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기억을 인정해 주는 것이 치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이유 – Lisa Bortolotti

치매 환자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경우 치료적 개입은 환자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자기규정적(self-defining) 기억과 믿음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상 치료(reminiscence therapy)에서는 사진이나 의미 있는 물건 같은 단서를 활용해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을 이야기하도록 한다. 인정 치료(validation therapy)에서는 환자가 기억 손상으로 인해 현실 감각을 잃었을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환자 자신이 느끼는 현실을 탐색하고 돌봄 제공자와 신뢰를 형성하며 불안을 감소시킴으로써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생애 이야기 작업(life story work)은 치매 환자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과 측면들을 담은 이야기를 구성하도록 도와 친구 및 가족과의 연결을 증진한다. 올리버 제임스(Oliver James)는 ‘만족스러운 치매’(contented dementia)라는 논란이 많은 접근법을 동명의 저서에서 제시하였는데, 이 접근법에서는 돌봄 제공자가 망상적일 수 있는 치매 환자의 세계에 함께 들어가서 환자의 이야기에 반박하지 않고 대본을 따라가듯 ‘맞장구치며’ 함께하도록 권장한다.

이러한 다양한 접근법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치매 환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핵심 믿음(흔히 정체성 또는 자기감(sense of self)이라 불리는 것)이 기억 상실로 인해 위협받으며, 이를 보존해야만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10세에서 30세)에 경험한 사건들에 대해 더 많이 기억하고 더 상세히 회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관찰했는데, 이를 소위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가 그러한 사건들을 자기규정적이며 우리 정체성의 중심이 되는 사건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관성 편향(consistency bias) 때문에 자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마나 변하는지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변화를 고려하여 자기 이미지를 업데이트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치매 환자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치매 환자는 종종 자신을 병에 걸리기 전의 활동적이고 바쁘고 독립적이었던 모습으로 인식한다. 이들은 젊은 시절의 성취와 열정을 기억하도록 격려받음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마리안 탤벗(Marianne Talbot)은 자신의 책 Keeping Mum (2011)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기 전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다고 쓴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이야기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14살 때 학교에 지각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막 쌍둥이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이를 믿지 않고 벌을 주었고, 어머니는 이것을 매우 부당하다고 느꼈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이 쌍둥이 출산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 (예를 들어 학교 지각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과 섞이게 되었고, 여러 번 반복되었다.

스웨덴 린셰핑 대학(Linköping University)의 라르스 크리스터 휘덴(Lars Christer Hyden)과 린다 외륄브(Linda Örulv)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서사와 정체성에 관한 연구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두 여성이 들려준 이야기를 연구했는데, 그중 한 명이 마사(Martha)였다.

마사는 운전을 배우고 차를 구입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남편과 가족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 것이었고, 당시 많은 여성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그녀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녀 이야기의 몇몇 부분이 같은 대화 중에도 자주 반복되었고, 여러 모순된 내용을 포함했다.

마리안의 어머니와 마사가 왜곡된 기억을 갖고 그것을 반복해서 말한 것에는 문제가 있다. 모순된 내용은 그들의 믿음 중 일부가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반복은 그들이 같은 사람들에게 이전에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삶에서 중심적이라고 여기는 이야기들을 반복하는 것은 중요하다. 설령 그 이야기에 부정확한 내용이 있고 듣는 사람들이 흥미를 잃더라도 말이다. 왜 그럴까?

자신의 자전적 정보에 더 이상 접근할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점차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과거에 대한 믿음이 적어지고 그 믿음의 내용도 점점 모호해진다. 이는 우리의 행복(wellbeing)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질문에 답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되고, 병이 시작되기 전의 삶에 관한 정보를 통합하는 것이 특히 어려워진다.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우리 삶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고 자기 개념(self-conceptions)의 토대가 되는 이야기(부당하게 처벌받은 십대, 저항하는 여성)를 말하는 능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우리는 더 큰 행복감(sense of wellbeing)이라는 심리적 혜택을 얻는다. 고립의 위험이 큰 시기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고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혜택은 쉽게 인식적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관련된 지식을 얻고, 유지하고, 사용하는 능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이 모든 사회적 교류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계속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그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신에 대한 개념이 강화된다.

마리안의 어머니의 경우, 그것은 자신이 부당하게 처벌받은 정직한 소녀였다는 인식이었다. 마사의 경우, 자신이 자기 생각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었다. 왜곡된 기억을 반복적으로 말함으로써 자기규정적 믿음이 유지된 것이다.

물론 정확한 기억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긍정적 역할도 하면서 부정확성과 모순의 문제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이 왜곡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라는 임상적 맥락에서는 정확한 기억을 얻기 어렵다. 기억 보고에 대한 제약이 적고 자기 교정의 기회도 적기 때문이다. 기억이 부정확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더 정확한 기억이라는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오히려 환자가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치매 환자의 왜곡된 기억 보고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치매 환자가 실제 세계에서 불행하게 살기보다 망상적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격려함으로써 진정성 대신 평온함을 택하는 것은 환자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왜곡된 기억이 자기규정적 믿음을 보존하는 데 긍정적인 인식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신중히 검토하고, 치매 환자의 개인적 이야기와 환자 자신이 지닌 취약성을 인정한다면, 이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산 비일관적인 이야기를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하지 않았다면, 마사는 자신이 의지가 강한 여성이었다는 것을 완전히 잊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는 거짓 믿음이 엄청나게 유용하다는 것, 그리고 반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중요한 지식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저자 소개

리사 보르톨로티(Lisa Bortolotti)는 버밍엄 대학교(the University of Birmingham) 철학과 교수이다. 그녀는 거짓되고 비합리적인 믿음들의 심리적·인식적 이점에 관한 유럽연구위원회(ERC) 지원 프로젝트 (PERFECT)를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 Delusions and Other Irrational Beliefs (2009), Irrationality (2014)가 있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How validating their distorted memories helps people with dementia를 번역한 것입니다.
Aeon의 번역 및 배포 기준을 준수하여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Related Posts

Begin typing your search term above and press enter to search. Press ESC to cancel.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