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 담론에 따르면, 미국의 아이들은 게으르고, 특권의식에 젖어 있으며, 글로벌 경제에서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학교는 사회정서적 기술(socio-emotional skills) 교육을 소홀히 하여 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미국 아이들에게 대학과 직장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성향을 길러 주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에 따르면, 정치인, 정책 입안자, 기업 경영진, 학부모들은 모두 아이들에게 더 많은 그릿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학계와 대중적 담론에서 그릿 개념을 가장 널리 알린 사람은 아마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긍정심리학센터의 앤절라 덕워스(Angela Duckworth) 교수일 것이다. 그녀의 자신의 책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번역본: 김미정 역, 비즈니스북스, 『그릿: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2022.)에서 그릿 개념을 소개하고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그릿을 어떻게 길러줄 수 있는지 설명한다.
덕워스에 따르면, 그릿은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릿이 있다는 것은 흥미롭고 의미 있는 목표를 굳게 붙든다는 것이다. 그릿이 있다는 것은 날마다, 주마다, 해마다 도전적인 연습에 노력을 쏟는다는 것이다. 그릿이 있다는 것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는 것이다.” 덕워스는 그릿 덕분에 성공한 음악가, 운동선수, 코치, 학자, 기업인들의 사례를 제시한다. 그녀의 책은 학교에서 그릿을 길러 주고 측정하기를 원하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유용할 것이다.
그릿이 필요한 때와 상황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릿 자체를 무조건 찬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이 종종 어리석거나 유해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덕워스의 책에는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일들을 그릿을 가지고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이자 덕워스의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의 사례를 보자. 1967년의 한 논문에서 셀리그만과 그의 공동저자는 개들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실험을 설명한다. 첫째 날, 개들은 움직이지 못하게 묶인 채로 전기 충격을 받았다. 한 그룹의 개들은 코로 패널을 누르면 충격을 멈출 수 있었지만, 다른 그룹은 그럴 수 없었다. 다음 날, 모든 개들은 셔틀 박스에 넣어져 다시 전기 충격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충격을 멈출 수 있었다. 첫날 충격을 멈출 수 있었던 개들은 대부분 장벽을 뛰어넘었다. 피할 수 없는 충격을 경험했던 개들은 대부분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그중 소수의 개들만이 장벽을 뛰어넘었다. 덕워스는 이 이야기와 자신이 대학시절 신경생물학 수업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연결시킨다. 그녀는 자신이 그 과목을 통과한 이유가 “최근의 통제 불가능했던 고통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던 소수의 개들처럼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덕워스는 자신을 일어나서 계속 싸운 개들 중 하나와 동일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덕워스는 셀리그만의 연구에 사용된 많은 동물들이 실험 직후 죽거나 병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우려를 표하지 않는다. 또한 덕워스는 CIA가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체계적인 고문 프로그램이었던] ‘고강도 심문'(enhanced interrogation)에 활용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셀리그만은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고문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는데도 말이다. 덕워스는 “그릿을 가진 악당들”(grit villains)이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그릿을 가진 영웅들이 훨씬 더 많다”는 이유로 이러한 우려를 일축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남에게 분별없이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반드시 “그릿을 가진 악당”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도덕의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덕워스의 책에 등장하는 그릿의 두 번째 모범 사례는 시애틀 시호크스(Seattle Seahawks) 미식축구팀을 슈퍼볼 우승으로 이끈 피트 캐럴(Pete Carroll) 감독이다. 캐럴은 코치들이 “불평 금지. 불만 금지. 변명 금지.”라고 외치는 그릿 문화를 조성했다. 덕워스는 또한 시호크스의 수비수인 얼 토마스(Earl Thomas)가 “놀라울 정도로 격렬하게” 경기하는 것을 칭찬한다.
덕워스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들이 겪는 장기적인 건강 피해를 상세히 다룬 기사나 영화, TV 프로그램을 전혀 접하지 않은 것 같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은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면 미식축구는 시키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덕워스는 외상성 뇌 손상으로 고통받는 미식축구 선수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은 것 같다.
덕워스가 롤 모델로 꼽는 또 다른 인물은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의 CEO인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이다. 다이먼의 모교인 사립 고등학교의 모토는 ‘그리트’(grytte, ‘grit’의 고어)이었으며, 덕워스는 JP모건 체이스의 성공이 그의 그릿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제이미는 자신의 은행을 안전하게 이끌었고, 다른 은행들이 완전히 무너지는 동안 JP모건 체이스는 어떻게든 50억 달러의 이익을 올렸다.” 이 문장에서 그가 “어떻게든” 이익을 냈다는 말에는 근거가 없다. JP모건 체이스는 2008년에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으로부터 250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전반적으로 덕워스와 그녀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개인의 성공을 가능하게 하거나 방해하는 정치적 조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덕워스는 이외에도 많은 의문스러운 사례들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미국의 비만 확산에 자신이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전혀 성찰하지 않는 시나본(Cinnabon)의 CEO,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철자 경연대회(Spelling Bee) 챔피언들, ‘비스트(Beast)’라는 이름의 사실상 괴롭힘에 가까운 입문 의식을 견뎌야 하는 웨스트포인트(The West Point) 생도들의 사례가 포함된다.
왜 이들은 잠시 멈추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일까? 덕워스는 책에서 “그릿의 모범들은 나침반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칭찬할 일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그들의 도덕적 결함을 드러내는 신호일 수 있다. 많은 경우 그릿의 반대는, 생각하고, 궁금해하고, 질문하며, 언덕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지금 많은 미국인들은 다음 세대가 그릿을 갖기를 원한다. 이미 캘리포니아 주의 여러 학군에서는 덕워스의 그릿 설문지를 수정하여 이를 이용해 아이들이 ‘자기관리 기술’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지에 따라 학교와 교사들을 평가하고 있다. 덕워스 자신은 측정 도구가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릿을 학교 평가에 반영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릿 문화가 권위주의적 정치, 즉 지도자들이 대중이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기를 기대하는 정치에 기여한다는 더 큰 문제를 간과한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권위에 도전하는 능동적인 시민들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보스턴 차 사건, 세네카 폴스 대회, 워싱턴 행진, 그리고 최근에 벌어진 시험 거부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떤 부류인지 생각해 보라. 이 모든 경우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권리를 요구했다. 덕워스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웨스트포인트의 ‘비스트’와 같은 교육 모델을 찬양한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교육 모델로서는 최악이다. 미국 학교는 꿈꾸는 사람들, 발명가들, 반항아들, 기업가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릿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저자 소개
니콜라스 탐피오(Nicholas Tampio)는 뉴욕 포덤 대학교(Fordham University)의 정치학 교수이다. 그는 Kantian Courage(2012), Deleuze’s Political Vision(2015), Common Core: National Education Standards and the Threat to Democracy (2018)의 저자이다. 2022년 9월, Edward Elgar 출판사는 그의 저서 Teaching Political Theory: A Pluralist Approach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Teaching ‘grit’ is bad for children, and bad for democracy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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