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행복하고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떠올려 보라.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은 세상을 흑백논리로 보는 독단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융통성 없이 엄격한 기준을 강요하는가? 스트레스나 불행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과대해석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가? 다시 말해, 그들은 절대주의적 사고방식(absolutist thinking style)을 가지고 있는가?
‘절대주의’(absolutism)는 중요성이나 가능성 면에서 전체성(totality)을 나타내는 관념, 문구, 단어들과 관련된다. 절대주의적 사고는 미묘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주제의 복잡성을 간과한다.
절대주의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이분법적 사고’(dichotomous thinking)와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s)이 그것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흔히 ‘흑백논리’ 또는 ‘전부 아니면 전무’ 사고라고도 하며, 삶의 모든 것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고 그 사이에 있는 것은 없다고 보는 이분적인 관점을 말한다. 정언 명령은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에게 부과하는 완전히 엄격한 요구사항을 말한다. 이 용어는 의무와 규칙에 기반한 윤리 규범에 기초한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의무론적(deontological) 도덕 철학에서 빌려온 것이다.
우리의 연구에서, 그리고 임상 심리학 전반에서 절대주의적 사고는 감정 조절을 방해하고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고방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주된 이유는 이것이 실제 삶이 지닌 복잡성을 다루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1984년 미국의 심리학자 수잔 피스케(Susan Fiske)와 셸리 테일러(Shelley Taylor)가 처음 소개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용어는 인간이 가장 단순하고 노력이 적게 드는 사고방식을 추구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고 복잡성을 고려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즉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능한 한 손쉬운 방법을 택하려 한다. 이것이 우리가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습관을 형성하는 이유이다. 이것은 행동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휴리스틱(heuristics)(직관적인 ‘직감에 의한’(gut-feeling) 판단)에 대한 연구가 매우 유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 절대주의적 사고를 통해 절약한 시간과 에너지에는 대가가 따른다. 삶을 성공적으로 헤쳐나가기 위해 우리는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복잡성을 이해하며, 유연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목표, 관계, 자존감 같은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서 절대주의적 사고에 빠질 때, 그 결과는 재앙적이다.
최근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논문에서, 나와 영국 레딩 대학(the University of Reading)의 신경과학자인 톰 존스턴(Tom Johnstone)은 다양한 정신 건강 관련 온라인 대화방에 참여한 6,400명 이상의 회원들이 사용한 언어에서 절대주의적 사고의 출현 빈도를 조사했다. 처음부터 우리는 우울증과 불안을 겪고 자살 사고(suicidal ideation)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더 절대주의적인 관점을 가질 것이며, 이것이 그들의 언어 스타일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암에서 육아에 이르기까지 19개의 서로 다른 주제의 온라인 대화방 대조군들과 비교했을 때, 절대주의적 단어의 출현 빈도는 우울증 및 불안 그룹에서 약 50% 더 높았고, 자살 사고 그룹에서는 약 80% 더 높았다.
이전까지 정신 건강 장애의 가장 잘 알려진 언어적 표지(linguistic markers)는 ‘나를’, ‘내 자신’, ‘내가’와 같은 1인칭 단수 대명사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2인칭 및 3인칭 대명사는 적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명사 사용 패턴은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고립과 자기중심적 성향을 반영한다. 부정적 감정 단어들 역시 정신 건강 장애의 강력한 언어적 표지이지만, 연구자들은 대명사가 실제로 우울증을 판별하는 데 더 신뢰할 만하다고 보고해왔다. 우리는 절대주의적 단어의 출현 빈도가 대명사나 부정적 감정 단어보다 더 나은 표지라는 것을 발견했다. 절대주의적 단어는 대명사와 비교해 정신 건강 그룹과 대조군 사이에서 더 큰 차이를 보였고, 부정적 감정 단어보다 정신 건강 그룹을 더 잘 판별했다. 역설적이게도, 부정적 감정 단어들은 자살 사고 그룹에서보다 불안 및 우울증 그룹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다.
절대주의적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실제로 절대주의적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며, 단순히 극단적인 감정과 심리적 고통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두 번째 연구에서, 우리는 절대주의적 사고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정신 건강 상태(경계성 성격장애와 섭식장애)와 절대주의적 사고와 연관되지 않은 정신 건강 상태(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조현병)를 비교하여 각 그룹에서의 절대주의적 단어 사용 빈도를 계산했다. 모든 집단이 동일한 수준의 심리적 고통을 보였지만, 절대주의적 사고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그룹들에서만 높은 수준의 절대주의적 단어 사용을 보였다. 이는 절대주의적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절대주의적 사고와 관련된 특징적인 현상이며, 단순히 심리적 고통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준다.
이러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도 아직 절대주의가 우울증을 일으킨다고 할 수는 없다. 세 번째 연구에서, 우리는 우울 증세에서 회복되었다고 믿고 자신들의 회복에 대해 긍정적이고 격려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그룹을 조사했다. 우리는 이들의 긍정적 감정 단어 사용이 약 70% 증가했음을 발견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높은 빈도로 절대주의적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대조군 그룹들보다 유의미하게 높고 불안 및 우울증 수준에 더 가까웠다. 중요한 점은, 이전에 우울증 증상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울증 증상이 없더라도 그들의 절대주의적 사고 경향이 더 크다는 것은 이것이 우울 증세를 유발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신호다.
이러한 발견들은 임상심리학에 최근 도입된 ‘제3의 물결’ 치료법들을 뒷받침한다. 이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마음챙김’(mindfulness)이지만, 이들 모두 유연한 관점, 수용,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 마음챙김의 초기 주창자 중 한 명은 저명한 심리학자 존 티스데일(John Teasdale)로, 그의 연구실은 이 접근법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실증적 데이터를 제시해왔다. 2001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동료들과 수행한 획기적인 연구에서, 티슬데일과 그의 동료들은 ‘절대주의적,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미래의 우울증 재발을 예측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가혹한 곳이며,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삶의 스트레스와 불행이라고 주장한다. 틀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겪고도 우울증이나 불안을 경험하지 않는 반면, 다른 이들은 겉보기에 아무런 불행도 겪지 않았는데도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린다. 스토아 철학자(이자 전 노예)였던 에픽테토스(Epictetus)는 “사람들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그들의 관점에 의해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이는 전적으로, 완전히,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다.
저자 소개
모하메드 알-모사이위(Mohammed Al-Mosaiwi)는 영국 레딩 대학교(University of Reading)의 심리학과 대학원생이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The danger of absolute thinking is absolutely clear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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