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실재론, 또는 도덕 실재론 – Thomas Metcalf

‘행복은 좋은 것이다.’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

‘관대함은 좋은 품성이다.’[1]

윤리적 실재론자(ethical realists)들은 이러한 윤리적 주장들이 객관적으로 참이라고 말한다. 즉, 이러한 주장이 참인 것은 어떤 개인의 의견, 신념, 선호, 개인적 특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재론자들은 윤리에도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

실재론자들은 상대주의(relativism)를 거부한다. 상대주의란 객관적이지 않은 윤리적 사실들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역주1] 그들은 또한 허무주의(nihilism)를 거부한다. 허무주의는 윤리적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오류 이론(error theory)’이라 불리기도 한다.[2] 나아가, 실재론자들은 [참이나 거짓을 가릴 수 있는] 윤리적 주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이른바 ‘비인지주의(non-cognitivism)’도 거부한다.[3][역주2]

이 글에서는 윤리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여러 논거들을 검토한 뒤, 이 입장에 대해 제기되어 온 몇 가지 잘 알려진 비판들에 답한다.


1. 윤리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논거

윤리적 실재론은 철학사의 대부분에 걸쳐 대체로 당연시되어 왔다.[4]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실재론이 참이라는 데 동의한다.[5] 실재론을 지지하는 세 가지 유형의 논증을 살펴보자.

A. 상식 또는 직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은 나쁜 것으로 보인다. 이 주장은 명백하고, 그럴듯하며, 상식적이고, 자명하다.[6] 누구나 적어도 암묵적으로는, 무언가가 어떻게 보인다는 것을 [그것이 실제로 그렇다는] 증거로 간주한다고 할 수 있다.[7][역주3] 마찬가지로, 도둑질은 잘못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설령 당신이 도둑질을 좋아하더라도, 그리고 누군가를 속여 도둑질이 잘못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윤리적 진리들이 객관적이라는 직관적 증거는 충분하다. 그것들이 참이라는 것은 어떤 개인의 상황이나 선호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B. 윤리적 규범성과 인식적 규범성

도덕적 사실이 어떤 면에서 의심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유사한 이유로 증거에 관한 사실도 의심스럽지 않은지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도덕적 주장과 인식론적 주장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도덕적 주장은 도덕의 관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인식론적 주장은 지식과 증거의 관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8] 이 둘은 모두 규범적(normative)인 것처럼 보인다. 즉, 어떤 행동이나 믿음이 옳다고, 다른 것보다 낫다고, 또는 무언가에 대한 좋은 증거가 있다고 말해 준다. 따라서 규범성 일반을 겨냥하는 논증들은 자기 자신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한 논증은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객관적으로 합리적이거나, 정당화되거나,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생각에도 동일하게, 혹은 더 잘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9] 그러므로 규범성을 거부한다면, 자신의 입장이 정당화된다는 생각까지도 거부하는 셈이 된다.

C. 필수불가결성(Indispensability)

우리의 담론 중 상당 부분은 진정으로 규범적인 속성들과 사실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수학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수학은 사람들의 마음과 어떤 직접적인 인과적 접촉도 명확히 가지지 않는 추상적 대상들에 관한 담론일지도 모른다. 수학자들은 계속해서 진전을 이루고, 여러 구체적인 프로젝트들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들을 고안해 낸다. 어쩌면 수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대상인 수(數)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 모든 이야기가 어쩌다 우연히 성과를 거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수학이 이토록 성공적인 이유는 그것이 수에 관해 참인 진술들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담론 중 상당 부분은 윤리적 진리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사실에 대한 최선의 설명은 이러한 진리들 중 일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일 수 있다.[10]


2. 실재론 방어하기

윤리적 실재론은 많은 반론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는 그중 세 가지만을 살펴볼 여유가 있다.[11] 이 논의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무어식(Moorean)[12] 실재론자들이 제시해 온 일반적 응답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응답은 이런 것이다. 윤리적 실재론에 반대하는 논증이 있다고 하자. 그 논증이 (예를 들어) ‘설령 당신이 원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을 우리가 거부하도록 정당화하려면, 그 논증의 전제 하나하나가 ‘설령 당신이 원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보다 더 큰 총체적 증거(overall-evidence)를 가져야 한다.[역주4] 이하의 세 반실재론 논증들 각각에 대해 이 무어-뱀브로-휴머식 응답(Moore-Bambrough-Huemer-style response)[13]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다른 반론들도 함께 언급하겠다.

A. 기이함

‘윤리적 속성은 기이할 것이다.’[14]

반론: 기이함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으며, (다른 기이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고려할 때)[15] 기이함이 왜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더구나 왜 윤리적 속성이 기이하다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좋음(goodness)과 나쁨(badness)은 평범하고 친숙한 것 같다.

B. 의견 불일치

‘윤리에 관해서는 너무 많은 의견 불일치가 있으므로 윤리에 관한 사실은 있을 수 없다.’[16]

반론: 외견상 윤리적 불일치처럼 보이는 것들 가운데 상당수는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 불일치[역주5]가 위장된 것에 불과하다.[17]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개 그것에 관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인지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생각해 보라.[18] 또한 이러한 논증은 지나치게 일반화될 위험이 있다.[19]

C. 진화론적 폭로(Evolutionary Debunking)

‘우리의 윤리적 직관은 진화의 산물이며, 따라서 선험적으로(a priori), 그것이 참인 믿음을 산출할 가능성은 낮다.’[20]

반론: 만약 상식적 도덕이 참이라면, 신뢰할 만한 도덕적 인식 능력이 적응적(adaptive)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폭로론자는 적어도 정확한 도덕적 믿음이 비적응적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21] 게다가, 만약 도덕적 진리가 이성을 통해 알려지는 것이라면,[22] 그것이 적응적이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이러한 진리를 배울 능력을 갖게 될 것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미적분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우리 조상의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논증도 다른 논증들과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많은 것을 증명해 버릴 수도 있다.[23][역주6]

D. 인식적 정당화에 대한 보충

앞서 언급했듯이, 위의 세 가지 비판은 모두 인식적 정당화 일반을 겨냥하는 논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24] 그 귀결은 비판자가 자신의 입장이 그 반대 입장보다 더 정당화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어식 실재론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각각의 반실재론 논증에 대해, [그 논증보다] ‘설령 당신이 원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를 긍정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허무주의보다 윤리적 실재론에 더 큰 신뢰를 두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할 수 있다.


3. 결론: 자연주의와 비자연주의

과거와 현대의 대부분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윤리적 실재론이 참이라는 데 동의하더라도, 우리는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질문에 직면한다. 이 진리들은 쾌락이나 생존에 관한 사실들과 같은 자연적, 물리적, 또는 단순히 기술적인(merely-descriptive) 사실인가?[역주7] 자연주의자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아니면 이 진리들은 환원 불가능하게, 본질적으로 규범적인 것인가? 비자연주의자, 또는 강건한 실재론자들(robust realists)은 이 입장을 취한다.

이것은 복잡한 주제이며, 현재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영역이다.[25] 여기서는 다음 한 가지만 주목하자. 대부분의 자연주의자들은 윤리적 사실들이 개념 분석을 통해 기술적 사실들(descriptive facts)로 정의될 수는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사실들이 기술적 사실들과 동일하다고 덧붙인다. 아마 물이 H₂O인 것과 비슷할 것이다. 사람들은 한때 물을 H₂O로 정의하지 않고도 물에 대해 알고 있었듯이 말이다.[역주8][26] 이 형태의 자연주의(존재론적ontological 자연주의 또는 종합적synthetic 자연주의)가 오늘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형태이다.[27]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연주의자든 비자연주의자든 이들은 모두 실재론자들이다. 이들은 윤리에 정답이 있다고 주장한다.


주석

[1] 아마도 이 주장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ceteris paribus)’과 같은 조건이 붙었을 때에야 엄격한 의미에서 참일 것이다.

[2] 더 자세한 내용은 Mackie 1977과 Olson 2014를 보라. 또한 Ian Tully의 Moral Error Theory도 참고하라.

[3] 더 자세한 내용은 Ayer 1952: 102쪽 이하 및 Gibbard 1990을 보라.

[4] 20세기 이전에는 실재론 이외의 입장을 진지하게 옹호하는 철학자를 찾기 어렵다. 이 논쟁 자체는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Plato 1888[–370]: 제1권). 흄(Hume 2000[1738]: 301)이 예외가 될 수 있으나, 그의 메타윤리학적 입장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으며, 그는 도덕적 사실의 존재에 관해서보다는 도덕적 믿음의 인식론과 심리학에 대해 훨씬 더 많이 고찰한 것으로 보인다. Cohon 2015를 참고하라.

[5] 대부분의 메타윤리학자들이 실재론을 “받아들이거나 그쪽으로 기운다.” Bourget and Chalmers 2014를 보라.

[6] 로버트 아우디(Audi, 2004)와 마이클 휴머(Huemer, 2005)가 윤리적 직관주의(ethical intuitionism)를 옹호한다. 이와 유사하게, 랜포드 뱀브로(Bambrough, 1969)는 상식에, 러스 셰이퍼-랜도(Shafer-Landau, 2003)는 자명성(self-evidence)에 호소한다.

[7] Huemer 2001: 5장을 보라.

[8] 예를 들어 Cuneo 2007을 보라.

[9] 도구적 주장(instrumental)과 도덕적 주장 사이에도 중요하고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윤리적 실재론을 위한 또 다른 논거를 제공한다. 이에 대해서는 Huemer 2013을 보라.

[10] Enoch 2011. Wedgwood 2007도 대체로 유사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Cuneo 2014도 보라. Suikkanen 2013의 논증도 유사한 요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1] 지면 관계상, 상대주의는 다루지 않는다(상대주의에 대한 소개로는 네이선 노비스의 Cultural Relativism: Do Cultural Norms Make Actions Right and Wrong?을 보라). 그러나 여기서 다루는 응답 중 일부는 상대주의에 대해서도 잘 작동한다. 이러한 진술들 중 일부를 상대주의에 대한 부정을 포함하도록 재구성하기만 하면 된다. 또한,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한 가지 유형의 논증으로, 윤리적 속성이나 사실이 우리의 존재론에 너무 많은 것을 추가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어, Ruse 1986: 3장, Olson 2014: 147쪽 이하를 보라. 이러한 논증들은 흔히 진화론적 폭로(evolutionary-debunking) 이야기와 함께 제시된다. 아래를 보라. 물론 이에 대한 응답으로, 여기서 우리가 왜 검약성(parsimony)을 중시해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Huemer 2009, Sober 2009를 참고하라.

[12] Moore(1939: 166)를 보라. (역주: 출처 페이지 확인 필요.)

[13] Bambrough 1969와 Huemer 2005: 115를 보라. 이 전략에 대한 반박으로는 Olson 2014: 7장을 보라. 이에 대해 실재론자는, Olson이 무어식 논증의 힘을 오해했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가 압도적으로 상식적인 주장을 거부하기 위해 매우 논쟁적인 폭로 가설(debunking-hypotheses)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14] 윤리적 속성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이할 수 있다. 형이상학적으로(Mackie 1977: 38-40), 인식론적으로(Mackie 1977: 38-41), 또는 동기 부여의 측면에서(Mackie 1977: 40; Joyce 2001: 37-42; Olson 2014: 6장).

[15] 예를 들어 양자역학적 현상들(Albert 1992), 수(만약 존재한다면), 오리너구리 등.

[16] Mackie 1946.

[17] Rachels 1999: 5절; Huemer 2005: 134-40을 참고하라.

[18] Huemer 2005: 128-31.

[19] Decker and Groll 2013.

[20] Street 2006. 주목할 점은,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것이 실재론 자체(realism per se)가 아니라 비회의적 실재론(non-skeptical realism)(역주: 도덕적 사실이 존재할 뿐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스트리트의 논증은 윤리적 사실들의 존재 일반이 아니라 우리의 윤리적 지식에 도전하는 것을 핵심적인 목표로 한다. Joyce 2006도 보라.

[21] Enoch 2011: 167 이하.

[22] Huemer 2005: 215.

[23] Vavova 2014.

[24] 다시 한 번, Cuneo 2007.

[25] 이 주제에 대해 더 자세한 논의는 Lenman 2015를 보라. 윤리적 용어들이 내포적·개념적 분석을 통해 순전히 기술적 용어들로 정의될 수는 없다는 논증에 대해서는 Moore 1903: §13을 보라.

[26] 윤리적 사실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사실들과 동일하다는 것을 보이는 방법은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우리는 물이 H₂O라는 것을 발견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즉, 경험적으로)좋음이 쾌락임을 발견했을 수 있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그것이 H₂O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좋음을 어떻게 ‘전기분해’하여 그것이 쾌락임을 ‘볼’ 수 있겠는가? 이러한 유형의 논증에 대해서는 Huemer 2005: 84쪽 이하를 보라.

[27] 이 형태의 일부 버전은 ‘코넬 실재론(Cornell realism)’이라 불린다. 예를 들어 Brink 1989와 Lenman 2015: §4.2를 보라.


[역주1] 여기서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은 윤리적 사실이 문화나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거짓말은 나쁘다.’가 어떤 문화에서는 사실이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상대주의이다.

[역주2] 비인지주의에 따르면, ‘살인은 나쁘다.’와 같은 도덕적 발화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태도의 표현에 가깝다. 따라서 오류 이론이 윤리적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고 보는 반면, 비인지주의는 윤리적 문장이 애초에 참·거짓을 가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고 본다.

[역주3] ‘무언가가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을 증거로 간주한다.’는 원리는 철학에서 ‘현상적 보수주의(phenomenal conservatism)’라 불린다. 예컨대, 눈앞의 물체가 빨갛게 보이면 그것이 실제로 빨갛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원리를 윤리에도 적용한다. 고통이 나쁘게 ‘보인다면’, 그것은 고통이 실제로 나쁘다는 증거가 된다.

[역주4] ‘총체적 증거’란, 해당 명제를 뒷받침하는 모든 증거를 합산한 것을 말한다. 무어식 전략의 요점은, ‘모든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총체적 증거가 매우 강력하므로, 이를 뒤집으려는 논증의 전제 하나하나는 이보다 더 강한 증거적 지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역주5] ‘기술적 불일치’란 도덕적 사실이 아닌 비도덕적, 혹은 자연적 사실에 관한 의견 불일치를 말한다.

[역주6] “과도하게 많은 것을 증명”(prove too much)한다는 것은, 어떤 논증이 의도한 것 이상을 증명하여, 논증을 제시하는 사람조차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결론까지 도출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진화의 산물인 믿음은 신뢰할 수 없다.’가 참이라면, 윤리적 믿음뿐 아니라 수학적·논리적 믿음도 진화의 산물이므로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역주7] 기술적 사실이란 세계의 상태에 관한 사실로, 가치나 당위를 담은 규범적 사실과 대비된다. 예컨대 ‘이 행위는 고통을 유발한다.’는 기술적 사실이고, ‘이 행위는 나쁘다.’는 규범적 사실이다.

[역주8] 개념 분석을 통한 정의란, 가령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처럼 어떤 용어의 의미 내용을 분석하여 다른 용어로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자연주의자들은 윤리적 사실이 이런 방식으로는 기술적 사실로 정의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두 사실이 다르다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예컨대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는 나쁜 행위이지만, ‘나쁘다’의 의미 안에 이미 ‘고통을 유발한다.’가 들어 있지는 않다. 이들의 주장은 물의 개념 분석만으로는 물이 H₂O임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물은 H₂O인 것처럼, 윤리적 용어가 기술적 용어로 분석되지는 않지만 윤리적 사실은 기술적 사실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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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gwood, Ralph. 2007. The Nature of Normativi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관련 에세이

Cultural Relativism: Do Cultural Norms Make Actions Right and Wrong? by Nathan Nobis

“That’s Subjective”: Subjectivism about Truth, Beauty, and Goodness by Nathan Nobis

Moral Error Theory by Ian Tully

Because God Says So: On Divine Command Theory by Spencer Case

Ethics and God: the Divine Command Theory and the Euthyphro Dilemma by Nathan Nobis

Seemings: Justifying Beliefs Based on How Things Seem by Kaj André Zeller

Evolution and Ethics by Michael Klenk

Philosophy and its Contrast with Science by Thomas Metcalf (번역본: 철학과 과학의 차이점: 철학적 이해와 과학적 이해를 비교하기)

Moral Education: Teaching Students to Become Better People by Dominik Balg

Reason is the Slave to the Passions: Hume on Reason vs. Desire by Daniel Weltman

W.D. Ross’s Ethics of “Prima Facie” Duties by Matthew Pianalto

저자 소개

톰 멧칼프(Tom Metcalf)는 앨라배마주 모바일에 있는 스프링힐 대학(Spring Hill College)의 부교수이다.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the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전문 분야는 윤리학, 메타윤리학, 인식론, 종교 철학이다. 헤스페러스(Hesperus)와 포스포러스(Phosphorus)라는 이름의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http://shc.academia.edu/ThomasMetcalf


이 글은 Tom Metcalf의 Ethical Realism, or Moral Realism을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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