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E. 무어의 외부 세계 증명: 외부 세계 회의주의에 대한 대응 – Chris Ranalli

외부 세계 회의주의는 우리가 외부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견해이다. 즉, 우리는 자신에게 손이 있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 수 없으며, 보다 일반적으로 우리 마음 밖에 무엇이든 존재한다는 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가진] 회의주의자들은 흔히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회의적 가설(가령 모든 것이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가설)을 논박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논박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손이 있다는 것이나 그 밖의 많은 것을 알 수 없다.[1]

영국 철학자 G. E. 무어(G. E. Moore)는 ‘무어의 증명’으로 알려진 논증을 통해 외부 세계 회의주의를 논박했다고 주장했다. 이 증명은 유명하면서도 논란이 많다. 무어는 강의 중에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여기 한 손이 있다”, “여기 또 다른 손이 있다”라고 말했고, 바로 이를 근거로 외부 세계가 존재함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2]

철학자들은 대체로 무어의 증명이 회의주의를 논박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기는 어렵다.[3]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려는 몇 가지 중요한 시도들을 살펴본다.


1. 전이 실패(Transmission Failure)

무어의 증명을 평가하기 위해, 먼저 이와 유사해 보일 수 있는 한 가지 ‘증명’에 대해 생각해 보자.

샐리와 수지가 미술 전시회에서 빨갛게 보이는 벽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샐리가 묻는다. “벽이 무슨 색이야?” 수지가 대답한다. “빨간색으로 보여.” 샐리가 되묻는다. “하지만 벽이 사실은 흰색인데 숨겨진 빨간 조명이 비추고 있는 건 아닐까?” 수지가 대답한다. “벽은 빨간색으로 보여. 그러니까 그것은 실제로 빨간색이야. 따라서 흰색 벽에 숨겨진 빨간 조명이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니야.”

수지는 [흰색] 벽을 비추는 숨겨진 빨간 조명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는가?

직관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왜 그런가?

일부 철학자들은 수지의 응답과 같은 것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른바 ‘전이 실패(transmission failure)’의 사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전이 실패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어떤 사람의 믿음 A가 믿음 B를 함축하지만(즉, B는 A의 논리적 귀결이지만), A에 대한 지지는 B에 대한 지지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A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B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수지가 [흰색 벽을 비추는] 숨겨진 빨간 조명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수지는 벽이 빨간색이라고 믿기 위해 [벽이 빨갛게 보인다는] 자신의 지각에 의존하는데, 이때 그녀는 이미 숨겨진 빨간 조명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역주1]

일부 철학자들은 무어의 “증명” 역시 전이 실패의 사례라고 생각한다.[4] 무어는 자신에게 손이 있다고 믿으며, 이것은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그의 지각이 손이 있다는 믿음을 지지할 수 있으려면,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지지가 이미 있어야 한다. 손은 외부 대상이 아닌가?[5]


2.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러나 일부 철학자들은 무어의 증명이 전이 실패의 사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전제에 대한 지각적 증거를 가지기 위해 결론을 지지하는 증거가 미리 필요하지는 않다. 그 대신, 손에 대한 지각이 ‘손이 있다.’는 전제를 지지하기 위해서는 결론에 반하는 증거가 없기만 하면 된다.[6] 이러한 입장을 지각적 정당화에 관한 자유주의(liberalism about perceptual justification)라고 부른다.

자유주의: 당신의 지각이 외부 세계에 대한 당신의 믿음에 증거를 제공하려면, 당신에게는 회의적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없어야 한다.

반면, 전이 실패를 지지하는 이들은 다음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주의: 당신의 지각이 외부 세계에 대한 당신의 믿음에 증거를 제공하려면, 당신에게는 회의적 가설을 거부할 증거가 이미 있어야 한다.[7]

문제는 보수주의가 회의주의를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8] 지각에 의존하지 않고서 어떻게 회의적 가설에 반하는 증거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 점은 자유주의를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3. 독단론(Dogmatism)

자유주의를 구체화하는 한 가지 방식은 독단론(dogmatism)이다. 독단론에 따르면, 당신에게 무언가(이를 ‘P’라고 하자)가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지각이 있고, P를 의심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면, 당신이 P를 믿는 것은 정당화된다.[9]

예를 들어, 지금 당신의 지각은 당신이 에세이를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제 당신이 에세이를 읽고 있지 않다고 믿을 증거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 (그런 증거가 있는가?) 독단론에 따르면 그러한 증거가 없는 한, 당신이 에세이를 읽고 있다고 믿는 것은 정당화된다.

독단론자들은 이 생각을 무어의 증명에 다음과 같이 적용한다.

당신에게는 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당신에게는 외부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을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당신의 지각은 당신이 손이 있다고 믿는 것을 정당화한다. 따라서 당신이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정당화된다.

그러나 독단론 자체만으로는 무어의 ‘증명’이 왜 불만족스러운지에 대한 우리의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회의주의자이고 당신이 나에게 무어의 증명을 제시한다면, 나는 아마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어쨌든 독단론에 따르면 나는 결론을 믿을 정당화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다음 절에서 탐구할 내용이다.


4. 무어의 증명은 왜 설득력이 없는가?

독단론자들은 무어의 증명이 외부 세계 회의주의자를 설득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나쁜 논증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론을 믿을 정당화를 제공하는 논증(정당화하는 논증)과 결론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논증(설득하는 논증)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정당화되지 않은 전제를 가진 논증이 누군가로 하여금 결론에 대한 의심을 극복하도록 설득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정당화된 전제를 가진 논증이 누군가로 하여금 그가 정당화를 이미 가지고 있는 결론을 믿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10]

회의주의자는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며, 이 의심은 자신의 지각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무어의 증명은 회의주의자가 이러한 의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회의주의자의 지각이 실제로 무어의 증명의 전제(“나는 손이 있다”)를 믿을 정당화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의심 때문에 그 전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어의 증명은 지각이 신뢰할 수 없다는 구체적 증거(가령 악천후나 취한 상태)가 없는 한 자신의 지각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자기 마음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회의적 가설은 단지 논리적 가능성일 뿐이다. 그것이 실제로 그러하다는 구체적 증거는 없다. 그러므로 이 가설이 자신의 지각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5. 결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어의 증명을 처음 접하면 그것이 완전히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 그것이 왜 실패인지, 나아가 정말로 실패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주석

[1] 회의적 가설이란 우리의 믿음이 체계적으로 거짓이면서도 참인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말한다. [이런 시나리오 안에서] 당신에게는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이 보일 것이다.
데카르트는 두 가지 회의적 가설을 논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거나 악령에게 속고 있다면,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믿음들은 거짓이겠지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정상적으로’ 보일 것이다. Marc Bobro의 Descartes’ Meditations 1-3을 보라.
장자는 형이상학적 변주가 가미된 꿈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우리가 자신이 인간이라고 꿈꾸는 나비일 수 있다는 것이다. Watson(편)(2013)의 Zhuangzi(2013: 18)를 보라.

[2] 무어의 증명은 통상 다음과 같이 정식화된다.
전제: 여기 두 손이 있다. 따라서,
결론: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정식화 방식에 대해서는 Wright(2002)를 보라.
무어가 자신의 증명을 제시한 방식은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예를 들어, 인간의 손 두 개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어떻게? 나의 두 손을 들어 오른손으로 동작을 취하면서 ‘여기 한 손이 있다.’라고 말하고, 왼손으로 동작을 취하면서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손이 있다.’라고 덧붙이면 된다. 그리고 만약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바로 그 사실만으로(ipso facto) 외부 사물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라면, 여러분 모두는 내가 지금 다른 여러 방식으로도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례를 더 많이 들 필요는 없다.”(Moore 1993: 166)

[3] Stroud(1984)는 “우리는 곧바로 무어의 증명이 부적합하다고 느낀다.”라고 말했다(1984: 86). Coliva(2008)는 이 증명이 “명백히 짜증나는 실패”라고 말한다(Coliva 2008: 235). Carter(2012)는 무어의 증명에 관한 최근 연구를 개관한 논문(2012)에서 이 증명이 “지적으로 불만족스럽다”고 말한다(Carter 2012: 115).

[4] Wright(2002)는 이 입장을 옹호한다. Wright(2004)는 이를 반회의주의적 전략으로 더 발전시킨다.

[5] 일부 철학자들은 우리가 시뮬레이션 세계 안에 사는 통 속의 뇌라 할지라도 손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손’과 그 밖의 일상적 대상은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유기물인지 0과 1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에 의해 정의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회의적 가설은 우리의 일상적 믿음과 양립 가능하다. Chalmers(2018), Walker(2020), Ranalli and Walker(2025)를 보라.

[6] 자유주의자들은 대체로 신무어주의자(Neo-Moorean)이기도 하다. 신무어주의자들은 무어의 증명이 건전하며(sound), 따라서 실제로 외부 세계가 존재함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어와 달리, 이들은 ‘여기 두 손이 있다.’라는 전제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또는 그것을 믿을 증거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설명하려 한다. 이에 대한 입문적 소개로는 Pritchard(2007)를 보라.

[7] 지각적 증거와 회의적 가설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파악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Pryor(2004)의 3절을 보라.

[8] Pryor(2000)는 이 주장을 옹호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보통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 믿음의 정당화의 한 유형인 이른바 자격부여(entitlement)가 있다고 주장하고, 우리에게 외부 세계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없어도 그것을 믿을 자격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대응한다. Wright(2004)를 보라. Coliva(2015) 같은 일부 철학자들은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 행위자(rational agent)의 구성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관련 개념인 인식적 정당화에 대한 입문적 소개로는 Todd R. Long의 Epistemic Justification: What is Rational Belief?(번역본: 인식적 정당성: 합리적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보라.

[9] 독단론의 옹호로는 Pryor(2000)를 보라. 독단론은 인식론에서 현상적 보수주의(phenomenal conservativism)라 불리는 보다 일반적인 논제의 한 예이다. 현상적 보수주의란, 당신에게 P처럼 보이고, 파기자(defeater)(P가 거짓이라고 생각할 이유, 또는 당신이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을 때, 당신은 그로써 P를 믿을 어느 정도의 정당화를 얻는다는 견해이다. Huemer(2001)와 Tucker(편)(2013)를 보라.

[10] 이것은 무어의 증명처럼 좋은 정당화 구조를 가진 증명이 왜 회의주의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Pryor(2011) 7절의 논의를 단순화한 것이다. 프라이어의 표현에 따르면, 당신이 자신이 회의적 시나리오 속에 있다고 증거 없이 믿는다면, 이 믿음은 당신의 지각이 당신이 손이 있다고 믿도록 제공하는 증거를 약화시키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손이 있다고 믿는 것을 “합리적으로 방해할(rationally obstruct)” 것이다(Pryor 2011: 368).

[역주1] 전이 실패 개념을 수지의 사례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믿음 A: 벽은 빨간색이다.
믿음 B: 흰색 벽을 비추는 숨겨진 빨간 조명은 없다.
A가 참이면 B도 참이다. 벽이 실제로 빨간색이라면, 흰색 벽을 비추는 숨겨진 빨간 조명이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A는 B를 함축한다(즉, B는 A의 논리적 귀결이다.).
한편, 수지의 믿음 A(‘벽은 빨간색이다.’)를 지지하는 근거는 ‘벽이 빨갛게 보인다.’(C)는 것이다. 그런데 벽이 빨갛게 보인다는 것을 근거로 벽이 실제로 빨간색이라는 것을 정당화하려면 조명이 정상이라는 것, 즉 B(‘흰색 벽을 비추는 숨겨진 빨간 조명은 없다.’)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C가 A를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B를 지지하지는 못한다.


참고문헌

Carter, J. Adam (2012). “Recent Work on Moore’s Proof.” International Journal for the Study of Skepticism 2 (2):115-144.

Chalmers, David J. (2018). “Structuralism as a Response to Skepticism.” Journal of Philosophy 115 (12):625-660.

Coliva, Annalisa (2008). “The Paradox of Moore’s Proof of an External World.” Philosophical Quarterly 58 (231):234–243.

Coliva, Annalisa (2015). Extended Rationality: A Hinge Epistemology. Palgrave-Macmillan.

Cottingham, John (ed.) (1996). Descartes: 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 With Selections From the Objections and Repli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Originally published in Latin in 1647)
번역본 1: 이현복 역, 『제일철학에 대한 성찰』, 문예출판사, 2021. (권장)
번역본 2: 최명관 역, 『데카르트 연구 – 방법서설ㆍ성찰』, 창, 2010.
번역본 3: 양진호 역, 『성찰』, 책세상, 2020.

Huemer, Michael (2001). Skepticism and the Veil of Perception. Lanham: Rowman & Littlefield.

Moore, G.E. (1993) “Proof of an External World.” In G. E. Moore: Selected Writings, 147–170. New York: Routledge.

Pritchard, Duncan (2007). “How to be a Neo-Moorean.” In Sanford C. Goldberg (ed.), Internalism and Externalism in Semantics and Epistem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pp. 68-99.

Pryor, James (2000). “The Skeptic and the Dogmatist”. Noûs 34 (4):517–549.

Pryor, James (2004). “What’s wrong with Moore’s argument?”. Philosophical Issues 14 (1):349–378.

Ranalli, Chris, and Walker, Mark (2025). “Metaphysical ecumenicalism and Moore’s Poof.” Episteme.  

Stroud, Barry (1984). The Significance of Philosophical Scepticism. Oxford University Press.

Tucker, Chris (ed.) (2013). Seemings and Justification: New Essays on Dogmatism and Phenomenal Conservatism. Oxford University Press USA.

Walker, Mark (2020). “Moore’s Proof, Theory-ladenness of perception, and Many proofs.” Philosophical Studies 177 (8):2163-2183.

Watson, Burton (ed.) (2013). The Complete Works of Zhuangzi. Columbia University Press.

Wright, Crispin (2002). “(Anti-)sceptics simple and subtle: Moore and McDowell” Philosoph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 65, 330–48.

Wright, Crispin. (2004). “Warrant for Nothing (and Foundations for Free)?” Aristotelian Society Supplement.


관련 에세이

External World Skepticism by Andrew Chapman (번역본: 외부 세계 회의주의)

Pyrrhonian Skepticism: Suspending Judgment by Lewis Ross (번역본: 피론학파의 회의주의: 판단을 유보하기)

Descartes’ Meditations 1-3 by Marc Bobro

al-Ghazālī’s Dream Argument for Skepticism by John Ramsey

Epistemic Justification: What is Rational Belief? by Todd R. Long (번역본: 인식적 정당성: 합리적 믿음이란 무엇인가?)

Epistemology, or Theory of Knowledge by Thomas Metcalf (번역본: 인식론, 또는 지식 이론)

Possibility and Necessity: An Introduction to Modality by Andre Leo Rusavuk

Idealism Pt. 1: Berkeley’s Subjective Idealism by Addison Ellis


저자 소개

크리스 라날리(Chris Ranalli)는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U University Amsterdam)의 인식론 강사이자 극단적 믿음 ERC 프로젝트(Extreme Beliefs ERC project)의 박사후 연구원이다. 에든버러 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전문 분야는 인식론이며, 심리철학과 인식론 및 도덕철학의 교차 영역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사회인식론과 믿음의 윤리학에 관한 주제들을 탐구하고 있다. chris-ranalli.weebly.com


이 글은 Chris Ranalli의 G. E. Moore’s Proof of an External World: Responding to External World Skepticism을 번역한 것입니다.
1000-Word Philosophy 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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