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여, 자신을 알라: 병식(insight)이 정신증 치료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 Anthony David

‘정신증’(Psychosis)은 환각이나 망상 등을 비롯하여, 현실 감각을 잃게 되는 다양한 증상들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정신증 환자들은 자신이 겪는 특이한 경험이 실제라고 느끼지만, 그런 경험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환자가 자신의 경험이 질병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 정도, 즉 자신의 상태에 대한 ‘병식’(insight)의 정도가 회복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병식을 높이려는 치료법들이 매우 유망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가상의 인물인 24세 남성 존의 사례를 살펴보자. 존은 어느 날부터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고, 이를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치려는 사악한 조직의 소행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며칠씩 방에만 틀어박혀 있자 걱정한 어머니가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했고, 존은 치료를 거부한 끝에 결국 영국 정신건강법(Mental Health Act, 1983)에 따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한 버전에서, 존은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집에 가고 싶다고 계속 주장한다. 그는 여전히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병원까지 따라왔다고 설명한다. 증거를 요구하면 그냥 자신이 확실히 안다고 답할 뿐이다. 그는 약물치료가 필요 없다고 믿으며, 약에 독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를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는 존이 얼마나 큰 고통과 두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해하고 그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겠지만, 동시에 존이 자신의 병과 증상, 그리고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병식(insight)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존이 좋은 병식(insight)을 보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존은 자신의 마음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아마도 자신이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사회적으로나 감각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환각을 경험하는 것 같다고 추론한다(그것들이 실제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으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떤 치료가 가능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는 병원에서 안전하다고 느낀다. 약물치료 덕분에 마음이 더 차분해진 것 같고, 주변 사람들을 더 신뢰하게 되어 기꺼이 약을 계속 복용한다. 이제 그는 그 ‘음모론’이 지나친 것이 아니었는지 고민한다. 존이 이렇게 자신의 상황을 평가하고 자신의 경험에 대한 다른 설명들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담당 정신과 의사는 그가 좋은 병식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30년 전 런던의 입원 병동에서 정신과 수련의로 일할 때, 나는 환자들이 자신의 정신증 경험에 대해 보이는 다양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떤 환자들은 앞서 본 존의 첫 번째 경우처럼 자신의 환각과 극단적인 믿음이 실제라고 완전히 확신했다. 반면 다른 환자들은 두 번째 경우와 비슷하게, 자신이 경험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나 질병 같은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관찰에 영감을 받아 나는 1990년 『영국정신의학저널』(British Journal of Psychiatry)에 병식에 관한 나의 첫 번째 논문을 발표하면서 병식(insight)에 대한 작업 정의(working definition)을 제안했다. 나는 이 맥락에서 병식(insight)이 다음과 같은 여러 차원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아프거나 병에 걸렸거나 달라졌다는 일반적인 인식, 그리고 이것이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문제가 아닌 생의학적 문제라는 이해, 자신의 특이한 감각 경험과 믿음들을 병리적인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료에 대한 수용.

내 논문은 ‘신경증’(neurosis)(불안이나 우울증 같은 비교적 가벼운 정신장애) 환자들은 병식을 가질 수 있지만 정신증 환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당시 학계의 통념에 반하는 것이었다. 권위 있는 의학 저널 『랜싯』(The Lancet)의 한 익명 논평자는 당시 병식 연구가 “학술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임상적으로는 쓸모없다”고 평했다. 관심을 받은 것이 기쁘면서도 평가에는 모욕감을 느끼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연구를 계속했다. 병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우리가 진심으로 최선이라고 믿는 도움과 치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 잘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정신증에서 병식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점은 병식(insight)을 다른 정신병리적 현상들만큼이나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몇 가지 중요한 연관성이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되었는데, 그 중 병식(insight)이 부족할수록 정신질환이 더욱 심각하다는 상관관계가 가장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1:1 관계는 아니다. 심각한 증상에도 불구하고 좋은 병식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러나 두 요인은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낮은 병식은 낮은 IQ와도 상관관계가 있다. 이것도 단순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가설이나 관점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더 뛰어난 지적 기능의 도움을 받는다. 이보다 놀라운 것은 낮은 병식이 더 나은 기분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자신이 처한 곤경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게 되면, 특히 그 상황이 심각하다면,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것도 한 가지 요인이겠지만, 연구에 따르면 인과 관계가 한쪽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기분이 우울할 때 자신의 정신 상태를 포함해 세상을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울한 현실주의’(depressive realism)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병식이 좋을수록 치료를 더 잘 따르게 되고, 이는 더 나은 치료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다 명확하고 임상적으로 중요한 관계가 있다.

정신증에서의 병식(insight)에 대한 연구에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병식이 부족할수록 강제적인 치료를 더 필요로 한다는 연관성은 병식 개념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집중하는 지점이다. 그들은 ‘병식’이란 단순히 의사 말에 동의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자는 자신이 건강하며 아무 도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를 돌보는 주변 사람들과 사랑하는 가족들은 정반대로 주장한다면, 이를 병식 부족이라고 부르지 않고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병식(insight)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들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정보를 ‘활용하고 판단하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법적 판단에서다. 이는 영국 정신능력법(Mental Capacity Act, 2005)에서 정의하는 ‘정신적 능력’의 핵심 기준이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라도 치료받을 수 있는 조건을 규정한 이 법률에 따르면,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고 결정을 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을 위해 관련 정보를 활용하고 판단할 수 없다면, 그 사람에게 정신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임상적 병식 개념이 중요해진다. 애초에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안된 치료의 장단점을 어떻게 제대로 비교 판단할 수 있겠는가?

나는 병식(insight)을 회복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정신 치료의 가치 있는 목표이며, 환자의 회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하게 믿는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그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다음 단계는 환자에게 어떤 추상적인 질병 모델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증상들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를 받아들이는 것에 열린 마음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동료들과 1990년대에 진행했던, 지금은 다소 구식으로 들리는 ‘순응 치료’(compliance therapy) 실험의 접근법이었다. 교육적 요소와 협력적 문제 해결(guided problem-solving)을 포함한 이 단기 치료 개입은 약물 치료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는 데 유망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시각적 착시 현상과 다양한 과제들을 활용하여 환자들에게 첫인상이 항상 정확하지 않고 눈으로 본 것을 항상 믿을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 주는 여러 대화 치료법이 개발되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의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정신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접근법을 사용한 연구들에서 유망한 결과들이 보고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임상적 병식(insight) 자체의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 방향은 경두개 직류전기자극(transcranial direct-current stimulation, tDCS)을 사용해서 뇌의 특정 부위에서 신경 활동을 안전하고 비침습적으로(noninvasively) 조절하는 것이다. 뇌에 ‘병식 센터’(insight centre)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겠지만, 자기 평가 과정에서 활성화되는 시스템과 네트워크는 확인되었다. 바로 피질정중선시스템(cortical midline system)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고령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 시스템과 연결된 부위(배외측 전전두엽 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에 tDCS를 적용했을 때 컴퓨터 기반 과제에서 자신의 실수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예비 연구에서는 조현병 환자들에게 같은 뇌 부위를 자극했을 때 임상적 병식(insight)이 작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개선되었다고 보고했다(이 결과가 통제된 임상시험에서 재현될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 한다).

돌이켜 보면, 내가 이 분야에 처음 발을 들인 이후 병식(insight)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연구는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 중 상당 부분은 치료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지만, 메타인지 및 관련된 다른 개념들에 대한 연구는 자기 지식(self-knowledge) 같은 인간 심리의 깊고 보편적인 측면들을 조명해 주었다. 초기 비판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병식 연구는 학술적으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임상적으로도 풍요로운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는 생물-심리-사회적 접근법의 탁월한 사례다. 앞으로 30년 동안 어떤 새로운 통찰(insight)이 나올지 기대된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임상적 병식에 대한 지난 30년간의 연구를 더 상세히 다룬 논평영국정신의학저널(British Journal of Psychiatry)에 발표했다.


저자 소개

앤서니 데이비드(Anthony David)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정신과 의사이며,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 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이다. 그의 최신 저서는 Into the Abyss: A Neuropsychiatrist’s Notes on Troubled Minds (2020)(번역본: 서지희 역, 『심연 속으로 – 영국 UCL 정신 건강 연구소 소장 앤서니 데이비드의 임상 사례 연구 노트』, 타인의사유, 2023.)이다.


이 글은 Aeon에 게재된 Patient, know thyself: how insight helps to treat psychosis을 번역한 것입니다.
Aeon의 번역 및 배포 기준을 준수하여 한국어 번역본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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