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은 에인 랜드(Ayn Rand)를 미워하기를 좋아한다. 그녀에 대한 언급만 나와도 비웃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다. 한 철학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그런 괴물을 굳이 접할 필요는 없다.” 많은 이들이 그녀는 애초에 철학자도 아니며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러시아 태생으로 1926년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 랜드는 자신이 ‘객관주의(Objectivism)’라 이름 붙인 이기주의 철학을 설파했다. 그녀는 소설 『아틀라스』(Atlas Shrugged, 1957)에서 자신의 철학을 두고 “인간을 영웅적 존재로 보는 관점, 곧 자신의 행복을 삶의 도덕적 목적으로, 생산적 성취를 가장 고귀한 활동으로, 이성을 유일한 절대 기준으로 삼는 인간관”이라고 썼다. 행복과 근면, 영웅적 개인주의라는 이상에, 그녀의 소설 『파운틴헤드』(The Fountainhead, 1943)를 원작으로 게리 쿠퍼와 퍼트리샤 닐이 주연한 1949년 영화까지 더해졌으니, 그녀가 미국인들의 관심과 상상력을 사로잡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랜드가 1982년에 세상을 떠나고 3년 뒤에 세워진 캘리포니아의 에인 랜드 연구소(the Ayn Rand Institute)는 그녀의 책이 3000만 부 넘게 팔렸다고 밝히고 있다. 이 연구소는 2018년 초까지 북미 지역 학교에 랜드의 소설 400만 부를 무상으로 배포할 계획을 세웠다. 또한 대학에도 적극적으로 기부해 왔는데, 그 지원금에는 흔히 “에인 랜드의 철학인 객관주의에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것에 정통한” 교수가 가르치는 강의를 개설하라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이 강의에서는 물론 『아틀라스』가 필수 읽기 자료로 지정되어야 했다.
랜드의 책은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아마존 작가 순위에서 그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J. D. 샐린저와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이 순위는 계속 바뀌고 모든 판매량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녀의 이름이 어떤 작가들과 함께 거론되는지만으로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랜드의 사상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녀의 생각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많은 이들에게 풍자처럼 보일 정도다. 예를 들어, 랜드는 피해자를 탓한다. 누군가에게 돈이나 권력이 없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이라는 식이다. 『파운틴헤드』의 “영웅” 하워드 로크는 여주인공 도미니크 프랭컨을 강간한다. 랜드에 따르면, 벽난로 수리를 두고 몇 차례 어색한 대화를 나눈 것은 프랭컨이 로크에게 자신을 강간하라며 “격식 있는 초대장”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 일은 명백히 동의 없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프랭컨은 진심으로 저항하고 로크는 명백히 그녀를 강제로 범한다. 그런데도 랜드는 강간범이 아니라 강간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암시한다. 힘은 곧 정의이다. 로크가 소설 앞부분에서 말하듯, 중요한 것은 누가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허락할’ 것인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막을’ 것인가이다.” 이기심을 옹호하고 불운한 이들에게 냉담한 랜드의 태도는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메아리친다. 그녀의 철학이 일부 정치인으로 하여금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처지를 그들 자신의 탓으로 돌리도록 부추겼다고 말해도 지나친 주장은 아닐 것이다.
랜드는 자립을 옹호하고, 이타주의를 공격하며, 공무원을 악마화하고, 정부 규제를 비난한다. 정부 규제가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많은 법과 정부 규제가 오히려 자유와 번영을 증진한다는 사실을 간단히 무시한다. 『아틀라스』에서 비밀스러운 사이비 교주 같은 인물이자 객관주의의 대변자인 존 골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기들만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 자급자족의 터전을 세우기 위해 도망친다. 그러나 환경 보호국 같은 기관의 규제가 전혀 없는 세계의 현실이 어떨지 상상해 보라. 이웃들은 마음껏 골트의 유토피아에 매연을 뿜어내고,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 주민들을 중독시키는 유독성 살충제를 뿌려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골트는 타인에 대한 어떤 의무도 거부하고, 타인에게서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내가 동료 인간에게 어떤 도덕적 의무를 지느냐고? 아무것도 없다.” 골트는 부자이므로 이웃 몇 명 정도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골트와 같은 인물들이 대변하는 랜드의 철학은 우리가 무한한 자원과, 남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될 수 있는 재산이 보장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녀는 우리가 지구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곧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바다에서 헤엄치며 공통의 수원에서 나온 물을 마신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윌리엄 어윈(William Irwin)이 『자유시장 실존주의자』(The Free Market Existentialist, 2015)에서 보여 주듯이, 일부 자유지상주의 철학자들은 사람들과 그들의 재산을 해악, 폭력, 사기, 절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국가 통제를 도입하는, 랜드 이념의 변형판을 제안해 왔다(다만 어윈이 환경보호국 같은 기관을 콕 집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랜드는 자신의 에세이집 『이기심의 미덕』(The Virtue of Selfishness, 1964)에서 “자유와 정부 통제 사이에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라고 썼으며, 어떤 형태로든 정부의 통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스스로를 점진적인 노예화에 내맡기는 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랜드는 항상 자신의 철학대로 살지는 않았다. 그녀가 만년에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공공 의료보장 제도) 혜택을 받은 것은 위선의 눈부신 사례라고 할 만하다. 또 다른 에세이 〈장학금 문제〉(‘The Question of Scholarships’, 1966)에서 랜드는, 이미 냈거나 앞으로 낼 것으로 예상되는 세금에 대한 부분적 보상이라는 명분으로 정부 혜택을 받는 일을 정당화하려 했다. 단, 이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받는 사람이 그러한 제도에 반대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자신이 낸 세금에서 정당하게 돌려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이 얼마인지 계산하기란 복잡할 것이다. 짐작건대 그녀 역시 도로와 수돗물, 경찰의 보호를 비롯해 정부가 제공하는 무수한 것을 함께 이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처신은 자유와 정부 사이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는 그녀 자신의 주장과도 모순된다. 게다가 자신에게서 뜯어 간 것을 도로 뜯어낼 뿐이라는 구실로, 정작 자신이 불평하던 바로 그 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혜택을 보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일 수는 있지만, 그녀의 주장과는 달리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세부 내용을 읽어 보지도 않고 랜드를 헐뜯거나, 반박하려는 수고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악마화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접근이다. 그녀의 저작을 금기시하는 것 또한 사람들이 그녀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랜드의 주인공들이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와 닮았다는 이유에서 때때로 피상적으로 랜드와 한데 묶이곤 하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1881년에 이렇게 경고했다. “순진한 이들은 언제나 희생자가 될 것이다. 무지한 탓에 적정함과 지나침을 분간하지 못하고, 제때 스스로를 다잡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랜드가 위험한 까닭은 바로 그녀가 순진하고 무지한 이들을 끌어당기는 방식에 있다. 그녀는 철학적 논증이라는 겉치레를 수사적 망토로 삼아, 그 아래로 자신의 자못 잔인한 편견을 몰래 들여온다. 그녀의 글은 취약하고 무비판적인 이들에게 설득력이 있으며, 지나치게 길게 늘어지는 일장 연설들을 빼면 이야기 솜씨도 좋다.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소설들임을 기억하라. 아마존의 수천 명에 이르는 리뷰어 가운데 거의 3분의 2가 『아틀라스』에 별점 5점을 주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읽기 위해 그 책을 구입했다가, 그 안에 말끔히 포장되어 있는 그럴듯한 철학을 발견하고는 거의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빨아들이는 듯하다. 사람들이 그녀의 등장인물의 어떤 점에 감탄하는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랜드의 영웅들은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지만, 자신이 택한 일에는 탁월하며 자기 원칙을 끝까지 지킨다. 이는 이야기가 지닌 영향력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인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랜드의 사상이 시간이 지나면 그냥 사라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이 문제의 좋은 해법이 아니다. 『파운틴헤드』는 초판이 나온 지 7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는 랜드가 철학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리 훌륭한 철학자가 아닐 뿐이다. 그녀의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드러내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또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자유론』(On Liberty, 1859)에서 인정했듯이, 대체로 그릇된 입장에도 작으나마 진리의 요소가 담겨 있을 수 있으며, 나아가 그런 입장은 그것의 어디가 틀렸는지 우리가 입증하도록 자극함으로써 사고를 촉발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어렵지 않다. 랜드의 수사는 지금도 수백만 독자를 사로잡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반론을 유려하게 펼칠 설득력 있는 언어와 이야기가 필요하다. 한 작가가 오늘날 랜드를 읽는 수백만 명을 설득해, 그와는 다른 더 다정하고 자비로운 결론에 이르게 하고, 그녀의 문장에 홀리는 대신 제 잇속만 차리는 그녀의 이기주의의 실체를 꿰뚫어 보게 만들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는 에인 랜드 현상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외면한다고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영향은 해롭다. 그러나 그것을 반박하기란 어렵지 않다.
저자 소개
스카이 C. 클리어리(Skye C. Cleary)는 How to Be Authentic: Simone de Beauvoir and the Quest for Fulfillment (2022)와 Existentialism and Romantic Love (2015)의 저자이며, How to Live a Good Life (2020)의 공동 편집자다. 컬럼비아 대학교, 바너드 칼리지,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Philosophy shrugged: ignoring Ayn Rand won’t make her go away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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