성과 맞바꾸었다. 하지만 의심을 품는 것이 의심을 전혀 갖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역주1] 볼테르의 프랑스어 원문: “Le doute n’est pas un état bien agréable, mais l’assurance est un état ridicule.” 영어로는 “Doubt is not a pleasant condition, but certainty is absurd”로 번역되었다.
저자 소개
줄스 몬터규(Jules Montague)는 런던에 거주하는 아일랜드 출신 신경학자이자 작가이다. 정체성의 신경과학(neuroscience of identity)을 다룬 그녀의 책 Lost and Found가 2018년 출간 예정이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Why is the brain prone to florid forms of confabula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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